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3 장
26
(2)
김형규는 시험일지 맨 뒤장을 덮으며 성급하게 일어섰다. 출입문쪽으로 가려던 그는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들고 호출건을 성급하게 두드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소?》
앞에 앉아 도면을 들여다보고있던 채호명이 그의 이상한 거동에 놀라 눈을 치켜뜬다.
《신정동물 찾습니다.》
《신정이야 형규선생이 알지 않소. 재료구입하러 아침에 생기령으로 보낸걸 잊은거구만.》
《아, 그랬지.》
송수화기를 놓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회오와 자책으로 괴로왔다.
《왜 그러나?》
《내가 신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가.》
《?!》
김형규는 시험일지를 호명에게 밀어놔주며 흥분하여 말하였다.
《이걸 보십시오. 난 여기에서 많은것을 시사받았습니다. 정철실장은… 이 시험일지는 그대로 정철동무의 주장이고 우리에게 안기는 엄한 채찍입니다.》
시험일지를 끄당겨놓고 얼추 몇페지 번져보던 채호명이 영문을 알아차렸는지 돋보기를 찾아드는것이였다. 잠시후 시험일지를 다 읽었는지 호명이 손끝으로 책자를 형규쪽으로 밀어보낸다. 그의 얼굴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허나 김형규는 채호명의 심중에서 어떤 격랑이 일고있는지 다는 몰랐다.
《이젠 알만합니까?》
《그래.》
《용서하십시오, 아바이. 사람들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새 기술도입을 책임진 내가 신념이 없이 잠시 헛눈을 팔았습니다.》
《용서구뭐구 할게 있소. 선생이야 첫 개척자들에 대한 존중과 의리심때문에 구형체론의를 하려 한거지. 우리야 벌집형을 하자구 의견을 이미 합치지 않았소. 그리구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선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구만.》
채호명은 얼핏 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책상우의 도면이며 서류들을 정리하였다.
《점심시간이 돼오는데 식사하러나 가기요. 참, 거 정철실장의 시험일지를 내 한번 더 보구 래일아침에 주면 안될가?》
《그렇게 하십시오.》
×
《왜 왔소?》
채호명은 응대없이 량수책상에서 제일 가까운 의자에 가앉았다. 정구철이 호명을 흘깃 건너다보고나서 그냥 책장을 번지며 퉁명스레 말을 던진다.
《사적인 일이라문 후에 합소. 보다싶이 난 바쁘우.》
《사적인 일은 무슨. 난 부기사장한테 여태껏 일신상의 문젤 들구 찾아다닌적이 없거니와 그러고싶지도 않아. 내 이 방을 찾은건 부기사장에게 한가지 진심으로 권고하고싶은것이 있어 왔네.》
《권고?》
정구철이 의아쩍어하다가 허리를 펴며 마지못해하는 인상을 지었다.
《하지요 뭐.》
《부기사장이 부총리동지에게 신정이와 같이 못있겠다며 자길 내보내달라고 제기했다면서?》
《그랬지요.》
《구형축열체론의를 계속하자고 건의한것두 사실이렷다?》
《그게 어쨌단 말이요?》
《에끼, 이 덜된 녀석.》
《뭐요? 이 아바이가?》
정구철의 얼굴이 대뜸 붉어지였다. 구철은 벌떡 일어서며 성을 내였다.
《녀석이 어쨌다구? 아바이가 대체 누구게 그따위 소리요?》
《난 지금 정묵형님(정구철의 아버지)을 대신해서 말해. 당장 앉지 못할가?!》
서슬딩딩한 채호명의 기색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낀 정구철은 두손으로 책상가녁을 잡으며 무릎을 꺾었다.
호명은 의자를 더 바투 끄당기며 두손을 책상우에 얹었다.
《형규선생네들이 내려와 새로운 기술을 내놨을 때 난 부기사장의 립장을 리해했소. 나로서도 그네들의 방식이 생소한데다 정철실장의 심혈이 깃든 구형체가열로가 부정당하는것이 알찌근했으니까.
롤강그를 재생해쓰자는 나의 제안을 부기사장이 아주 불편해하였다는것두 참구 넘겼고 축열체문제두 마찬가지요.
난 신정선생의 벌집형축열체를 무조건 써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이야. 그 일을 놓구 주견을 세우지 못하고있던 형규선생네들도 이제는 결심을 세웠고. 한데 부기사장은 어째서 구형체에 그리두 집착되여있나, 응? 왜 부디부디 왼고집인가? 말해보게. 내 오늘 자네가 무슨 심통에서 그러는가 이걸 꼭 알고싶어.》
《그래요? 좋수다. 내 말하지요.》
정구철은 량수책상에 널려있는 사업수첩이며 문건들을 괜히 한켠으로 밀어버리며 결기가 난 태도를 취하였다.
