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1 장

첫 상면

11

 

신형일은 아빠트앞에서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젖히고 올려다보이는 고층아빠트인데 다행히 집은 승강기의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될 5층이다. 신형일은 성급히 계단을 올라갔다.

마음이 급해 두개씩 올리짚었다. 오늘 아버지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안해의 전화를 받았다.

하긴 이사한 집에 아직 와보지 못해서 오늘래일 한번 가보려고 계획했던참이였다. 들어서자바람으로 마주나오는 안해에게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서 물어보고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제일 아늑하고 조용한 방에서 누운채로 손녀가 떠넣어주는 죽을 들고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시간을 다 냈니.》

아버지가 웃음을 지어보이려 하는데 얼굴이 이그러지였다.

신형일은 얼른 딸에게서 죽공기를 넘겨받고는 아버지옆에 앉았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더듬어보듯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신형일은 오래간만에 아버지의 죽시중을 들었다. 한숟갈한숟갈 어린애처럼 받아서 넘기는 아버지를 보느라니 가슴속에서 눈물이 끓어올랐다.

열여섯 초년생부터 전장을 누벼온 아버지는 몇년전만 해도 장령이였다.

총상자리가 도지고 년로한 몸이기에 더 어쩌지 못하고 군복을 벗은 다음부터 아버지의 건강은 걷잡을수없이 악화되였다.

《아버지, 집이 어떻습니까?》

《좋구나, 대동강이 바라보이고 공기도 좋다. 방도 마음에 들고.》

신형일은 아버지의 그 말에 그제야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버지의 크지 않은 방은 아담하게 정리되여있었다. 창가림천도 안온한 색이였고 머리맡의 나지막한 장우에는 늘 들을수 있게 록음기가 놓여있었다. 누워서도 볼수 있게 어항과 화분이 마주보였다. 그것들은 아버지가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가꾸는것들이였다.

신형일은 아버지의 건강과 취미를 존중히 여겨준 안해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사실 홀시아버지를 모시는 안해의 부담이 제일 클줄 알면서도 그것을 응당하게만 여긴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그래, 차학선기사장을 만났느냐?》

《예, 만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인사는 전하지 못했습니다.》

신형일은 의혹이 어리는 아버지에게 차학선에 대한 말을 자상히 이야기했다.

《그래서 제가 시당책임비서동지를 만났습니다.》

비록 세월이 흘렀지만 이 사건을 옳게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당위원회의 립장을 명백하게 밝히고 제기한 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있다가 혼자말처럼 조용히 한마디 했다.

《이제 공장일도, 그 사람일도 다 잘될게다.》

잠시후에 죽 한그릇을 비운 아버지가 고르로운 숨소리를 내며 단잠에 들자 신형일은 발끝걸음으로 전실로 나왔다. 가구들이 다 제자리에 놓이고 부엌에서는 구수한 장국내가 풍겨왔다. 큰살림을 떠이고와서 이렇게 며칠사이에 정리를 끝낸것을 보면 역시 손끝이 여문 안해가 달랐다.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부엌으로 나온 신형일은 자기의 마음을 이 짧은 한마디 말속에 담고는 식탁에 마주앉았다.

안해는 조용히 저녁상을 차렸다. 제일먼저 소담하면서도 먹음직한 찐빵접시가 놓여졌다. 아마 남새빵일것이다. 신형일은 집에서 담근 메주장으로 끓인 국맛부터 보았다. 변함없는 안해의 마음처럼 집안의 국맛은 여전했다. 안해가 끓인 이 장국을 아버지가 제일 좋아했다.

안해의 손맛과 성품을 제일로 여겨주는 며느리에 대한 시아버지의 애정은 아마 이 국맛에서부터 시작된지도 몰랐다.

안해는 이사할 때 공장사람들이 수고했다면서 그날에 있은 일들을 간추려서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물론 안해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신형일은 잘 알았다. 한생을 한개 기관의 당비서사업을 한 친정집에서 좋은점을 많이 물려받은 안해는 남에게서 진 신세를 그대로 넘기지 못했다. 무엇이든 들고왔을 땐 함부로 받지 않으려고 왼심을 썼고 혹 그것이 너무 실례로 된다고 생각되면 반드시 그 배로 되인사를 하기때문에 생색을 내려던 사람들은 두번다시 인사차림을 할 생각을 못하군 했었다.

이번에 수고를 많이 한 기사장에게 딸의 학용품을 가방채로 준비해준 이야기는 신형일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할 일이 많은 기사장이 고맙게도 이사문제까지 관심했는데 그대로 있으면 안될 일이였다.

안해는 황춘영의 집에 갔다온 이야기도 했다. 남편을 잃고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사는 한 녀인에 대한 이야기는 신형일의 가슴에 속속들이 들이박혔다.

