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2 장

원인없는 우연이란 있을수 없다

1

 

석양무렵 공장정문으로 체격이 그쯘한 한 남자가 별로 주밋거리며 다가오고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검은 양복에 구두를 신은 점잖은 차림이지만 걸음걸이는 어딘가 허청거렸다. 정문에서 예쁘장한 경비원처녀가 깍듯이 인사를 하자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정문을 통과했다.

면목이 있는 사람이 지나가다가 알아보자 그의 고개가 버쩍 쳐들렸다. 눈은 저 멀리 어딘가에 향해지고 턱이 거의 사선으로 들리워졌다. 누군가 도고하면서도 턱없이 건방져보이는 그 자세를 놓고 코구멍으로 비물이 들어간다고 비난한적이 있지만 그의 고개는 지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비가 온다 해도 뛸줄 모르는 틀스런 걸음이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전과 같지 않다는것을 인차 알았을것이다. 옷차림이며 모습은 그전과 다름없건만 뽑아놓은 파처럼 생기가 없었다. 서있는것만 보아도 랭기로 서늘하던 온몸에 주접이 칭칭 감겨든것같은 모습이였다.

그는 강시연이였다. 강시연은 어제 두연오리공장 로동자로 일할데 대한 지시를 받았다. 설마 해임까지야 되랴 했던 그 설마가 끝내 일을 쳤다. 오리공장을 생각하니 당비서인 신형일이부터 생각났다.

문득 그가 이 일을 들고나오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강시연은 그 자리에 주춤 섰다. 하지만 인차 머리를 저었다. 물론 공장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를수 없지만 내려간지 얼마 안된 그가 이런 엄청난 문제를 꺼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신형일을 만나는 일이 제일 난처했다. 언제인가 같은 지도소조에 속한 때부터 강시연은 신형일에게 있어서 언제나 년장자였고 상급이였다.

눈앞에는 언제나 양지만 보였는데 세상에는 양지도 있고 음지도 있었다. 이제부터는 음지가 자기의 살 곳이였다. 어깨가 내려앉게 한숨을 내쉰 그는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고는 당비서방으로 향했다. 문앞에 다가서던 강시연은 안에서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를 가늠하자 슬며시 문손잡이를 놓고는 긴숨을 내쉬였다. 말소리가 나는걸 봐서는 안에서 무슨 사업토의를 하는것같아 주저되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지체할수도 없었다.

용기를 내고 다시 손잡이를 당기려는찰나 별안간 문이 활 열리였다.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강시연앞에 나타난 신형일이가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한순간 그들은 굳어진채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얼마전에 시당청사에서 헤여질 때 이렇게 만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던가.

《방금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 어서.》하며 신형일이가 옆으로 비켜섰다.

너렁청한 방엔 누구도 없었다. 신형일이가 전화하는 소리를 누구와의 사업토론으로 여겼던 강시연은 어이가 없어 제먼저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신형일은 앉을념도 않고 다짜고짜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강시연은 잠시 입을 열 생각을 못하다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신형일의 얼굴을 치떠보고는 《담배 한대 없소?》하고 내쏘듯 첫말을 뗐다.

《아참.》

그제사 그가 잊었다는듯 얼른 책상서랍에서 담배곽을 꺼내고는 라이터로 불을 켜주었다.

강시연은 원래 담배를 피우지도 않았고 또 피울줄도 몰랐다. 담배 한모금을 빠는 순간 쓰거움이 한꺼번에 올라오며 당장 뱉아버리고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담배피울줄 모르는 사람이 항용 그러는것처럼 깊이 들이빠는것이 아니라 그저 빠는척 했다.

어쩔수없이 신형일에게 여기에 내려오게 된 사연을 말하려니 강시연은 당장에 심장이 빠개지는듯했다. 경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아래사람으로밖에 안되는 그앞에 이런 꼴로 나타나다니. 그러나 엄연히 그는 신형일이가 있는 공장에 로동자로 왔다. 늘그막에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꿈엔들 생각이나 했을텐가. 담배연기를 거칠게 내뿜은 강시연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고 사연을 털어놓았다.

《이번 지도사업에서 제기된것이 있었소.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걸 그만 놓쳤소. 우리 조의 한 성원이 중간에서 철수하는바람에 내가 결속했는데 꺼꾸로 신소가 제기되였소, 정말 뜻밖이였지.》

강시연은 이렇게 간단히 말하고나서 계속했다.

《11년전에 오리공장에서 있은 일까지 겹치는 바람에 문제가 커졌소. 그전의 일이니 아마 동무는 모를거요. 후-》

침울해진 강시연은 또다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아니, 그럼 우리 공장의 전 기사장건을 강동지가 처리했는가요?》

눈을 흡뜨는 신형일이보다 더 놀란것은 강시연이였다.

《그럼 동무가?》

《예, 제가 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강시연은 망연히 굳어졌다. 그의 손에서 담배대가 떨어졌다. 담배재가 책상우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흩어진 담배재를 내려다보는 강시연의 입귀가 이그러지였다. 세상에 우연이라는것이 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도 지궂은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삽시에 신형일에 대한 쓰거움때문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피대줄이 솟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불끈 쥐였던 주먹이 스르르 풀리였다.

《그렇게 됐댔군.》

이번에도 설마가 또 그를 배반했다. 그는 앉은자리에서 가슴을 쭉 펴고 신형일을 바라보았다. 자기의 체격과 존엄을 되살린 강시연은 언짢게 얼굴을 찌프렸다. 다른 사람이 보면 누가 누구의 지시를 받는지 착각할 정도였다.

신형일이와 더 마주앉아있고싶은 생각이 없어진 강시연은 벌떡 일어 났다.

《오늘부터 우리가 어디서 거처해야 하는지나 알려주오.》

이렇게 내뱉는 어조에서도 차거운 랭기가 풍겼다.

《그럼 가족두 같이 왔습니까?》

신형일이가 한발자국 내짚으며 하는 소리였다.

《차가 지금 동네에 있소.》

그리고는 제먼저 뚜벅뚜벅 문가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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