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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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흐리터분하던 날씨는 끝내 비구름을 몰아왔다. 시작부터 대줄기같은 비줄기가 쏟아졌다.

어디나 물천지였다. 쏴쏴 도랑물이 넘쳐나는 소리에 귀가 멜 지경이였다. 뚝을 넘어선 황토물이 반반하던 길바닥에 수렁을 만들어놓았다.

공사가 한창인 공장은 어디나 비물이 줄줄 흘러내리여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정문앞이 물천지가 되였다.

밤새 내린 비가 정문앞의 구간을 빠지지 못했던것이다. 이건 전혀 예견하지 못한 일이였다. 공사를 하느라 사방에 쌓아놓은 더미들이 무너지고 구뎅이들이 매몰되였던탓이다.

배수가 미처 되지 못하여 정문앞 구내에서 터진 탕수는 점점 불어났다. 곧 배수로를 째는 전투가 새벽부터 진행되였다. 얼마후엔 한명한명 입을 거쳐 소문이 나서 사택마을의 종업원들이 거의나 떨쳐났다. 공장정문앞과 구내는 사람사태가 날 정도였다.

정문에서 우덕진의 고함소리가 짱짱 났다. 모두 그가 지휘하는대로 물길을 돌리였고 흙들을 날랐다. 날이 완전히 밝은 다음에 보니 누구라할것없이 입은 옷들이 흙으로 매닥질되여 볼썽모양으로 되였지만 어느 한사람도 웃지 않았다.

기운이 빠질대로 빠진데다가 겨우 물을 뺀 수렁판같이 된 구내로 또다시 비가 쏟아졌기때문이였다. 그래도 이젠 쏟아지는 물이 곬을 찾아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디나 흙밭이여서 신을 쥔채 엉기엉기 흙밭을 헤쳐왔다. 이번 일은 공장간부들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아무리 섬지대이고 대동강동뚝밑의 낮은 지대라고 하지만 봄비에 이런 정도로 수렁창이 된적은 아직 없었다. 만일 공사를 계속하는 조건에서 7~8월의 장마를 겪는다면 공장의 현대화는 어떻게 되겠는가.

오리사를 완성하고 완성된 살림집에 새집들이를 시킨건 다행이지만 막상 쏟아지는 소낙비를 겪고보니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현장에서 당비서며 지배인 그리고 우덕진은 앞으로의 일을 두고 자리를 뜨지 못하고 론의를 거듭했다. 우덕진은 오늘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그러지 않아도 석쉼하던 목소리가 쉑쉑하는 소리로 변하고말았다.

 

낮부터 성글어진 비발속으로 낯선 처녀가 두단땅의 사택마을로 들어서고있었다. 그는 비옷을 입고서도 색고운 우산을 들었다. 펄럭이는 비옷자락밑에서 발목을 조인 미색목장화가 인차 눈길을 끌었다. 차림새만 보아도 시내에서 온다는것이 인차 알리는 처녀는 강수려였다. 그는 등에 진 배낭가방을 추슬러올리면서도 신기한 세계에 들어온듯 주위를 보는 눈길을 멈추지 않았다. 굵은 비방울이 몰방으로 떨어지는 강물은 꼭 끓는 쇠물처럼 가슴을 뛰놀게 했다.

흡사 칠칠한 머리를 감고 나선듯한 동뚝우의 버드나무를 홀린듯이 바라보다가 두연오리공장이라는 지명표식이 보이자 얼른 걸음을 빨리 했다. 눈앞에는 사택마을이 주런이 펼쳐졌다. 드디여 아버지, 어머니가 자리잡은 마을에 다달은것이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이런 비속 20리길을 걸어보았다. 자기자신이 여간만 장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덧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보슬비로 변했다. 이제라도 또다시 쏟아붓기라도 할듯 검은구름장들이 우중충하게 드리워지고있었다. 서두르며 사택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던 수려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발디딜 한쪼각의 땅이 없는 수렁창이 앞을 가로막은것이였다.

원래 이 사택마을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여기저기에서 샘구멍이 터져나오군 했다. 그런데다 연료로 쓰는 연재때문에 시꺼먼 진창투성이가 되군 해서 발짚을 자리가 없었다. 목장화차림이여서 들어섰다간 물탕속에 빠져들어갈 지경이였다.

수려는 안타까이 두리번거리였다. 어디 돌아갈 길이라도 없을가?

그런 찰나 비옷을 입은 한 남자가 자전거를 끌며 물탕속으로 들어서는게 보였다. 푹 눌러쓴 비옷모자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것도 아랑곳하지 않는것을 보자 대뜸 아바이라는 소리가 나갔다.

《저, 아바이, 동네로 들어가는 다른 길이 없습니까?》하고 소리쳤다.

그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수려는 절망적이다싶이 발을 구르며 연방 아바이라고 찾았다.

자전거를 멈추고 그 사람이 비옷모자를 휙 벗어제꼈다. 젖은 머리칼을 추슬러올리니 훤칠한 이마가 드러나며 새파랗게 젊은 청년이라는게 알리였다.

