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첫 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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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에 열린 초급일군협의회에서는 살림집문제를 비롯한 긴급한 문제들이 토론되였다.
먼저 지배인이 이미 준비한 대책안들을 내놓았다.
몇장되지 않는 대책안을 읽는 동안 지배인은 몇번이나 갑자르며 지루하게 라렬했다. 자리에 앉으며 지배인은 손수건부터 꺼내 땀난 목덜미를 문질렀다.
잠시 침묵이 흐르도록 누구에게서도 좋다그르다의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구석쪽에서 누구인가가 《대략적인건 다 나왔다고 생각되누만.》 하고 말하는데도 그저 묵묵히 눈치들만 보았다. 이대로 빨리 협의회가 끝나기만을 바라는건가? 그러나 그대로 끝낼수는 없었다.
여기 앉은 초급일군들자체가 당장 집문제가 걸려있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바랄텐가.
신형일은 더 재지 않고 선뜻 입을 열었다.
《지배인동지, 지금 형편에서 모든것이 긴장하지만 무엇보다도 살림집건설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신형일은 지배인이 얼른 눈길을 치뜨는것을 느끼면서도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살림집건설장을 돌아보니 생각되는것이 많습니다. 바쁠수록 종업원들의 생활을 놓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중요한건 살림집입니다. 그래야 건설도, 생산도 잘될수 있습니다.》
각이한 얼굴과 시선이 집중되는 속에서 신형일은 마른침을 꿀꺽 넘겼다.
이런 때 지배인이 쌍수를 들어 찬성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배인은 여전히 침묵으로 나왔고 뜻밖에 기사장이 당장이라도 일어설듯 웃몸을 솟구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숱한 지원자들이 나와있는데 주인들이 자기 집부터 생각한다면 너무나 인사불성이 아닙니까. 우선 건설부터 제끼고 그다음에…》
기사장이 자기의 말이 옳지 않느냐는듯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누구도 거기에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없었다. 지배인은 여전히 입을 다문채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신형일의 눈앞으로 오늘 보았던 사택마을전경들이 선명히 살아났다. 엉기성기 쌓여있던 짐들, 마당에서 때식을 끓이던 녀인, 더우기 발디딜 자리도 없이 남의 집 짐들이 마당을 차지했던 차학선의 집을 생각하니 가슴이 죄여들어왔다. 그런 속에서 연구사들이 마음대로 다리를 펴고 살 집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게 불편스레 사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건설에만 집중하는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는가. 그렇게밖에 보장해주지 못하면서도 그들에게서 연구성과를 바란다면 우리가 무슨 주인이란 말인가. 과연 그 어떤 실용적인 대책이 없단 말인가. 아니다. 신형일은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공장에 나온 연구사들이 여기저기 짐을 들고 다닌다고 합니다. 벌써 몇번째라지요? 그렇게 하고서야 연구사업에서 어떻게 성과가 나겠습니까. 종업원들도 같습니다. 일이 잘되려면, 현대화를 다그치려면 생활조건부터 풀어주고 안착시켜야 합니다. 앞으로 건설이 완성되면 오리가 들어오기때문에 관리공들을 뗄수 없으니 오히려 지금이 낫습니다. 그래서 오리사를 비롯한 공장건설도, 살림집건설도 다같이 병행하자는걸 제기합니다.》
일시에 고개들이 들리워졌다. 그러나 누구도 입은 열지 않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제안인지라 어안이 벙벙해난 모양이였다. 신형일은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우선 아빠트중에서 한채에 력량을 집중해서 완성시킨 후 거기에 대학의 연구사들을 숙식시킵시다. 맨 아래층 한 방엔 식당도 전개해서 연구사들이 아무런 불편도 없이 자기 일을 하도록 조건을 지어주자는 생각입니다. 어떻습니까?》
《글쎄 좋긴 한데 미장을 하고 꾸려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봉한채이고 지배인이 난감해서 말끝을 흐리였다.
《당장 미장도 하고 꾸려야지요. 오리사에 붙은 종업원들중에서 대담하게 얼마간 로력을 떼서 여기 미장을 붙이도록 합시다. 보수반에선 문짝부터 달게 조직사업을 하고 어떻습니까?》
《병행이라, 멋있습니다.》
기사장이 언제 반대했더냐싶게 거쉰 목소리로 호응했다. 지배인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리사건설에서 뗄 로력이 얼마나 있겠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오리사건설과 살림집건설이 다같이 진행되겠는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로력을 분산시켜도 일없겠는지…》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싶도록 안타깝고 답답해났다. 그러나 신형일은 애써 진정하고 자기의 말을 계속했다.
《생각하고 조직하기탓입니다. 이제까지 하던 일을 이제부턴 병행하여 진행하는것만큼 그전보다 더 뛰여야 합니다. 모든 일을 직장별경쟁으로 조직하고 다그쳐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종업원들이 새집에 입사할수 있습니다. 살림집을 새로 짓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지만 다 지어놓은 집이야 왜 빨리 꾸리고 입사시키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연구사들 숙소꾸리기에는 비생산부문 녀성들을 배치하자고 합니다. 지배인동지, 그 일은 누구에게 책임지우겠습니까?》
지배인은 무슨 생각엔가 못박혀있다가 인차 입을 열지 못했다. 기사장이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내뱉았다.
《그건 제가 하지요.》
《기사장동무가 할 일이야 따로 있지요. 지배인동지, 단백반의 통계원동무가 어떻습니까?》 신형일은 눈앞에 인상적으로 박힌 조현숙을 그려보며 의견을 물었다.
《아, 조현숙동무?!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제야 지배인이 쾌히 접수했다.
《꾸리기사업은 지배인동지가 책임지고 조직하십시오. 인원선정이랑 미장이 끝나는족족 도색하고 방꾸리기랑 의견이 있으면 내놓으십시오. 당위원회에서도 적극 밀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걱정할게 없습니다.》
박순배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어깨숨을 내불었다.
《기사장동무랑은 하던 일을 빨리 끝내시오. 중요한 일이 또 기다리고있으니까요.》 신형일은 이적기설계를 눈앞에 떠올리며 버릇처럼 머리칼을 쓸어올리였다.
《하, 이거 정신이 번쩍들게 하는 조직사업입니다. 냅다 밀겠습니다.》
기사장이 들고있던 사업수첩을 탁 내려치며 호기를 부렸다. 그제야 좌중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