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9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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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시험을 앞두고 신정에게

 

신정! 이밤 나는 취할듯한 행복과 기쁨에 도무지 마음을 진정할수 없구만. 정말 고마웠어. 《구형체에 의한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과 그 경험》이라고 신정의 자필로 씌여있는 이 학위론문제목과 기술문헌들을 다시 보니 나의 감정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얼마나 훌륭한 처녀의 사랑을 받고있는 사람인가, 나처럼 평범한 과학자가 얼마나 옥같이 귀중한 길동무를 가지고있는가, 그저 이러한 다함없는 만족감뿐이지.

모든것이 이밤따라 다 생각이 나. 우리들의 관계는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로 시작되지 않았어. 그 어떤 성격상의 매력이라든가 혹은 집안래력을 따져보고 시작한것도 아니였고.

우리의 사랑은 오직 과학탐구의 길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과정에 싹이 텄고 꽃을 피웠어. 아마 그 나날에 내가 신정이를 진짜로 노엽힌것이 있다면 단 한가지뿐이라고 생각돼.

기억이 날거야. 우리가 처음 기술연구를 시작하였을 때 어느날엔가 론쟁을 하다가 순 고온공기만으로는 하두 힘들어서 신정인 내게 중유와 가스를 함께 쓰는 혼합형으로 돌리자는 제기를 했었지. 물론 나는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을뿐더러 나중에는 고함치다싶이하며 그 주장을 거칠게 일축해버렸댔어. 신정은 모욕감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쏟았고 이전보다 중유량이 절반이나 줄게 되는 기술인데 학적증명은 없이 왜 덮어놓구 큰소린가고 항변하면서.

그 일은 그것으로 그쳤고 오늘에 와서 우리는 그걸 두고 웃으며 추억하였었지. 하지만 구형체에 의한 고온공기연소식가열로가 열매를 맺게 되는 시각이 바투 다가오니 속에 맺혀있던 이야기들, 그중에서도 중유와 관련된 하나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그대로 넘길수가 없어.

그게 아마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한지 세해째 되는 겨울 어느날 저녁이였을거야. 그날 늦은저녁에야 상을 물린 나는 학위론문을 후열하려고 웃방에 올라가 책상에 마주앉았지. 한데 아래방에서 어머니의 지청구가 들려오더군. 직장에서 늦게 돌아왔는데 또 어딜 나가는가 하는거였어. 당시 우리 아버지는 열간압연직장의 고문직장장이여서 구태여 직장일에 사사건건 관심을 돌리지 않아도 되였어. 그런데도 아버지는 온 직장이 달라붙어 만t짜리 탕크에서 중유찌꺼기를 퍼내는 작업으로 낮과 밤을 이어대는데 고문직장장이 무슨 맘이 편해서 집에 늘어붙어있겠느냐고 하시더군.

그런 소리들을 귀결에 들으며 론문후열에 옴해있는데 문득 방문이 열리더니 아버지가 들어오셨어. 그 저녁 아버지와 내가 나는 대화는 이러한것이였어.

《뭘하고있니?》

《학위론문을 쓰고있어요.》

《제목이 뭐게?》

가열로화입시 중유소비량을 낮추기 위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입니다.》

《네 론문이 실천에 도입되면 중유소비기준이 어느 정도 낮아지니?》

《5%입니다. 그러나 차차 더 낮출수는 있어요.》

《50%정도까지 낮출수 있겠니?》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럼 너는 탁상공론을 하구있구나. 우린 중유가 들어오지 않아 빈 탕크에서 찌꺼기를 긁어다가 가열로를 돌리는지 오래되였는데 중유 그자체가 없는거나 같단 말이다.

막내야, 하나 좀 알구싶구나. 이 세상에 기름을 때서 가열로를 돌리는 방법밖에 없니? 세상에 가열로라는게 생겨서 오직 기름만 때야 한다는 법밖에 없는가 말이다. 어째서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은 이런걸 관심하지 못하느냐? 김철과 금속연구소에 차고넘친게 너희들 과학자, 기술자들인데 왜서 긴박하고 절실한 문제는 외면하고 너같이 허공뜬 일에만 신경을 쓰는가말이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아버지는 한참이나 묵묵히 앉아 담배만 태우시였어. 그러더니 단호하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

《그 학위론문은 포기해라. 현실을 외면한 그런 론문은 백개, 천개가 나와두 쓸데없다. 당장 옷을 입어라. 나와 현장에 나가자. 가열로에 기름이 아니라 무엇이 들어가는가, 이걸 채취하느라 우리 로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나가서 네 눈으로 보고 네 손으로 긁어모으면서 직접 체험해보아라.》

이렇게 되여 나는 아버지와 함께 생각지도 못했던 현장일을 하게 되였어. 현장에서 일한 기간은 한 달포쯤이나 되였겠는지.