《어마나, 미안합니다. 모자때문에 그만…》

수려는 창황중에 손으로 입을 막은채 겁먹은 눈길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흘깃 바라보는 청년의 눈찌가 사나왔다.

그가 당장이라도 뿔질을 하려는 황소같이 고개를 짓수굿했다. 해사한 얼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그 순간 수려는 그 청년의 얼굴에서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꼭 어디서 본것같은 모습이였다. 저 해사한 얼굴, 그러면서도 짓수굿하고 눈을 치뜨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였다. 어디서 보았을가? 그러나 얄궂게도 날듯날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려는 그만 단념하고말았다. 반반한 얼굴과 대조되는 그런 행동이 특이해서 눈에 들어왔던것이라고 단정하면서 빠른 말씨로 사죄했다.

《아이, 미안합니다. 저, 여기 새로 이사온 집을 찾아오는데 돌아갈 길이 없나해서 그랬어요.》

《새로 이사온 집?》

그제야 청년의 얼굴에서 골살이 풀려졌다. 그러나 말투는 여전히 뚝뚝했다.

《여기선 돌아갈 길이 따로없지요.》

청년이 비옷모자를 쓰며 물속에 내려섰다. 거의 무릎까지 오는 장화발로 수려앞으로 와서 《이 자전거를 타고 가지요.》 하며 앞으로 자전거를 내밀었다.

《어마, 전 자전거를 탈줄 모릅니다.》

《여기 올라앉으십시오.》

《예?!》

생각지 않던 호사였지만 선뜻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자, 그 배낭가방은 여기 앞에 넣구요.》

청년은 개의치 않고 어서 수려가 배낭가방을 벗기를 바랐다. 미안한 생각에 망설였지만 벗지 않을수도 없었다. 청년이 어느새 배낭가방을 앞바구니에 넣고는 독촉했다.

《어서 오르십시오.》

어쩔수 없었다. 처음보는 남자의 도움을 다 받다니.

그 순간 수려는 부득부득 이런 날에 길을 떠난 자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누가 이런데가 있을줄이야 상상이나 했나. 자전거안장우에 앉은 수려는 몸도 마음도 거북해서 도저히 안정을 찾을수가 없었다. 어색해서 어쩔줄 모르는 수려의 눈앞으로 어느 영화에서 본 소잔등에 올라앉은 처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집게 웃는 처녀와 벙글거리는 총각의 모습과 대조되는 자기 꼴이라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구붓한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발을 짚을수 있는 땅이 보였다.

《아이, 이젠 됐습니다.》

수려가 사뿐 내려뛰자 청년이 할수 없다는듯 멎어서더니 《새로 이사한 집은 저쪽으로 올라가면 됩니다.》하고 훌 돌아섰다.

《어마, 이 자전거는요?》

《공장정문앞에 자전거보관소가 있소.》

청년은 이번에도 돌아다보지도 않은채 이렇게 맞소리치고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바구니안에 배낭가방이 있어 그대로 가는 모양이였다.

수려는 청년이 사라진 골목길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고개를 짓수굿하고 흘겨보던 청년의 모습이 다시 상기되였다. 그 만만치 않은 눈길과 두툼한 입술이 조화를 이루는 얼굴, 꼭 어디서 본 얼굴인데…

이윽고 수려는 사택마을 한가운데 있는 집마당으로 자전거를 끌고들어섰다.

나무풍로앞에 있던 어머니가 수려를 알아보고 《아니, 네가?! …》 하고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단박에 눈물이 글썽해졌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속에 눈물이 그득히 차올랐다.

《어머니-》

수려는 얼른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사이 뼈마디가 꿋꿋해진것같아 가슴이 아릿했다.

《네가 합숙밥을 먹더니 살이 빠진것같구나.》

《어머니두, 아버진 앓지 않으셔요?》

《일없다. 네 아버진 여기 와서 밥맛을 돌렸단다. 여보, 수려가 왔수다.》

어머니가 방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수려는 방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어머니의 말처럼 밥맛이 돌아서 그런지 기름하기만하던 얼굴이 부해보였다. 습관은 어쩔수 없는지 아버지는 방안에서도 당장 바깥출입이라도 할것처럼 와이샤쯔의 단추를 꼭꼭 채우고있었다.

한손에 돋보기를 든 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어서 들어오려무나.》

여전한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수려는 그제야 집을 둘러보았다. 1동 2세대짜리 단층집인데 꽤 아담했다. 마당에는 동네길과 달리 판석이 깔리고 토방은 세멘트포장까지 되여있었다. 마당가운데는 물탕크가 달린 수도가 있는데 부엌문처마가 수도까지 잇달려있어 이런 날에도 비맞을 념려가 없었다.

물탕크에 첨벙 뛰여들고싶게 기분이 뜬 수려는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부엌모퉁이로 돌아가는 뒤창고에서 두마리의 중오리가 새까만 눈알로 올려다보고있었다. 그걸 보니 침침하던 마음속의 그늘이 날아가는것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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