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3

 

오리공장후문으로는 공장으로 들어오는 먹이를 비롯한 물동량들이 대저울에 의해 정확히 측정되여 각 창고로 입고되군 했다. 대저울은 콤퓨터로 현시되는 전자기계였다.

기다란 대저울앞에는 사방 유리로 막힌 오똑한 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계량실이였다.

지금 그곳에서 계량원인 은희가 긴장해서 콤퓨터를 조종하며 차들의 무게를 달구고있었다. 공장에서는 요즘 멀리 시외에 있는 배합먹이공장에 가서 배합먹이를 수송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집중적으로 차편대를 무어가지고 떠나는 바람에 대저울앞은 여느때없이 분주했다. 은희는 한차한차 빈차들의 무게를 달구느라 헛눈을 팔새가 없었다.

공장에 들어오는 일체 물동량과 먹이들이 이 저울을 거쳐서 창고에 들어가기때문에 한낱 계량원에 불과한 은희이지만 엄격하게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군 했다. 그러나 저울대앞을 떠나서는 누구든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생글생글 미소를 보내군 했다. 박은희, 하는 이름은 발음상으로 《바구니》로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웃는 얼굴이 보고싶어 그를 찾을 때면 꼭 성을 붙이군 했다. 정말이지 그는 탐탁하게 엮은 바구니같이 오동통하고 그의 얼굴은 언제나 발가우리하게 달아있는데 그 모습은 신통히도 빨갛게 익은 사과가 가득 담긴 동그란 바구니 같았다.

대저울칸으로 한원걸이가 슬며시 들어왔다. 공장의 유일한 약전기술자인 원걸은 지금 설비상태를 보러온것이다. 은희에 비하여 대조적인 큰 키를 숙이며 계량실에 들어선 원걸은 선량해보이는 눈으로 은희의 콤퓨터와 저울상태를 깐깐히 검토해보고 이상이 없는가를 확인했다.

은희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원걸이가 들어설 때부터 그의 존재를 느끼였고 그의 마음속을 알아맞추었다.

설비에 이상이 없다는것을 확인한 원걸이가 이번에도 한마디 말이 없이 휴계실안에 들어가서는 언제인가 은희가 부탁한 책과 기억기를 놓아주고는 들어오던 때처럼 소리없이 문앞으로 다가선다.

그제야 은희는 살짝 얼굴을 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치였다.

은희는 콤퓨터화면에 현시된 수자들을 기록하는 자기 일을 하면서도 원걸이가 무엇을 했는지, 또 퇴근후에는 어디서 만나자는 그의 약속을 속속들이 알아맞추었다. 생김새도 성미도 완전히 반대인 그들이지만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서로 위해주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맞추는 사이로 되였다. 무엇보다 은희는 무슨 일에서나 만능인 원걸이가 여간 자랑스럽지 않았다.

오늘 만나서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부탁을 할가 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은희는 별안간 화들짝 놀라며 원걸이에게 어서 나가라고 눈짓했다. 지금 당비서가 저울대주위를 돌면서 떠날 준비를 하는 화물차들을 지나 계량실로 들어서고있었다. 원걸은 미처 나가지도 못했다.

신형일은 계량실에 들어서다가 어색해서 주춤주춤 뒤걸음치는 원걸을 알아보았다. 별로 키가 커서 전보대같은 인상을 주었지만 이번에 보니 기술이 높았고 머리가 좋아 사랑이 가는 청년이였다.

당장 먹이공급을 기계화할 생각으로 석태인을 만나 과업을 주면서 제기되는게 무엇인가고 했더니 시험은 차천호네 비육직장호동에서 진행하되 성원으로는 한원걸을 보충해줄것을 요구했다.

신형일은 석태인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먹이공급을 기계화하는 일이라면 그 무엇이든 풀어줄수 있었다.

《원걸동무, 알깨우기실기계조립이 어느 정도요?》

《오늘로 끝냅니다.》

《바쁜 속에서도 나왔구만.》

《오늘 집중수송을 하기때문에 설비에 이상이 없는가를 봐주라고 해서 들렸습니다.》

《음.》

지금 신형일은 그를 바라보며 남매가 신통히도 눈매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원걸이가 공장적으로 수재라고 소문이 났지만 생산과에서 공장의 생산지휘를 하는 그의 누이인 한미순이도 실력이 높다는것을 신형일은 이미 알고있었다.

첫날 자전거로 올 때도 보았던것이고 이번에 숙소꾸리기에 동원된 그를 보니 한미순은 아주 착실했다. 그런 녀성이니 기사장이 이번 농업부문열성자회의참가대상에서 빼면 안된다고 그렇게 우긴 모양이였다.

현장성원들을 많이 넣는 바람에 그가 제외되였지만 사실 선발될 자격이 응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갑자기 원걸이가 슬슬 옆으로 빠지더니 황급히 계량실을 빠져나갔다. 그와 어기면서 기사장 우덕진이가 들어왔다. 몸집이 우람한데다 털깃이 붙어있는 덧옷을 입은 그가 들어오자 좁은 계량실이 꽉 차는듯했다. 기사장은 어제 밤 늦게까지 배합먹이직장건설장에 있었다고 하는데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없이 오히려 배포유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얼굴이 너무 매끈한 바람에 랭정해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신형일에게는 그런 기사장이 은근히 부럽기까지 했다. 아무하고나 척척 말을 거는 구변과 무탈한 성격을 가진 그를 보면 자연히 힘이 나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래서 그한테 떨어질줄 모르고 따라다니는 《대틀》인가?

