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1 장
첫 상면
8
(1)
조현숙은 저녁을 먹자마자 급히 집을 나섰다. 어제부터 두연원건설이 시작되였던것이다. 두연원은 시내에 있는 창광원과 같은 설비를 갖춘 종업원들을 위한 공장의 종합봉사기지라고 한다.
그런 멋쟁이를 건설하는 일에 선참으로 나가서 첫삽을 뜨고싶었다. 더우기 지금은 공장의 초급일군들이 이번에 열리는 농업열성자회의에 참가하고 없는데 누구든 주인이 되여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작업장에 나가니 벌써 몇사람이 나와서 일을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황춘영이가 보였다.
조현숙은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아니 어쩌자구 벌써 나왔어, 다 나았나?》
그러지 않아도 춘영이가 퇴원한 후 한번도 찾아가보지 못한것이 늘 가슴에 걸려서 엊저녁엔 오리곰을 했던차였다. 자기가 못가면 인편에라도 보낼 생각이였는데 자기의 마음을 알고 찾아온것같아 숨이 다 나갔다.
《이젠 다 나았어요. 공장이 이렇게 끓고있는데 웬만하면 나와야지요 뭐.》
《참 네 성미두, 애들은 어떻게 하고…》 춘영이네 막내는 아직 철부지여서 어머니의 손밑에 있어야 했다.
《지방에 있는 친척이 왔어요.》
《그럼 됐다.》
그리고는 다짜고짜로 춘영의 손목을 잡아 끌어 한켠으로 가서 무랍없이 그의 샤쯔앞자락을 열어제꼈다. 워낙 살집이 없는 호리호리한 춘영은 이번 앓는 통에 젖가슴이 다 꺼진것같았다. 조현숙은 금이 갔던 앞가슴을 눌러보며 《어떻니?》하고 물었다.
춘영은 대답대신 미간을 찡그려보였다.
《그것봐라, 아직 안정해야 되는데 일은 무슨 일이야. 자, 가자.》하고 무작정 그를 끌다싶이하며 담장밖으로 나갔다.
《아이.》
버티기라도 할듯 그가 멈춰서자 조현숙은 와락 증을 냈다.
《두연원건설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현대화는 아직 할게 많아. 아직 아픈 몸인데 나와서 일도 추지 못하면서 삐치기만 하면 너를 칭찬할줄 아니?! 안돼, 두말말고 내 말을 들어.》
조현숙은 그길로 춘영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그의 집은 공장앞에 있는 사택마을에 있다. 식구가 단출해서 춘영이가 있다 해도 방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이 이번 농업부문열성자회의에 참가해서 집에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뿐이였다.
집안으로 들어온 현숙은 춘영을 방안으로 들여보내고 자기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직 단지속에 있는 오리곰을 넙적한 접시에 통채로 담아서 들여왔다.
《어서 먹어, 너를 위해 우정 한거다. 자.》
춘영의 눈가엔 단박에 핑 눈물이 고였다.
남편도 부모도 없지만 춘영은 거의 외로움을 모르고 살았다. 그에게 있어서 조현숙은 꼭 맏언니와 같았다. 빈번히 조현숙의 도움속에서 사는 춘영이였다.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춘영의 입을 막으며 어느새 뜯어낸 살오른 오리다리를 내밀었다.
《함께 들어요.》
《약두 노나먹나?! 나 먹을것두 있지.》 그러며 한쪽에 밀어놓았던 밥상우의 상보를 벗기고 지짐접시를 당겨왔다.
《아니, 이건 록두지짐이 아니야요? 언제 지짐을 다 지졌나요?》
《내가 언제 그런걸 다하겠니?! 혜영이 어머니가 우정 가져오지 않았겠니. 시어머니가 가져왔대.》
《지배인동지네 집에서요? 참, 지배인동지네와 꽤나 가까와요.》
《사연이 있지.》
조현숙이 빙그레 웃으며 춘영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실 난 남의 말을 듣고 그저 알뿐이지 정확한 사연을 들은적은 한번도 없어요. 동생이라면서 그런 사연은 들려주지 않았지요? 어서 해줘요.》
《그럼 그걸 다 먹겠니?》
《먹겠어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예요.》
《그래, 자, 이걸 들면서.》 현숙은 춘영이가 어서 먹기를 재촉하고는 입을 열었다.
…
제대군인 조현숙은 그 나이면 의례히 시집갈 공상에 들떠있으련만 대학으로 향했다. 시집가는것보다 대학생복을 입고싶었다. 그것은 군사복무를 하는 전기간 품었던 그의 희망이였다.
어느새 대학과정을 마치였는지 모를 정도로 드바쁜 학창시절은 끝났다. 그것은 힘겨우면서도 보람찼던 군사복무시절과는 또다른 인상적인 시절이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했다. 첫말에 이젠 시집을 가야지 하는 소리였다. 그것은 우연한게 아니였다. 저 멀리 평양근방에서 살고있는 맏아들은 기회만 있으면 어머니를 모셔가려고 늘 뇌이군 했지만 막내딸 시집가는것이 더 급선무이기에 꼬바기 딸이 졸업하기만을 기다려온 어머니였다.
대학으로 떠나던 때처럼 떼가 나가지 않았다. 남들은 군사복무를 마치고 그후 시집을 가서 애기엄마가 됐는데 이제 무슨 말을 더 할수 있으랴. 이제는 때가 되였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떤 사람한테 가게 될가? 고향을 떠나게 될가?
그러던찰나 강남에 있는 오빠에게서 편지가 날아왔다. 대상자를 골랐으니 와서 보라는것이였다. 현숙이보다 어머니가 더 성수가 나서 딸을 부추겼다. 아무리 아들한테 간다고 하지만 막내딸을 혼자 두고 내가 꽤 살수 있을가 하고 탄식하던 어머니였다.
현숙은 오빠가 있는 강남땅을 향해 떠났다.
강남땅은 평양역앞에서 동평양으로 가는 뻐스를 갈아타고 가야 했다.
뻐스에서 내려 동뚝우에 올라서던 현숙은 푸르면서도 잔잔한 대동강이 눈앞에 펼쳐지자 걸음을 멈추고 들뜨던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대학시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군하던 동해를 바라보는 감회와는 완전히 달랐다. 물갈기를 일으키던 장쾌한 바다를 바라보며 넓어지던 자기의 가슴을 잔잔한 대동강물이 조용히 어루쓰는듯했다.
처음으로 오는 평양길은 모든것이 신기했다. 동뚝우를 한동안 걸어오는데도 피곤을 느끼지 못했다. 좌우켠으로 늘어선 유보도를 보는것도 좋지만 물우에 둥실 뜬 려객선이 떠다니는 대동강의 경치가 하도 멋들어져 목수건을 풀어 흔들어댔다.
한참 걸어가니 동뚝밑에 줄을 맞추어 나란히 선 사택마을너머로 아담하면서도 산뜻한 건물이 보였다. 무슨 연구소 같았다.
걸으면서도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숙의 눈에 정문을 빠져나오는 한 청년이 띄였다. 새까만 곱슬머리가 보기 좋은 청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