(제 86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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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괴한 정적이 깃든 사고현장을 돌아본 주영호는 심기가 울적하여 한숨을 내쉬였다. 며칠째 밤새워 용광로복구안을 짜다가 어슴새벽이면 사고현장에 나와보군 하는 영호였다. 산화물이 식으면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며 무연탄과 철광석, 끊어진 쇠란간이 나딩굴고있는 사고현장, 요추가 탈구된 사람처럼 한옆으로 볼썽사납게 기울어진 용광로는 보면 볼수록 기가 막히고 온몸이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이 성과적으로 끝난 직후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영호를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의 일군으로 사업하도록 하는 크나큰 신임을 베풀어주시였다. 그와 함께 이미 맡고있던 무산광산을 포함한 북부지구사업을 일단락 마무리지어 인계하고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주체화사업을 전적으로 맡아보게 하시였다.

그런데 일에 착수하고보니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황철에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하자면 김철과는 달리 가스발생로를 세워야 하는데 로는 둘째고 걸린 고리는 점결제였다. 이 점결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한발자국도 전진할수 없었다. 그래서 김중건이며 기술자들과 마주앉아 진지하게 협의해보려는참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

주영호는 푸릿해져가는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웅크리고앉아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용광로를 괴로움이 한가득 실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건설된 용광로인가. 이 용광로를 5평방으로부터 10평방짜리 지금의 용광로로 개조하느라고 들인 로력과 자금은 또 어떠한것이였던가.

주영호는 이 용광로가 일어선 경위를 이런저런 기회를 통하여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미끈절싹하지는 않으나 대신 성실하고 튼튼하게 생긴 이 용광로에는 황철사람들의 피나게 이악한 손길이 깃들어있었다. 어슴새벽빛에 희끄무레하게 형체를 드러낸 급수관, 어느 고망년때 소문을 듣고 몇척깊이에 수키로나 되는 기업소땅을 파보고는 헛물을 켜고 맥이 빠져 모두 쓰러진적도 있었고 전쟁때 미국놈폭격에 침몰된 배에 랭각수관으로 쓸만한것들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한겨울에 얼음을 까고 들어가 필사의 노력으로 건져낸적도 있었다. 어디 이뿐이랴. 정말 용광로를 일떠세우는 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쓰자면 부피두터운 책자 하나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것이였다.

하지만 용광로가 숨이 넘어간 오늘에 와서 그것을 생각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영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에게 반문하였다. 뒤나 현재에 발목을 잠그고있는것은 일군의 처사가 아니다. 시급히 용광로를 복구해가지고 시험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방도는 어디에 있는가.

무산광산에 1호대형원추형파쇄기를 설치하던 일과 비교해보다가 그 일은 밀어버리였다. 그때 무산광산에는 우선 파쇄기라는 물건이 있었으므로 광산의 기술두뇌진과 로동계급에게 진심어린 호소를 하면 되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산소열법용광로가 완전 파괴되다싶이하여 발을 붙일데가 없다. 보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용광로사고로 하여 사람들의 의기가 떨어진 이것이다. 사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의 분석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저앞의 로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맨밑에 숨이 죽은 용광로모양으로 웅크리고앉아있는 어떤 사람의 형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한숨을 조용히 내쉰 주영호는 그리로 걸음을 떼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기척을 내며 다가가는데도 어떻게 된셈인지 까딱않고있었다. 주영호는 몇발자국앞에 가 서서 입을 열었다.

《누구요?》

그제야 허리를 펴며 얼굴을 이쪽으로 돌리였는데 그 사람은 다름아닌 김중건이였다. 주영호를 알아본 중건이 두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서고있었다.

《어제오후엔 어디 갔댔소? 방에 가니까 없더구만.》

주영호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법일군이 찾아서… 담화를 했습니다.》

《…》

주영호는 뒤짐을 지고 용광로에 눈을 돌리였다. 그의 눈길을 따라 용광로를 쳐다보던 김중건이 머리를 숙이며 입새로 중얼거리였다.

《면목이… 할 말이 없습니다.》

주영호 또한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그는 련민에 찬 눈길로 머리를 숙이고있는 중건의 모습을 일별하였다. 중건이 이 사람이 지금 자기를 놓고 기업소에서 어떤 소문이 돌고있는지 알고있을가.

