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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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일후 국장은 약속대로 용광로직장에 나타났다. 그는 자기가 한 말대로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반짐차 두대를 끌고왔는데 적재함에는 랭동돼지 여라문마리와 찹쌀, 식용기름도람 두개와 몇백컬레의 장갑이 실려있었다.

《와보니 그리 크지는 않군요.》

질좋은 밤색다우다직솜옷의 웃단추들을 뚝뚝 벗기고는 두손을 허리에 얹고 시커멓고 듬직한 용광로를 쳐다보던 국장이 한 말이였다.

《다른데 많이 가본거구만.》

《예. 강재때문에 다른 야금공장들에 가서 용광로들을 구경한적이 있습니다.》

《그것들보다야 작겠지. 하지만 국가적, 정치적으로는 이 용광로의 가치에 대지 못하오.》

국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 한창 시험준비작업을 하는중인데. 어데서부터 시작할가.》

《나야 뭐 압니까. 그저 소장동지가 이끄는대로 가야지요.》

《옳지, 원료계통부터 시작하기요.》

함승일은 국장을 데리고 용광로를 빙 둘러막은 담을 에돌아 원료준비작업장으로 향하였다. 거기서는 두대의 삽차가 번갈아오가며 세기의 스키프에 무연탄이며 철광석, 석회석을 부지런히 담아주고있었다.

《이곳이 산소열법용광로의 생산공정에서 첫공정이요. 스키프에 담은 저 원료, 연료들은 저기 보이는 저 성구기에 들어가게 되오. 거기 들어가서는 골고루 혼합되는데 비유해 말하면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인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그담에 벨트콘베아에 실려 로정에 나있는 입구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건 말하자면 쌀을 가마에 넣는다는 소리요.》

승일은 국장이 용광로에 문외한이라는것을 고려하여 형상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끝내고 다음공정에로 넘어가려는 참에 한대의 검청색승용차가 정문에 들어서더니 이쪽으로 달려와 그들이 서있는 바투까지 들이닿는것이였다.

차에서 검은 락타직솜옷에 역시 같은 색갈의 털모자를 쓴 신석진이 내리자 국장이 바삐 그리로 걸어간다.

그가 인사를 하자 다짜고짜 《동문 뭐야?》 하는 신석진의 노성이 승일의 귀전에 날아왔다.

국장이 뭐라고 이야기하려는것을 몰풍스럽게 잘라버리는 석진의 이런 음성이 계속 날아온다.

《왜 여기 와 어스벙거려? 뭐, 지원물자? 난 그런걸 타내는게 아니야. 어째서 직권람용을 하는가, 왜서 제멋대로 수출품에 손을 대는가 말이야. 동무 제정신이야? 당장 자기 위치로 돌아가라. 동무문젠 평양가 따루 보겠어.》

(성이 나면 새되여지는 목소리는 여전하구만. 저걸 보지, 얼굴이 새빨개지는거랑.)

함승일은 젊은 시절의 석진을 보는듯싶었다.

신석진이 풀이 죽어 어깨가 처져있는 국장을 뒤에 남기고 빠른 걸음씨로 걸어오더니 승일에게 대번에 큰소리를 치는것이였다.

《말해보라우, 함동무. 이건 도대체 무슨 무법천진가? 무슨 날강도판인가 말이야.》

《우리가 뭐 미국놈이요? 말 좀 조심하우. 날강도가 뭐요, 날강도가. 일은 이렇게 된거요.》

함승일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는 리해와 동정이 갈수 있게 사정이야기를 천천히 그리고 조리있게 펴놓았다. 그러건말건 석진의 낯빛은 풀리지 않는다.

《도깨비들.》

신석진이 내뱉는다.

《에이, 이 황철촌바우도깨비들.》

그는 뒤짐을 풀며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식지, 장지손가락으로 승일의 가슴노리를 겨누며 위혁적으로 흔든다.

《내 동문 그래도 옛시절의 함승일이로 알고있었는데 이자보니 달라졌어. 김중건이와 똑같은 사람이야. 아니, 맹종맹동분자, 추종분자가 되였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중건이 뒤를 따라다니며 일하다가는 큰 코 다치지 않는가 두고보라구.》

그리고는 화가 풀리지 않는듯 털구두에 오른 정광먼지를 소리나게 탁탁 털더니 승용차로 가버리는것이였다. 신석진이 《거기 우두커니 서서 뭘해? 차에 타라우.》 하고 국장에게 역증을 내며 차문을 연다.

승일은 젊은 국장에게 미안했다. 나야 뭐라는가. 일이 어떻게 번져지게 되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만은 다른 일이 없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여하간에 빨리 시험을 진행하여야 한다.)

함승일은 직장철문을 빠져나가는 승용차에서 눈을 떼며 용광로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무슨 일인가 하여 여기저기서 눈길을 모으고있는 기술자들이며 로동자들에게 일을 계속하라는 손시늉을 하였다.

그날 저녁 밤늦도록 일손을 다그쳐 시험준비를 마무리한 함승일은 회의차로 도에 가있는 중건에게 전말을 보고하려고 손전화기를 뽑아들었다.

《낮에 석진동무가 왔댔두만.》

낮에 있었던 일을 꺼내는 김중건의 첫마디에 금시 골살을 찌프리였다. 중건에게도 전화를 걸어 한바탕 행풀이를 한 모양이였다.

《왔댔소. 뭐라고 하우?》

《야단하더군. 한데 역시 정은 어데 안가. 석탄값은 한푼 곯지 않게 받아내면서두 우에다가 상정해서 이 문젤 처리하겠다는거요.》

그러면서 중건은 한마디 지청구를 하는것이였다.

