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7
(2)
신형일은 호동안을 주르르 살펴보았다.
바닥보다 높은 단에는 알이 떨어져도 상하지 않으면서도 종금들이 편히 알을 낳을수 있도록 두툼하게 벼겨가 깔려있었다. 오리들은 바로 그 벼겨우에 알을 낳군 했다.
남순이가 얼마 돌지 않았는데 알이 그득히 담긴 바께쯔를 들고나오군 했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오리 알낳이률이 제일 높은 철이였다. 이런 때 먹이를 원만히 보장하면 월생산을 부쩍 올릴수 있었다. 호동건설이 끝나면 오리들이 늘어나겠는데 그에 맞게 먹이를 보장해야 하는것이다. 한켠에 무져놓은 먹이가 보였다. 신형일은 그것을 한줌 쥐여서 꼭 싸쥐였다. 물기가 배여나오는 노르무레한 먹이는 낟알성분과 각종 미량성분들과 함께 파릇파릇한 먹이풀이 섞여있어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고있었다. 먹이생산의 현대화란 바로 이런 먹이를 고도로 과학화하면서도 실리적으로 생산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닐가.
록화물에서 보았던 세밀한 균생산공정을 떠올리며 신형일은 호동을 나와 구내길을 걸었다.
호동마다에서 관리공들을 만나면 기술부원을 찾군 했는데 어디서도 그들을 찾아볼수가 없었다. 록화물을 보고난 그들이 어디서 사색을 무르익힐지도 모른다.
지배인이 준비하고있다니 그가 좋은 안을 내놓을수 있다는 기대가 갔다. 그다음 누가 또 내놓을가. 기사장은 시당에 갔으니 후에라도 안을 내놓겠지. 불현듯 차학선이 이번에 록화물을 보았더라면 생산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안을 내놓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쉬웠다.
그는 늙었지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보탬이 되는 사람이다.
지배인과 토론하니 기술고문직제가 제일 합당했다. 하지만 아직 시당에서 그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으니 이 직제도 토론한데만 불과했다. 신형일이 오늘 시당에 간 기회에 다시 책임비서를 만나 차학선문제를 알아보니 아직 시당에서 토론하지 못했다는것이다.
신형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시당에서 결론이 나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실정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할것같았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채 걷던 신형일은 그자리에 멈춰섰다. 공장의 현대화에서 벌어지는 기술적인 문제들을 종합하여 기술서적을 묶자는 생각이 떠오른것이다. 이를테면 공장기술집필조이다. 년로보장으로 들어간 실력있는 기술자들과 함께 공장기술력량도 동원될수 있다. 차학선이가 여기서 집필사업을 하다가 시당에 제기된 문제가 해결되면 인차 기술고문으로 자기 사업을 할수 있다. 지배인과 합의를 할 생각을 하니 자연히 걸음이 빨라졌다.
공장은 어디나 불이 환했다. 한창 건설중인 단백먹이건설장에도 대낮같이 불빛이 환했지만 주런이 늘어선 호동에 켠 불은 오리공장에서만 볼수 있는 특이한 야경이였다. 새로 전개하기 시작한 알깨우기실도 이제 시운전이 끝나면 주야간 한순간도 멈춤없이 알깨우기가 진행될것이였다.
신형일은 방향을 바꾸어 비육직장으로 향했다. 머리속에서는 오늘 본 록화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배인도 자기나름의 연구를 하겠지만 먹이생산의 현대화에 대한 견해를 명백히 세워야 그 목표대로 공장의 현대화를 완성할수 있는것이다.
먹이생산의 현대화를 실현하는것이 막연하게만 생각되였는데 이번에 록화물을 보고나니 무엇인가 눈앞이 훤해지는것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했다.
비육직장도 많은 호동이 완성되여 오리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형일은 새 호동에 들여온 오리들을 구경할 생각이 들어 첫 호동으로 들어갔다. 뜻밖에 차천호가 콤퓨터앞에 앉아 열중해서 마우스를 움직이고있었다. 직장사무실도 아닌 호동에 있는걸보니 우정 조용한곳을 택한것같았다.
그를 보는 순간 무턱대고 반가왔다.
천호는 차학선이가 품들여 키우는데도 있지만 본인의 열성이 높았다.
새벽에 호동을 돌아볼 때면 늘 천호를 보게 되군 했다. 역시 대학에서의 리론지식은 현장에서 익혀야만 자기의것으로 공고해질수 있었다.
천호는 지금 누가 호동에 들어온줄도 모르고 자기 일에 열중하고있었다. 그는 저렇게 모든 일에 진지했다. 기특한 생각이 앞선 신형일은 그에게 다가가 다심하게 물었다.
《공부를 하오?》
그리고는 얼른 일어나려는 천호를 눌러앉혔다.
《저…》
그가 우물거리더니 조심히 입을 열었다.
《록화물을 보고나서 생각되는게 있어서 좀…》
입이 무거운 천호는 조만해서는 자기의 견해를 털어놓지 않았다.
《록화물?》
기다리던 반응을 천호에게서 듣는 순간 신형일은 여간 반갑지 않았다.
지금껏 차학선이가 빠진걸 두고 아쉬워했는데 그 봉창을 이 천호가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다 환해졌다.
《무슨 생각이 들었소?》
《…》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눈가가 범상치 않게 번쩍했지만 천호는 인차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지금 록화물에 대해서 생각하던중이요. 그래서 생각을 합치고싶어 그러오.》
《아직 다 무르익히지 못했습니다.》
그가 여전히 자기의 속을 털어놓지 않았다. 남자치고 해사하게 생겼지만 꾹 다물린 입술은 잘 열리지 않았다.
《생각한만큼 어서 말해보오.》
진정 신형일은 차천호의 견해가 듣고싶어 독촉했다. 어쩔수 없는지 천호가 입을 열었다.
《그 록화물을 보고 우리 동무들은 모두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장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음.》
《그러나 전 그렇게만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왜?》
신형일은 호기심이 나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얼른 물었다. 천호가 기다리기나 한듯 선뜻 대답했다.
《공장의 현대화를 하는데 남들을 따라만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신형일은 쿵하는 소리가 들리는것같은 충격을 느꼈다. 가슴이 뛰였다.
《음, 계속하오.》
천호의 눈빛이 번뜩했다. 달아오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달아오른 다음에는 터치기마련이였다.
《록화물에서 본 오리기르기들은 대체로 분산적이였습니다. 우리 공장은 집단사육을 하고있습니다. 이런 집단사육은 특수한것입니다. 이런 실정에 맞는 방법을 연구하여 미생물발효제생산을 하여야 합니다.》
집단사육을 하는 특성이라, 그렇다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생각이 한곬으로 몰려갔다.
무엇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사고를 하는것이 대견했다.
신형일은 천호를 처음 보기나 한듯 정기가 총총한 맑은 눈동자며 록록치 않은 코날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더 연구해보오. 아마 기사장이 기술자들 총화모임에서 이번 록화물을 본 값을 받아낼거요.》
신형일은 그의 생각을 받침해주자면 무엇을 해야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록화물을 보고난 새세대 기술자인 천호의 사색과 진지한 자세가 그의 기분을 적지 않게 뜨게 했다. 이젠 지배인을 만나야 했다. 그와 록화물을 보고난 견해를 론의하고 살림집배정안도 토의해야 했다.
신형일은 사뭇 거뿐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