그러나 나는 언뜻 지나간 그 달포의 날과 날들이 얼마나 귀중한것이였는가를 알게 되였어. 과학자로서, 이 나라 공민의 한사람으로서 량심과 애국이란 무엇인가를 통절하게 체험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할수 있지.

가스에 질식되는줄 알면서도 서슴없이 중유탕크에 들어가는 로동자들의 모습에서, 중유대신 들어오는 피치차량들, 그나마 기업소의 만t짜리 탕크에서 몇차례나 긁어낸것두 모자라 수백리 떨어진 먼곳에 가 화학공장의 빈 중유탕크바닥까지 훑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기업소업무부일군들과 로동자들의 이야기에서.

신정, 내 눈을 틔워준 이런 하많은 사연가운데 내가 제일 강렬하게 체험한것이 무엇인줄 알아? 위대한 장군님께서 중유문제가 제기될 때면 일군들에게 나는 고난의 행군이 한창일 때 얼마 안되는 자금을 가지고 어디에 쓸것인가 며칠밤을 두고 고민한적이 있다, 쌀도 사고싶었고 사탕가루도 사오고싶었으며 연유도 사오고싶었다, 그러나 나는 큰 맘을 먹고 그 돈을 CNC에 돌렸다, 결과 몇해후부터 우리는 그 자금폭에 해당되는 쌀이나 사탕가루, 연유보다 더 큰 리득을 보았다, 말하자면 과학기술발전의 덕, 과학자, 기술자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것이다, 이 중유배정안을 보는 내 심정이 그때와 같다, 제국주의의 추종세력들은 콕스와 함께 중유도 국권을 롱락하고 우리 생명선을 틀어쥐는 수단으로 여기고있다, 때문에 해가 갈수록 중유납입은 더욱 어려워질것이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콕스처럼 중유도 죽었다고 생각하고 일을 해야 한다, 만일 누가 내게 국사중에 여가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고 묻는다면 중유를 대신할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싶다라고 하신 절절한 말씀에서였어.

내가 학위론문을 포기하고 고온공기연소식기술도입을 필생의 과제로 선택한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이 말씀을 들은다음부터였어. 그러니 아무리 신정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혼합형주장을 일축해버리는것은 당연한 일이였지.

신정, 그런데 나는 요즘 왜 그런지 우리가 힘들게 개발하여 빛을 보게 된 가열로가 정말 만족한것인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어. 꼭 짚어말한다면 구형체의 부족점이 이상스레 내 눈길을 끄는것이 불안해. 이것이 새 가열로의 《아킬레스건》이 아니겠는가 하는 우려가 들거던.

물론 이 문제는 생산실천에 활용해보면서 완성하는것으로 락착지었지만 시일이 흘러갈수록 나는 가열시간이 점차 늘어나는 대신 축열체의 수명이 짧아지는것은 물론이고 나중에는 중유가열로의 생산원가와 같아질수 있다는것을 예감하게 되는구만.

이것이 만일 기정사실로 증명된다면 고온공기연소식가열로를 개발한 우리의 그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되고말거야. 그래서 난 모험이지만 가스류입을 배로 증가하는 방법으로 가열속도를 높여 축열체작동상태를 확인해볼 결심이야.

신정, 난 오늘시험을 통하여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단연코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하겠어. 아무리 구형체가 금과 같은 우리의 청춘시절이 바쳐진것이라 해도 비생산적이라면 이게 무슨 창조물이라 말할수 있겠어. 아마 들인 노력만 생각하면서 론문을 쓰고 생산에 도입한다면 우린 과학자로서, 공민으로서 조국과 인민앞에 떳떳치 못한 사람으로 남아있을거야.

오늘 저녁이면 모든것이 판가름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구만.

미안해. 자그마한 규모의 시험이므로 신정의 손까지는 필요치 않아 부러 알려주지 않았어. 시험을 조용히 치르자고 채아바이와 몇몇 사람들과 단단히 약속했으니까.

덧붙여 미안한것은 오늘 옛 등대에서 신정이를 맘껏 즐겁게 해주지 못한거야. 그러나 신정은 나를 리해해줄것이라고 믿어.

나의 신정! 시간이 되였어. 떠나기 전에 김철로동계급이 즐겨부르는 노래, 우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그 노래가사를 써놓고싶구만. 함께 불러줘.

 

수령님 다녀가신 철의 도시에

이밤도 송이송이 눈이 내리네

쇠물보다 뜨거운 충성의 마음

저 하늘에 차고넘쳐 붉게붉게 내리네

 

그럼 자, 이만하고 출발. 좋은 결과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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