《사람두. 거 왜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나? 그럼 내 무슨 변통을 마련할수도 있지 않나.》

《변통이라구? 가스발생로에 쓸 무연탄도 제대로 들여오지 못하는데 기업소에 무슨 석탄이 있나? 게다가 국가계획에 넣자면 다음해를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난 기업소형편을 모르진 않아. 글쎄 나도 내가 제정된 질서를 어겼다는것은 알지. 하지만 어쩌겠나.》

《됐어, 됐어. 그만하자우. 그 일은 내게 맡기라구. 그래 용건은 뭔가?》

《시험준비를 끝냈는데 지배인동무가 없어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그러질 않소. 언제 오우?》

《회의는 래일이면 끝나는데 점결제때문에 다녀올데가 있어 수일내로 들어가지 못할것같애. 기다리기나새나. 준비가 되였으면 하면 되는거지. 래일이라도 당장 착수하우.》

《알겠소. 그럼 래일 하는걸루 보우.》

《함동무, 정말 석탄이 원인이라면 이번에 시험이 한단계 크게 전진하는것으로 되겠지?》

《그렇잖으문.》

《좋네, 좋아. 동무 주장이 옳기를 바라네. 시험이 끝나면 인차 알려주. 결과가 좋으면 즉시 다음단계시험에 착수하자구.》

즉시 다음단계시험? 함승일은 갑자기 숨이 가빠나 대답을 못하였다. 눈앞이 탁 흐려왔다.

《왜 말이 없어, 부기사장?》

《여, 승일소장!》

《여보, 지배인동무.》

그는 김중건이를 불러놓고는 눈굽으로 솟구치려는 뜨거운것을 강제로 꿀떡 삼키였다. 시험을 진행하는 어간에 거의나 밤잠을 잊고 일해온 산소열법기술집단성원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였다.

(아니, 우리 동무들은 용광로를 일떠세우고 불을 잡아 처음으로 시험을 했던 그날부터 별로 쉬여본적이 없지 않는가.)

함승일은 더듬거리며 뒤말을 이었다.

《시험을 치르고나서 우리 동무들 좀 쉬우면 안되겠소?》

《사람들 신색이 말이 아니요.》

《후방부지배인한테랑 임무를 줘서 영양제식사랑 간식도 보장하고있지 않소.》

한참후에 말을 잇는 김중건이였다.

《글쎄 잘 멕이느라 하지요. 하지만 걸 가지구 되우? 또 잘 멕이문 뭘하우.》

함승일은 저절로 격해지는 음성을 다잡을수 없었다.

《잠을 자야 할거 아니요. 그리고 태반이 세대주들이 아닌가. 강철의기사네 집에선 중학교를 다니는 맏아들이 두 녀동생들을 데리고 부모구실을 하고있소. 성남아바이네 꼴은 어떤줄 아우? 그 아바이는 자식들생각에 제앞에 차례지는 영양제에 저가락도 못대고있소. 그리고 춘식공정원넨

여기서 승일은 말을 뚝 멈추었다. 김중건의 정상이 생각히웠던것이다. 현행생산을 지휘하면서도 산소열법용광로시험과 함께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문제로 침식을 잊다싶이하는 지배인이 아닌가. 지배인 역시 건강이 그리 좋은편이 아니며 집은 신병에 시달리는 안해가 보고있다.

저쪽에서도 응대가 없다. 밤공기를 간간이 흔드는 초고전력전기로의 동음과 구내에 설치한 고성기에서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선률을 들으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것같았다.

함승일은 동안이 지나서 푹 꺼진 목소리로 먼저 입을 떼였다.

《지배인, 미안하우. 모두가 그렇게 일하고있는데 제 생각만 했소.》

《미안하긴 내가 되려 안됐어.》

뜻밖에 너누룩이 접수하는 김중건이다.

《그간 내 일만 일이라구 너무 사람들을 내몰았소.》

《하루문 되우. 하루문 밀린 집일이랑 하면서 피로랑 풀수 있소.》

《아니야. 한 댓새 쉬우자우. 휴식들어갈 땐 고기붙이랑 물고기, 쌀두 묵직하게 들려보내구. 내 후방부지배인에게 단단히 일러두겠소. 아이들에게 줄 당과류도 놓치지 말라구 말이요.

그리고 내 어떡하든 빨리 돌아서겠는데 가면 당신하구 나하구 동무들네 집을 빠짐없이 돌아보자구.》

《고맙소, 지배인동무. 그래주면야 우리 동무들 오죽 좋아하겠소. 보우, 일능률 더 오를게요.》

함승일은 코마루가 찡해나서 진심으로 치사했다.

《자, 그럼 다른게 없으면 그만하자우. 희소식을 바라오.》

《잘될거요. 믿소.》

대화를 마친 함승일은 손전화기를 품에 넣고 한껏 기지개를 하며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래. 잘될것이다. 품을 얼마나 넣었게. 우리는 또 한걸음 크게 전진할것이다.)

허나 그 이튿날 저녁에 진행한 시험은 김중건이며 함승일이네들, 온 기업소며 송림시민들의 애바른 기대와 믿음과는 어긋나게 황철의 주체철시험력사상 가장 파멸적인 대사고로 끝났다.

원인모르게 급기야 증가된 열에 의해 증기가 뿜어져나오면서 급수관의 관망들이 터져나가는 동시에 로밑통이 폭발하여 함승일을 포함하여 적지 않은 인명피해까지 일어났던것이다.

하도 엄중한 사고여서 도는 물론이고 금속공업성이며 내각, 김책공업종합대학, 지어는 법기관에서까지 내려와 원인규명과 법적책임을 론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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