《내 형규선생네들이 내려와서부터 눈에 거칫거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소. 형규 그 사람이 저희들 방법만이 제일이라고 여기 사람들의 주장이나 의견같은건 들을념조차 했소? 하지만 이건 지나간 일이고 내가 제일 노엽고 불쾌한것은 그네들보다 아바이와 신정이요.
신정이한테도 내 지나치다할 정도로 말했지만 아바이, 신정이 그게 뭐요? 뭐, 새 기술이 도입되기때문에 아무것도 받아서는 안된다구? 량심이 가리킨대로 행동한다는거요? 아바이도 같지요. 아바인 뭐 우릴 내신하면 세상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한다고 말했다면서요?
아바이, 그래 아바이나 신정이 우리 애만큼 구형체에 의한 기술 아우? 말 좀 해봅소. 우리 정철이보다 더 잘 아는가 말이우?》
《…》
《그것 보우. 그래서 내 다 믿지 못하겠다는거요. 주영호부총리동지에게 내보내달라구 한것도, 나가더라도 구형체론의를 계속하자고 건의한것도 아바이가 말하는 이런 〈심통〉때문이였소.》
《음- 그래 그런 행동을 하였단 말이지.》
채호명은 탄식하며 길게 말꼬리를 끌었다. 호명은 정묵직장장이 생전에 맏아들이 대틀이라고, 앞으로 자기뒤를 이을 자식은 정구철이라고 입버릇처럼 외우는것을 늘 들어왔다. 채호명이 역시 정구철이 호협한 성격과 전개력, 강한 통솔력으로 일을 해제끼는것을 보아왔으므로 정묵직장장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동생일을 거들며 신정이를 괴롭히는가 하면 형규네 일에 건건이 왼주장을 내놓는다.
호명은 주머니를 더듬었다. 암만이고 찾아봐야 아침에 주머니에 넣는것을 잊은 모양이다. 정구철이 내미는 담배를 거절한 채호명은 입을 열었다.
《떠도는 소문 들으니 부기사장이 높은델 간다던데 이게 정설이 맞는가?》
《소문이요.》
단마디로 일축하는 정구철이였다.
《그렇다면 한가지는 터무니없는 추측이구만.》
《?》
《난 원래 부기사장에게 보신주의자감투를 씌웠댔소. 왜 그랬는가. 높은데 조동되여가는 시기에 새 기술도입문제가 제기되였으니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겠거던. 우선 사고를 내지 말아야 하겠지. 그렇게 하자문 우리가 이미전에 추진하던것을 내밀어야 할게고. 그렇게 하자니까 이런 일들을 계속 벌려놓게 되였습지.
구형체를 덮어놓고 우기지 않는가 하면 중유나 가스를 다같이 먹는 얼치기가열로를 주장했구 이말고도 틀림없는 보신주의자라고 찍어말할수 있는 일은 물건으로 있소. 형규선생네 방에 있는 세개나 되는 사고조서지함 말이요. 그러니 갈데없는 보신주의자의 행태가 아니겠나.》
격한 나머지 벗어진 이마까지 붉어진 정구철이 상체를 들썩거리며 반응하려 했으나 채호명의 엄한 눈길에 눌리워 볼편만 실룩거릴뿐이였다.
《한데 제 입으루 높은데 간다는건 소문이라니까 보신주의자는 아니고. 그런데두 이상한건 뭔가. 보신주의자는 아닌데 왜 그랬겠는가 이거지. 부기사장의 지금얘길 들어보면 내 거기 속을 대체 질정 못하겠소. 부친이 살아계셨드라문 내 물어보겠는데.》
《아- 아버진 자꾸 건드리지 마시우.》
정구철이 버럭 증을 내며 호명의 말을 꺾었다.
《아니 부기사장, 자넨 제 부친이 어떤분인가를 모르오. 제 동생 정철실장이 얼마나 정직하고 량심적인 과학자라는건 더욱 모르고. 난 현장지휘부에서 부기사장이 나가겠다고 제기한건 정말 잘했다고 보네. 우리 집단에는 부기사장이 있을 자리가 없네.》
《말 진짜 다했소?》
《앉게.》
채호명은 자리를 차고 일어서려는 정구철이를 재차 엄하게 눌렀다. 그는 품속에서 정철의 시험일지를 꺼내들었다.
《정철실장이 내보다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더 잘 안다는 부기사장 말은 옳소. 이건 정철실장의것이요. 한번 읽어보오. 이걸 읽고나면 정철실장이나 제 부친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알거네. 정말 아까운 사람이 먼저 갔소.》
채호명은 두손으로 책상을 짚으며 무겁게 상체를 들었다.
《그걸 보구 자기가 동생보다 뭐가 못한지 생각해보라구. 그다음 부기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