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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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록음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야전렬차의 집무실에는
《동무들!
이번에 우리는 과학자, 기술자대회를 11년만에 가지게 되였습니다.
첫 과학자대회가 있은 때로부터 이번 대회에 이르는 10년동안에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의 대오는 놀랄만큼 커졌습니다. 해방직후에 우리는 민족기술간부를 몇십명밖에 가지고있지 못하였습니다. 우리가 1952년에 과학자대회를 가졌을 때에도 과학, 기술일군들의 수는 몇백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기사, 전문가들의 수만 해도 6만명에 이르며 여기에 중등전문가들을 합친다면 과학자, 기술자들의 수는 무려 18만명에 이릅니다.
과학, 기술간부의 대오가 크게 자랐을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에서도 커다란 성과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10년동안에 우리 나라의 경제는
커다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재더미우에서 3개년계획을 수행하고 5개년계획을 완수하였으며 지금은 나라의 공업화와 기술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7개년계획을 성과적으로 실행하고있습니다.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이
사회주의건설에서 우리 인민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우리가 제손으로 공장을 설계하고 건설하며 그것을 운영할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 빛나는 성과속에는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의 헌신적노력이 깃들어있습니다.
…
나는 먼저 동무들에게 4차당대회가 과학, 기술일군들앞에 내세운 과업들을 상기시키려 합니다.》
이것은 과학자, 기술자대회에서 하신
(대고조의 불길을 더욱 거세차게 지피자면 역시 과학기술의 강력한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과학기술, 강력한 힘!)
렬차는 흰 파도가 쉬임없이 기슭을 애무하는 바다가를 끼고 목적지를 향하여 달리고있었다.
《동무들이 당의 의도에 맞게 일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소. 한데 주영호동무는 그냥 놔두는것이 좋겠소.》
현재 평안북도를 담당한 내각의 일군자리가 비여있었다.
《왜 그런가 하면 주영호동무는 김철의 CNC화를 주도해본 경험이 있으며 현재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과 무산광산의 개건현대화사업을 맡고있소. 그러니 주동무는 평안북도가 아니라 함북도에 눌러앉아있어야 하오.》
다른 제의서에 몇가지 의견을 주시고나신
(실패한 외국출장이라, 그것을 어째서 실패로 보는것인가.
우리
지금 국제무대에서는 《천안》호폭침사건을 놓고 제국주의자들과의 또 한차례의 포성없는 치렬한 전쟁이 막판에 들어서고있었다. 처음에는 자국의 리익을 우선시하며 제국주의자들의 눈치만을 살피던 일부 나라들도 우리의 공명정대한 주장과 드세찬 공세앞에 적대세력들이 차츰 굽어들기 시작하는것을 보자 태도를 바꾸어 중립을 지키거나 아예 돌아서서 미국을 비난하는데로 나가고있었다.
《천안》호폭침사건을 우리에게 넘겨씌우고 이 기회에 국제무대에서 우리 공화국의 정치적고립을 한층 강화해보려던 기도가 파탄될 운명에 처하게 되자 제국주의자들은 조선반도주변에 핵무력을 끌어다놓고 각이한 명칭의 군사연습을 벌리면서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을 우리와의 군사적대결에로 부추기고있었다.
판문점과 군사분계선에서 벌리고있는 반공화국심리모략방송들, 우리 인민군장병들을 자극하는 군사적위협행동들, 제주도부근의 공해상을 항행하는 우리 선박들에 사격을 가하며 로골적으로 위협하는 괴뢰공군전투기들의 행태도 그러했지만 전에없이 긴장수위가 높아진 조선서해 연평도부근의 정세가 이것을 집중적으로 증명해주고있었다.
남조선괴뢰군부는 연평도에 대대적으로 무력을 증강하고 하루도 번진 날이 없이 총포탄을 쏴대며 군사연습을 벌리는가 하면 괴뢰해군의 깡패들은 머리에 호전적인 구호가 써있는 머리띠까지 두르고 두차례의 서해해상전투에서 패배를 당한 복수를 한다면서 때없이 연평도부근을 돌아치며 도발을 일삼고있었다.
그 어떤 형태이든지 제국주의자들과의 대결전이 저들의 패배로 또 한차례의 막을 내리면 늘 일어나군 하는 짓거리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경제강국건설을 다그치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일부 나라들의 동향과 태도 역시 말로는 적극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실천에 들어가서는 미지근하고 지어는 회의적이였다. 달가와하는 눈치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주영호의 이번 출장결과가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집무탁의 전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리였다.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 책임일군의 전화였다.
오늘 오전에
렬차는 어느덧 드문드문 보기 좋게 군을 이룬 솔밭사이로 시원하게 펼쳐진 백사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역사로 들어서고있었다.
삽시에 홀에는 기쁨과 환희에 젖은 만세소리로 차고넘쳤다. 그들은 인사를 올리며
《오, 진응산이, 석철이, 금단이, 오래 기다렸지?》
《다들 얼굴이 보기 좋게 탔구만. 그래, 〈산울림〉반영이 괜찮나?》
이때 국립연극단 일군이
《예,
《처음 순회공연이랑 다녀보니까 어때, 힘들지?》
처녀배우는 힘들지는 않았다고, TV를 통하여 조국땅 방방곡곡을 쉬임없이 현지지도하시는
《하늘의 조화는 무슨, 그래 금단인 아직도 총각때문에 고민하고있나?》
처녀배우에게 애인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의 사랑이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종일 가야 찾는 사람이 없는 연극단의 배우, 혹간 연극을 상연해도 누구 하나 진지하게 볼념을 안하는, 그래서 서글픈 극장객석을 상대로 출연해야 하는 연극단의 배우라는것이 리유였고 때문에 직종을 바꾸라는것이 애인의 강경한 요구였다. 거절이 불화를 낳았고 자존심과 강경자세는 서로 떠밀기를 하였는데 역시 한쪽은 녀성인지라 처녀가 밀리웠다.
처녀배우가 눈물을 연방 씻으며 이제는 제대로 되였다고, 반대로 자기가 큰소리친다는것을 말씀올리였다.
《그렇다면 잘됐구만. 하지만 안심할건 못돼, 한번 변하면 또 그럴수 있거던. 걱정말라구, 금단이. 내 연극단새집들이할 때 가서 그녀석에게 단단히 오금을 박아주지.
황석철인 어디 있나?》
처녀배우의 뒤에 있던 남성배우가 《여기 있습니다.》 하며 나선다.
《어서 들어들 가기요.》
《〈산울림〉이 열풍, 폭풍을 일으켰다니 다시 공연을 보고싶구만, 한데 다들 휴식하니 그럴수는 없는것이고. 하지만 그간 진행한 〈산울림〉공연얘기랑 반영을 듣기 전에 황석철이하구 금단이 2중창이라도 듣고싶소.》
연극단일군이 말씀의 뜻을 인차 리해하지 못하여 머뭇거리자
《거 있지 않소, 탈곡도 더레덜덜 기계가 하고 추수도 우릉우릉 기계가 하니, 암 그렇다마다요 그뿐인가요 하는걸 말이요.》
《진응산인 뭘 들려주겠나?》
그의 대답을 들으신
《시 〈어머니〉, 〈백두산〉 제6장. 음, 좋은 시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