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3 장
23
(1)
성진제강련합기업소에서 일을 보고 마천령굴공사장에 들려 공사진척정형을 알아보고난 주영호는 하루밤 류숙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청진으로 들어갔다. 도당일군에게서 안해가 청진에 내려왔다는것, 현재 도인민위원회에서 대책을 세워 집을 하나 배정했는데 집위치는 수남구역 수원동 어디라는 전화를 받았던것이다.
그는 운전사를 재촉하여 저녁해가 넘어가기 전에 청진땅에 들어섰다. 곧장 김철에 들려 실태를 보고받고나서 기업소를 나와 도로옆의 봉사망들에서 음식감들을 사실었다.
배정받은 집은 수남천과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둔덕에 있었다.
주영호는 들어서자바람으로 15ℓ들이 바께쯔를 손에 들고 대문가에 선 안해에게 반가움도 표시하지 않고 대뜸 물었다.
《어딜 가오?》
《수도는 있는데 물이 나오질 않는군요.》
상수도가 고장났는가. 부엌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어보았다. 물기라고는 전혀 없는 수도꼭지에서 녹가루가 부실거리며 떨어진다.
《걸 인주. 난 운전사하구 물을 길어올테니까 당신 빨리 손님들 맞을 준비하우. 내 신정이랑 형규네를 청했소.》
《그래요? 한데 어쩌나?…》
안해가 바께쯔를 넘겨주며 근심한다.
《음식하는게 난사웨다. 식칼이 있길 하나 칼도마가 있길 해요?》
《떠날 때 그걸 안 넣었댔소?》
《령감이 어찌나 볶았다치는지 혼맹이가 빠져 덤비다나니 뭘 넣었는지 기억이 날게 뭐예요. 집기류를 넣은 지함을 열어보니 없더군요.》
《그럼 혁명적으로 해야지, 혁명적으로.》
주영호는 가시대옆을 가리켰다.
《저 너른델 비누루 박박 닦아내고 비닐을 펴든지 지함을 뜯어깔구 하란 말이요. 과일칼이 차에 있으니 식칼대신 그걸 쓰문 되는거고.》
대문을 나선 그는 아래에 내려가 동네길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공동수도가 위치한 곳을 찾아갔다.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여서 그런지 공동수도에는 물을 긷는 사람들이 어지간히 있었는데 대부분이 녀성들이였다. 그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저네끼리 푸념과 불만이 반반섞인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나누고있었다.
듣고보니 태반이 김철로동자들의 안해들이였으며 이들의 화제는 거의나가 다 물고생에 대한것들이였다.
《이 공동수도두 잘 안 나오는가요?》
주영호는 앞에 서있는 보라색솜옷을 입은 중년녀인에게 말을 건네였다. 녀인은 돌아다보고나서 억양의 높낮이가 심한 함경도사투리로 대답한다.
《잘 안 나오는게 아이라 예- 아침과 저녁시간에만 보내니까 우리같은 직장생들이 바빠서 그럽니다.》
《낮에는 왜 못줍니까. 그리고 밤시간에야 오래 보내줄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녀인은 공동수도 건너편집창문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에 몸을 드러낸 그를 깐깐히 뜯어보는것이였다.
《물정모르는걸 보니까 이 아바이 평양손님인게구나.》
녀인은 제 짐작에 만족한지 방시레 웃으며 일장 설명을 한다.
《있지 않습니까 아바이, 본래 저 꼭대기에 물탕크가 있었습니다. 그리구 우리두 집집마다에 수도가 있어 물고생을 안했구요.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수도관이 다 못쓰게 된데다 예- 수원지에 물이 없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이 물은 저기 수남천앞의 아빠트구역에 있는 물탕크에서 올리는겁니다. 열명이 먹을거를 백명이 노나먹으니까 물이 어디 있습니까. 전기나 전동기두 변변치 못하지. 그래 이 고생 아닙니까, 아바이. 아바인 평양서 출장 오셨지요. 내 보기엔 과학자같은데 박사지요?》
녀인은 자기 짐작을 어떻게 하나 확인하려고 가지를 치며 무던히도 끈끈하게 나온다. 주영호는 응대를 하지 않고 웃기만 하였다. 자기 차례가 되여 물을 받는데 신경이 가지 않았더라면 녀인은 마지막까지 대답을 받아냈을것이였다. 녀인은 자기 물바께쯔를 한쪽에 치우고 주영호의것을 손수 들여다놓아주며 제편에서 신심을 주는것이였다.
《일없습니다, 아바이. 고난의 행군을 이겨냈는데 이런 물고생이야 뭐랍니까. 요즘 김철에서 쇠때 꽝꽝 나오니까 이런 고생 암만이구 괜찮습니다. 아바이두 객지에서 물고생한다구 생각하지 말구 이겨내시오. 그래뵈두 이 물맛이 좋습니다.》
주영호는 물을 받으며 수첩에 《김철로동자사택, 물고생》이라고 크게 써놓았다. 그가 부엌 한켠에 있는 물드무에 물을 거의 채울무렵에 형규며 신정이네들이 들이닥치였다.
형규와 신정은 어릴적부터 부모들과 주영호내외와 왕래가 있었으므로 잘 아는 사이인데다 안해와는 오래간만에 만나 집안의 공기는 류다른 분위기로 뜨거웠다.
《신정인 아버지가 보내준 약을 제대로 복용 안하는거로구나. 그래가지고 시집을 가보겠니? 아버진 너때문에 그저 근심이더라. 가열로나 세워놓고는 대상자를 하나 제꺽 골라보자, 형규선생두 못쓰게 되였소.》
이런 식으로 인사를 나누고난 주영호는 둘을 번갈아보며 물어보았다.
