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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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형규네들을 뒤쫓은 촬영기는 맨끝에 웅기중기 서있는 사람들을 비친다. 형규네들이 강편가열시험을 한다는것을 알게 된 정구철이 부랴부랴 데리고나온 열전문가들이였다. 여러 사람들의 분석결과를 거쳐 시편이 마지막사람에게 넘어간다. 모두의 초조하고 긴장된 눈빛이 머리가 온통 새하얗고 체소한 체격의 늙은이에게 집중된다.
한초 또 한초, 1분, 2분, 3분. 마침내 례의 그 사람이 시편에서 눈을 떼며 주위를 휘둘러보고나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 한생 측검하는 일을 해왔소만 이렇게 질좋은 제품을 보기는 처음이요. 강판이 참 잘 익었습지. 합격이요.》
정적이 깃들었다. 가열로의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릴뿐이였다. 그러나 김형규네들의 눈에는 하나와 같이 물기가 내배고있었다. 열전문가들도 그러했고 지어 정구철이까지도 눈물을 보이며 서있었다. 김형규가 《아바이, 우린 해냈습니다.》라고 하며 채호명을 와락 그러안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얼싸안으며 축하의 인사를 나눈다.
화면이 바뀌자 드넓은 직두천을 품고 자리잡은 북방의 대야금기지 김책제철련합기업소가 내리는 흰눈속에 근경으로 접근했다가 원경으로 천천히 물러가면서 클라리네트의 추억깊은 음향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밤도 송이송이 눈이 내리네
…
관현악과 합창이 뒤를 받는다. 그 음악을 타고 화면에 고온공기연소식가열로에서 련속 인출되는 시뻘건 강편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하나의 흐름을 이루며 도도하게 흘러간다. 롤강그에 실려 조연, 완성공정을 지나며 제 모습을 갖추는 강판들, 이내 권판공정을 거치자 퉁구리강재로 변하여 한켠에 떨어진다. 천정기중기가 그것을 부지런히 물어다가 넓다란 제품창고에 차곡차곡 쌓는다. 다시 앞공정에서 반복되는 장면, 장면들. 강편들의 장쾌한 흐름, 고압랭각수의 세찬 물보라, 물안개, 지심을 울리며 작동하는 쇠껍질제거기, 만능압연기, 수직압연기, 완성압연기, 강판을 감으며 맹렬히 회전하는 권판기.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의 성공을 축하하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 방송원의 격정에 젖은 목소리에 이어 합창으로 더욱 크게 울려퍼지는 선률.
깊은 밤거리에는 흰눈이 내리는데
숨결높은 용광로는 잠들줄 모르네
용해공의 마음어려 붉은 눈이 내리네
화면이 꺼지자 현장에는 숙연한 정적이 흘렀다.
《그러니까 정말 성공했단 말이지? 수고했소. 정말 수고들 많았소.》
《장관이요. 김철이 오늘에야 진짜 장관을 하나 만들어냈소. 볼멋이 있소.》
뒤켠에 서있는 주영호를 찾으신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역시 다르오. 어델 가보나 큰일을 치오. 오밀조밀하지 않고 대담하거던.》
《왔구만.》
만면에 반가움을 가득 떠올리신
《저 동무들이 범은 범인 모양이요. 속담 그른데 없소. 김책공대 소릴 하자마자 나타나거던.》
그러시고는 김형규네들에게 어서 오라고 부르시였다. 이내 가열로현장에는 사랑과 그리움으로 충만된 숭고한 화폭이 펼쳐지였다.
하여
《다음번 도입대상은 어디로 정했나?》
주영호는 설명해드리라는 뜻으로 손짓하며
《황철은 이미 추진중에 있기때문에 성강과 천리마제강에 도입할 계획입니다. 4대야금공장에서의 이 기술의 공업화가 완전히 끝나면 다음단계로는 내화물과 세멘트, 도자기공업 등 중유를 쓰는 경제부문의 공업로들을 료해하고 선후차를 정확히 가려 도입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