갑자기 《저녀석은 왜 여기 자주 와?》하는 기사장의 거친 목소리에 신형일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났다. 방금전까지 떠돌던 미소가 사라진 기사장의 눈길이 온곱지 않았다.

《설비상태를 보러왔는데요 뭐.》

톡 쏘는듯한 은희의 말 역시 곱지 않은 바람에 신형일은 의아해서 은희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사과알을 련상케 하는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비서동지, 이 앤 제 조카입니다. 그저 늘 곱다곱다 했더니 이렇게 톡톡거리는 버릇만 늘어났습니다. 비서동지에게 의자 권할 생각도 안하고 말입니다.》

《허허.》

신형일은 이 계량원이 기사장의 조카라는것을 이미 알고있을뿐 아니라 은희의 어머니가 의료일군으로 외국에 나가면서 딸을 동생에게 맡겼다는것까지 알고있었다.

삼촌의 말에 그제야 생각났는지 은희가 얼른 휴계실에서 의자를 가지고와서 조심히 놓았다.

신형일이가 의자에 앉자 우덕진이도 은희의 의자에 앉았다.

《기사장동무, 배합먹이공장으로 가는 차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소. 우리는 언제가야 자체로 배합먹이를 꽝꽝 생산하겠소?》

《이젠 배합먹이직장이 다 되지 않았습니까. 설비만 들여오고 조립하면 우리도 남의 공장 신세 지지 않아도 됩니다.》

우덕진의 말은 언제나와 같이 얼음판에서 수레가 미끄러지듯 거침이 없었다.

《방금 원걸동무에게 물어보니 알깨우기실의 기계조립은 오늘로 끝난다누만.》

《그다음은 배합먹이직장입니다.》

《이렇게 건물들도 하나하나 완성되고 기계조립도 실현되여 설비의 현대화는 끝나가는데 먹이생산의 현대화는 막연하거던.》

신형일은 이 순간 먹이생산의 현대화에 대하여 기사장이 시원한 소리를 하기를 진정으로 기대했다.

《걱정마십시오. 기술자들이 지금 발효제연구를 하고있지 않습니까.》

기사장이 이번에도 막힘없이 말을 했지만 신형일의 머리속은 개운해지지 않았다.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실질적이여야 하겠는데.

발효제연구를 하는것만이 과연 먹이생산의 현대화일가? 그것만 완성하면 현대화가 완성되였다고 만세를 부를수 있을가.

《기사장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먹이생산의 현대화 말이요?》

《먹이생산의 현대화 말입니까? 배합먹이를 발효시키고 그 공정들을 다 잘 꾸리고, 그거야 지금 우리가 하는게 아닙니까?》

기사장은 무슨 말이냐는듯 큰 눈을 디룩거리며 뻔히 바라보았다.

그러는때 밖에서 차들이 부릉거리기 시작했다. 떠날 준비가 다 된것이다. 기사장은 더 말할 시간이 없었다.

《어서 가보오.》

그러며 신형일은 계량실을 나왔다.

신형일은 먹이생산의 현대화를 놓고 기술일군인 그와 진지하게 토의하고싶었지만 당장 차를 타고 배합먹이공장으로 떠나는 그의 발목을 잡을수는 없었다. 공장에 남아있는 종금오리들을 탈없이 기르자면 또 종자를 보존하자면 어쩔수없이 다른 공장에 가서라도 배합먹이를 들여와야 했다. 그것도 한창 바쁜 기사장을 보내야 흐지부지없이 배합먹이를 실어올수 있다는것이였다. 이미 부지배인시절에 뻔질나게 배합먹이공장에 다니여서 그만큼 안면이 넓은 사람이 없기때문이였다.

우리도 빨리 배합먹이직장건설을 다그쳐서 자체로 배합먹이를 생산해야 한다. 오리먹이생산의 현대화는 저런 배합먹이의 선행을 놓치고서는 생각도 할수 없는 일이다.

또다시 신형일의 머리속으로는 먹이생산의 현대화와 그 현대화를 실현하자면 무엇부터 해야 할것인가 하는 물음이 수없이 일어났다.

《그럼 떠나겠습니다.》 이미 선두차앞에 간 기사장이 이렇게 말하며 위엄있게 차문을 열어제꼈다. 그때에도 그의 얼굴엔 사뭇 만족하면서도 자신만만한 웃음이 어려있었다. 그러다가 누구를 보았는지 《여, 35호, 뭘해.》하고 소리를 냅다지르는데 거쉰 목소리가 악청으로 뽑아졌다.

기사장은 현장에 나오면 자주 저렇게 목청을 높이군 한다고 말들을 했다. 그러는중에 원래 듣기 좋은 저음가수목소리가 이젠 저런 게사니청으로 됐다는것이다.

《자, 수송대 앞으로!》

기사장은 구령이나 치듯 호기있게 소리지르고는 차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탄 차가 선두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믿음직한가.

그런 《대틀》인 사람이 차학선의 정문출입을 놓고 그렇게 까박을 붙여야 할가. 정말 수의방역체계를 철저히 세우자는 의도에서일가.

떠나는 수송대를 바래우는 신형일의 머리속에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살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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