《채호명동문 왜 보이지 않나? 부기사장은 왜 안 오고?》
《채아바인 몸이 불편해하기때문에 제가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부기사장동지는 해당 기관 담화가 제기되여 못올것같다고 전화가 왔댔습니다.》
《내신사업이 제기된거구만.》
《예. 희생된 정철실장동무에게 기업소에서 표창을 내신했다는것같습니다. 그래서 료해차로 해당 부서일군들이 며칠전에 나왔습니다.》
형규의 말을 듣고나서야 주영호는 리해가 되였다.
할 일이 많은 연고로 저녁식사는 인차 끝이 났다. 주영호는 길지 않은 식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였다. 낮에 김철에 들려 그간 가열로건설정형을 보고받으면서 이상하게 생각되였던 점을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 또다시 알게 되였던것이다.
현장지휘부안에서 김형규네를 일방으로 하고 금속연구소와 김철측을 타방으로 하여 둘사이에 자주 일어나는 소소한 충돌과 의견대립, 하나의 통일적인 지휘체계에 의하여 움직이지 못하고 많은 경우 분산적이고 배외적인 부서부서간의 사업들, 이로 하여 산생되는 문제들이 현재는 자그마한것으로 표출되고있지만 그냥 방치한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조성될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바로잡을수 있다고 보았다. 허나 그는 보다 심중한 문제, 어찌보면 자기의 능력으로써는 부친 어떤 문제를 간파하고있었다.
그것은 가열로의 핵심부라고 할수 있는 축열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날카로운 론난이였다. 이미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도입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지만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가서는 기술적문제를 놓고 의연 이러한 대립이 없어지지 않고있었다.
축열체란 가열로의 량옆에 필요한 개수만큼 병렬로 설치한 가열체이다. 강편가열에 참가하는 축열체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축열체에 의하여 1차적으로 저축된 더운 공기는 자동3통로절환변의 도움으로 다시 맞은편의 축열체에 보내지게 된다. 이렇게 놓고볼 때 축열체는 패기가스에 의하여 연소용공기를 가열하는 역할을 하므로 인체로 말하면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위산조제기능을 수행한다고 비유할수 있다.
그런데 김형규네는 벌집형축열체를 주장하고있는 반면에 금속연구소며 김철에서는 구형축열체를 내들고있었다. 형규네는 정람내화물공장에서, 반대켠은 김철의 여러 내화물직장에서 성공시킨 실례로 하여 둘다 현장도입경험이 있었다.
가열로인 경우에도 이편도 저편도 처음 해보는 생소한 일이였으나 벌집형축열체가 더 생산적이고 과학기술적으로 안받침된 가열체인것으로 하여 이 점에서는 김형규네가 현재는 우세를 차지하고있다고 말할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구철부기사장을 위시로 한 구형축열체지지자들은 순순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의 주장은 벌집형축열체는 리론적으로 완성된것이지만 자기들의 구형축열체는 비록 가열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여하간에 로에서 강편을 뽑아보았다는것이였다.
(이런 문젠 어떻게 풀어야 한단 말인가?)
주영호는 난점을 풀어보려고 애를 썼으나 신통한 방도가 서지 않아 그린듯이 앉아있기만 하였다.
《여보 령감, 이걸 좀 도와주지 않구 아까부터 멍청해서 그러구있소?》
등뒤에서 안해의 지청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언제 상을 다 치웠는지 안해가 문가에 쌓아놓은 큼직한 마그벽돌을 부엌바닥에 옮겨놓고있었다. 서둘러 부엌에 내려가 안해를 도와 손을 붙이였다.
《허참, 나더러 나무를 패라는거요?》
안해가 내미는 손도끼를 얼결에 받아들었다가 핀잔조로 말하였다.
《이건 내화벽돌이란 말이야, 닦구 쓸구 문대서 상처 하나없이 재생해야 되는 내화벽돌.》
그는 혼합물찌끼가 가득 붙어있고 고열의 시달림에 본래의 색갈을 잃은 마그벽돌을 두드리였다. 그리고는 내화벽돌을 쌓아놓은 곳을 눈여겨보다가 문밖을 손짓했다.
《이녀석이 그건 부리지 않았구만. 차에 가보우, 짐칸에 보따리 하나 있을거요.》
안해가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연마지묶음이며 연마석, 줄칼, 끌을 비롯한 재생도구 등속들이 나타났다.
《내 재생방법을 자세히 대줄테니 당신 이번주내루 자기한테 맡겨진 량을 모두 재생해야겠소.》
《아직 짐정리는커녕 부엌살림도 펴지 못했는데 정말 들볶는구려. 글쎄 부총리동지가 하라면 해야지요.》
불만을 표시하나 기꺼이 응하는 안해이다. 그러면서도 지청구는 여전하다.
《어쨌든 보금자리 파악이야 해야 되잖아요. 이웃들이랑 알아보고 당장에는 찬거리가 문제인데 어데 가서 사야 하는지.》
《아아, 그런 소린 관두고. 집과 쌀이 있고 온기가 있는데 이거문 호사지 뭘 자꾸 그러오. 그렇지 않아 내 오늘 김철에 가 듣자니 가두녀성들이랑 기업소일군들은 물론 도당일군들도 제앞에 차례진 벽돌재생과제를 불합격품 한장없이 깨깨 수행했더군. 현장에 가보니 가열로를 거의 쌓게 되였는데 우리가 떨어지문 되우?》
잠시후 부엌에는 벽시계의 가락맞는 추소리와 함께 연마지의 마찰음이 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