사고직후에 지배인이 어찌된셈인지 제가 직접 차를 몰고 출장지에서 돌아왔는데 남문보위대에서 말하기를 제때에 차단봉을 올렸기망정이지 승용차가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들어와 차단봉이 부러질번했다느니, 실성한 사람처럼 채 식지 않은 용광로장입구에 올라가려다가 제지당했다느니, 병원에 가서는 병동을 돌아보다가 생사기로에서 헤매고있는 함승일이를 보고는 원장의 책상을 부서질 정도로 두드리며 당장 사람을 살려내라고 큰소리까지 쳤다느니, 용광로가 폭발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배인 처는 졸도했다는 등 주영호가 기업소에 내려와 들은 소문은 이처럼 어마어마한것들이였다.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뒤다리를 잡아당기고 시비를 거는 인간들이 있기마련이다. 이런 인간들은 일하는 사람에게서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평시에 품고있던 불평불만에 반드시 살을 넉넉히 붙여 고소하기도 하고 소문을 돌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번 일에 관한 소문이야 거의나 사실이라고 볼수 있지 않는가. 보다 문제는 김중건의 운명에 분명히 붉은등이 켜져있다는것이다.

주영호는 엊저녁에 김중건의 문제를 가지고 법일군과 나눈 대화에서 이것을 알수 있었다. 평양에서 내려온 그 일군은 주영호와도 면식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는 이런저런 말(물론 화제는 법일군도 관심을 가지고있었다는 주체철시험력사이다.)끝에 김중건의 문제처리여부를 조심스럽게 비쳐보았다. 이번 사고의 책임은 분명한것이지만 될수 있는 한 경하게 처리되였으면 하는것이 영호의 심정이였다.

《물론 부부장동지의 심정은 꼭 찍어 말씀 안해도 알만합니다. 계속 일하게 해주었으면 하는것이겠지요. 저 역시 그러고싶습니다. 그러나 부부장동지도 목격했겠지만 사고가 얼마나 엄중합니까. 때문에 책임을 명백히 따져 법을 적용하는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더우기 그는 기업소를 책임진 일군이니 더하지요.》

풍신이 좋고 너부죽한 얼굴에 노상 화기로운 기색을 띠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법일군이 낯색을 달리하며 그의 물음에 한 대답이였다. 그때 주영호는 법일군의 태도가 옳다는것을 인정하였으나 그에 항변하려는 의분같은것이 입속에서 맴도는것을 겨우 자제하였다.

헤아릴수 없는 번민의 심연에 빠져있는 김중건이를 보니 그때의 심정이 또다시 되살아나는것이였다.

그는 중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앞을 가리키였다.

《내 방으로 가기요.》

딱히 할 말은 없었으나 그래도 방에 가 더운물이라도 한잔 권하고싶었다.

《고맙습니다, 부부장동지. 전 산소분리기직장에 가봐야 합니다.》

김중건은 바닥에서 뒹구는 털모자를 주어들고나서 뒤를 달았다.

《사고원인을 끝까지 빠개놔야 다음사람들이 우리같은 전철을 밟지 않습니다.》

모든것을 각오한 속에서도 자기 할바를 하고있는 중건이를 보니 가슴이 찌르르해온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인간인가. 역시 우리 장군님께서 품을 들여 키워주신 사람이 다르다. 주영호는 말없이 그를 보다가 그저 중건의 손을 한번 꽉 잡아주었다.

하루일과는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 첫시간부터 분주하였다. 병원에서 사무실로, 사무실에서 현장으로 오가는 걸음은 이렇게 드바빴으나 그의 머리속에는 오직 두가지 생각, 사람과 용광로문제로 꽉 차있었다.

그러던중에 주영호는 평양에서 걸려온 석진의 전화를 받다가 희소식이랄지 하여간 귀가 좀 트이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용광로복구를 빠른 시일내에 할수 있는 안이 있는데 제기된 일을 처리하고 오후 느지막해서 황철에 와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는것이였다.

주영호는 송수화기를 놓고 일감을 잡았으나 리해가 되지 않아 한참이나 방안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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