《얼마나 이악하게 살림을 하고 정갈한지 탄복했어요. 방바닥에 먼지 한점 있을세라 박박 쓸고 닦고… 음식은 또 어떻구요. 그가 해주는 감자튀기를 먹어봤는데 그걸 하나 놓고 그의 손재간을 알게 됐어요. 그릇들이 어찌나 알른거리는지 거울같았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어느 기관의 양어기사인 한 남자가 몇년째 지궂게 따라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하긴 그렇게 알뜰하고 이악한 솜씨에 반하지 않을 남자가 있겠어요?!

현아 아버지, 그는 남편만 섬기던 자기 마음을 공장에 다 바치면서 산다고 해요. 공장에만 정을 쏟고싶대요. 그를 잘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진정이 배인 안해의 당부였다.

신형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녀성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앞으로 그를 비롯한 녀성들과의 사업에서 무엇을 선차로 놓아야 할것인가를 시사해주는 이야기였다. 머리속에 황춘영에 대한 이름이 새겨졌다.

현대화에서 중요한것의 하나가 두단도에 새로운 문명을 가져오는 일이였다. 공장을 일신시키는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관습에서 새로운 문명의 바람이 일어야 한다. 자기 집을 알뜰히 거둘줄 아는 사람은 생활도 빈틈없을게다.

이제 황춘영을 비롯한 녀성들이 공장과 사택마을 종업원들의 생활에서 새롭고 활기있는 생활을 창조하는데 앞장서야 할것이였다.

신형일은 생각에 잠겨 다시 국 한숟가락을 떠먹었다.

《또 있어요.》

《또? 어서 말하오.》

오래간만에 가정적인 분위기에 빠진 형일은 안해의 말을 다 들어줄 용의로 고개를 끄덕였다.

《현아의 옷을 사려다가 목격한 일이예요.》

안해가 마른 행주로 손을 닦으며 식탁에 마주앉았다.

《이미 한패의 처녀들이 이옷저옷 만져보며 고르고있더군요. 퍼그나 시간이 흘렀지만 처녀들은 물러서지 않더군요. 그 처녀들때문에 어떤 녀인들은 짜증을 내며 다른 매대로 가버리군 했어요. 저도 그 처녀들때문에 다가서지 못한채 걸린 옷들을 구경만 하고있었지요. 그런데도 처녀들은 입어보고 대보면서 계속 고르기만 하지 않겠어요. 다른건 다 맞지만 하나같이 소매가 짧아서 겅충 올라간다고 타발하면서 말이예요. 갑자기 옷을 팔던 녀인이 신경질을 내더군요.

너희들 오리공장에 있지 하고 대바람에 짚더니만 거침없이 내쏟지 않겠어요.

<내가 파는 옷들은 다 규격품이야. 몸에는 맞는데 팔만 짧다는거야 제 팔이 잘못된거지 뭐. 처녀동무들, 그렇지 않아?> 이렇게 말하며 처녀들의 팔을 빤히 쳐다보는게 아니겠어요.

그만에야 처녀들은 얼굴이 빨갛게 되여 황황히 달아났어요.》

《오리공장처녀들이 팔이 길다는건 무슨 소리요?》

신형일은 자기 딸이 남의 말밥에 오른것같은 감정에 얼굴이 달아올라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격해졌다.

《오리공장처녀들 팔이 뭐 특별히 길겠어요? 입직해서부터 처녀들이 오리먹이를 힘겹게 손으로 나르다나니 그런 시비를 하겠지요.》

그럴수 없다고 우기려던 신형일의 입은 다시 열려지지 못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처녀들이 오리먹이를 운반하느라면 팔이 길어지는지 몰라도 결코 흘려들을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가 무거워졌다.

결국 이것은 오리공장에서의 일이 고되다는것을 의미한다.

신형일은 더 견디지 못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가슴이 달아올라 나갔는데 밖에서도 그의 가슴은 식어지지 않았다. 탁한 공기가 짓누르는듯 가슴을 내리눌렀다.

실지로 관리공들은 오리먹이를 량손으로 들고 운반한다. 애어린 처녀들이 하루종일 그 일을 하느라면 정말 팔이 길어지지 않을가.

이런 말을 처녀들의 부모가 듣는다면 오리공장에서 일을 시키고싶겠는가. 당장 떼겠다고 할지 모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처녀들이지만 집안의 귀한 딸의 허물이 드러나 모욕을 받은것만같아 신형일은 진정하기 힘들었다. 먹이운반을 기계화, 자동화해야 한다. 무조건.

문득 언제인가 만났던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기계전문가가 생각났다. 가만, 그 사람 이름이 석태인이라고 했지. 이적기를 창안한 수준이면 이런 일은 얼마든지 할수 있다. 야심으로 반짝거리던 그의 눈빛을 생각하니 당장 그를 만날 생각으로 가슴이 불탔다. 그에게 과업을 주자. 그래서 다시는 그런 말을 듣지 않게 해야 한다. 다시는. 그다음은 황춘영의 이름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참으로 쌓이고 덧쌓이는 사람들의 문제며 자기 사업에 대한 자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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