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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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기업소곁을 지나가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들려왔다. 두만강-평양행 려객렬차였다.
(철민이, 동주, 잘 가라. 가서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하는 나날에 얻은 경험을 가지고 좋은 론문을 쓰기 바란다. 만일 김철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교훈을 가지고 써라. 그리고 나의 뒤를 이어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에 뛰여들어 기어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신정동무, 정철동무.)
김형규는 그들에게도 작별인사를 하였다.
(고온공기연소기술의 첫 개척자들인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어떻게 표시해야 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과학자의 신념과 량심, 공민의 애국심이 무엇인가를 수범으로 가르쳐주었고 당신들이 있어 나는 백걸음을 한걸음에 갈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지들. 저의 오늘 시험에 동지적인 축복을 보내주기 바랍니다.
이젠 앞으로! 누가 그랬던가. 옳아. 정철실장이 시험장으로 떠나면서 일지에 쓴 글이였지.
나는 뭐라고 할가. 그것이다. 자, 김형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앞으로! 먼저 압시험장으로.)
모든것을 각오하니 마음이 편해지였다. 김형규는 《철의 도시 밤하늘에 붉은 눈이 내리네》를 나직이 부르며 주섬주섬 작업복을 갈아입기 시작하였다.
모자를 쓰고 출입문을 연 김형규는 하마트면 들어오는 사람들과 이마를 쪼을번하였다. 떠나간줄 알았던 박사원생들이였다.
《왜들 돌아왔어? 왜 기차를 못탔나?》
둘은 대답없이 방 한복판을 가로질러가더니 배낭가방과 트렁크, 지함따위를 잠자리로 쓰는 긴의자에 털썩털썩 내던지는것이였다.
회의참가자단체가 조직되여 일반차표가 긴장하다더니 끝내 떼지 못한 모양이라고 짐작하였다.
《차표를 못뗀 모양이구만. 알았어. 내 련합당에 제기해 풀어주겠으니 무산-평양행을 타구 떠나라우.》
《우린 안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키가 꺽뚜룩하고 얼굴살결이 처녀처럼 흰 동주가 턱에 난 여드름을 긁으며 도전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내뱉는다.
《건 또 무슨 소리야. 변론에 참가하구말구하는걸 동무들 제 마음대루 결정하는가.》
《우린 강좌장선생님이랑 함께 강편가열시험을 치른 담에 가기로 했습니다.》
《시험을 언제 한다 그래. 떠나라우. 준비가 채 안되여서 날자가 있으니 변론하구 와서도 참가할수 있어.》
《거짓말입니다. 우린 오늘 저녁에 한다는걸 알구있습니다.》
《뭐 오늘 저녁?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구만. 어디서 들었어?》
키는 엇비슷하나 대신 동주보다 몸집이 좋고 얼굴이 철색인 철민이가 자그마한 낙지지함을 가리키며 동주와 같은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윤경이 할머니(채호명의 로친)한테서요. 우리가 떠나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역에 나왔댔습니다. 이걸 주려구요.》
《윤경이 할머닌 알지두 못하면서 무슨 근거없는 소릴 하나. 책임자는 난데. 다른 일 없어. 오후차로 떠나라우, 무조건.》
박사원생들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뻗대고 서있는것이였다. 형규는 음성을 낮추며 사정하였다. 여전히 요지부동의 자세들이였다.
그는 결이 나서 소리치다싶이 음성을 높였다.
《동무넨 총각들이야. 죽자구 그래?》
《싫습니다.》
《선생님도 총각입니다.》
박사원생들은 맞받아소리치며 형규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경쟁을 하듯 따지고들고 사리를 내들며 형규를 몰아대는것이였다.
《선생님은 강의시간에 졸거나 과제수행을 못해오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신칙하군 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간부임명이나 먹을알이 있는 직종을 바라고 또는 쓸데없는 리론글이나 가득 써서 학위나 받으려고 꿈꾸었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전공을 바꾸는것이 좋다, 과학탐구 그자체는 한생이 아니라 대를 이어 혹은 생명도 서슴없이 바칠것을 요구하고있다. 때문에 우리 교육자들은 금속공업이라는 자기 조국의 큰 짐을 서슴없이 떠메고나갈 사람외에는 교육학적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시각에 와서 우리를 왜 전투장에서 떠나보내는겁니까.》
《우리가 과학앞에 성실치 못했습니까. 우리가 새 기술도입에 참가하여 불성실하게 일했습니까. 어째서 사고가 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우리
제자들을 헛키우지 않았다는 행복감과 대견함에 마음이 후더워졌다. 그들 모르게 얼굴을 쓰는 시늉을 하며 눈가에 맺힌 물기를 훔쳐내였다. 김형규는 제자라기보다 동지적, 혈연적감정이 절로 솟구쳐 그들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한결 더 친근한 말투로 격려해주었다.
《동주야, 철민아, 너희들 다 컸구나. 고맙다.》
그는 박사원생들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럼 우리 어디 해보자꾸나.》
…0시가 가까와오고있었으나 대야금기지는 여전히 잠들지 않고있었다.
대공무선전화기의 동작상태를 다시 확인한 김형규는 채호명을 돌아보았다.
《시작해볼가요?》
《그럽세.》
형규는 무선전화기에 대고 말하였다.
《동주, 시간이 되였다. 자기 위치를 차지했는가.》
뜻밖에도 무선전화기에서는 동주가 아니라 신정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차지했다!》
김형규는 놀랐다. 하지만 의문을 풀 사이가 없었다. 지휘를 요구하는 처녀의 엄격한 목소리가 재차 울렸던것이다.
《좋다. 시작하라.》
《가스변, 공기변을 열었다. 조작준비끝. 그리로 가겠음.》
왔다. 마주보았다. 모든것을 초월한 평온한 눈빛들이 심장속에 흘러들어 높뛰는 박동을 더해준다. 김형규며 신정은 한손을 들어 꽉 서로 틀어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