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첫 상면

2

 

당비서가 마중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사이 기사장 우덕진은 한옆으로 빠져나오는 한미순앞을 막아섰다.

한미순은 공장의 생산정형과 실태를 장악하는 책임부원이기에 그와 밀접히 련결되여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우리도 몰랐지요. 병원에서 돌아오던 길인데 아니글쎄 당비서동지일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무슨 실수를 한건 없소?》

《글쎄 공장에 오는 지원자로만 알았으니…》

한미순이도 어이가 없는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우덕진은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가 마침 사람들과 헤여지는 당비서앞으로 바삐 다가갔다.

《아마 공장부터 돌아보셔야겠지요?》

우덕진은 공장안내를 자기가 할 생각으로 이렇게 나섰다.

《가만, 지금 무엇들을 하고있습니까? 자기 맡은 일들이 있겠지요?》

《예, 지배인동지는 생산을 보면서 오리사건설을 추진시키고 저는 대상건설을 끌고나가는중입니다. 그리고 부지배인동무는…》 우덕진은 공장 참모부에서 토의했던 초급일군들의 사업분담들을 알려주고는 자기는 오늘 밤으로 회관초벌미장을 끝낼 계획을 말했다.

《기사장동무가 기본일을 맡았군요. 아,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땐 목소리가 그렇지 않은것같은데…》

《거 뭐 자연히…》

《너무 무리한게군요. 몸을 돌보며 일을 하시오. 난 당위원회성원들을 좀 만나겠는데 계획대로 하던 일을 하십시오. 참, 차학선기사장동지가 어디 있는지 모르오?》하며 바라보았다.

《예? 그 령감은 집에 들어간지가 십년 넘었는데요.》

당비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전거를 옮기는 당비서를 도와 사무청사앞에 세워놓고 돌아서는 우덕진의 머리속에서는 방금전에 차학선에 대하여 묻던 당비서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사실 차학선에 대하여 아는것이 적었다.

우덕진이가 여기 오리공장에 왔을 때는 이미 차학선은 은퇴하고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기사장을 하고있었다. (그 사람은 그후 우덕진에게 인계하고 가금생산국에 소환되였다.)

그러나 공장에서도 사택마을에서도 누구나 다 차학선을 찾을 때면 전 기사장이라는 지위를 떼놓지 않았다. 그것이 은근히 우덕진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이 우덕진이가 엄연히 기사장인데도 기술사업을 하는데서 걸리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의례히 차학선을 입에 올리였고 그를 찾아가군 했다. 그런것으로 하여 차학선은 여전히 자유롭게 공장에 출입했고 와서도 이것저것 참견하는 일이 많았다.

차학선이가 축사에 나타나면 기술자들이 물묻은 바가지에 참깨 달라붙듯 그한테 붙어돌아갔다.

야외강의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설명을 듣군 했다. 이것 또한 적지 않게 우덕진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그의 기술이란 이젠 다 낡은 경험에 불과한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것이다. 차학선을 내세우는데서 제일 열성인 사람은 지배인이였다. 차학선이가 기사장을 할 때 공장에 배치된 지배인은 전망성있는 박기사로 통했고 차기사장의 관심속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학선은 공장에 오면 의례히 지배인을 찾았고 지배인 역시 차학선을 가금의 일인자처럼 떠받들었다. 가소로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자기야말로 공장의 기술적인 문제를 관할하고있는 기사장이고 지배인보다 더 위신있게 공장전반사업을 좌우지하고있지 않는가.

그러기에 차학선의 말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홀시하는 말이 나왔는데 그것이 당비서의 첫인상을 흐려놓은것같아 은근히 속이 켕기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기사장이라는 사람이 이 바쁜 때 딸생각이나 하면서 주춤거리고있다는 인상을 받았을가봐 속이 켕기였다.

사실 집에 들어온 딸이 조현숙이 우정 차를 세워 태워준 이야기를 하기에 조현숙에게 인사라도 할 생각으로 동뚝에서 지체했는데 당비서와 마주칠줄이야. 새로 임명된 당비서가 래일 나온다고 해서 이밤으로 자기가 맡은 회관건설초벌미장을 다 끝내고 떳떳하게 만날 생각이였는데 그만 첫탕부터 튀여나갔다.

처음 볼 때부터 느꼈지만 당비서는 여간 깔끔해보이지 않았다. 차림새가 단정하고 생김새 하나하나가 다림질이나 한듯 반듯했고 말소리도 잔잔하게 흐르는 시내물처럼 듣기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 인사나 한 정도인데 자기의 목소리를 기억하고있다가 념려하는걸 보니 여간 세심하지 않다. 그런데 밤으로 자전거를 타고 온걸 보니 결코 잔잔하게 흐르는 시내물이 아니였다. 덤비며 성급하게 마시다가 입안을 데우게 되는 김 안나는 숭늉이라고 할가.

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 배치되여 책임기사, 부지배인을 거쳐 지금 2년째 기사장을 하는 우덕진은 마흔두살밖에 안되였다. 그에 비해선 체격이 우람하고 틀스러워 나이가 들어보였다. 이것을 자기의 장점으로 생각하던 우덕진은 방금 당비서를 만나고나니 그가 너무나도 젊은데 은근히 위압감이 왔다. 당비서가 도대체 몇살이나 됐을가. 마흔살? 어찌보면 마흔살도 안되게 쌩쌩해보였다. 그런 나이라면 언제 대학을 나오고 당학교를 나왔을가. 그의 전공은 무엇이게 여기 오리공장에 임명되였는지, 아무리 당비서라고 해도 전공은 오리와 가까울것이였다.

자기야말로 체계적인 공정을 거쳐 큰 공장의 기사장을 한다는 자부심이 언제나 가슴에 차있는 우덕진은 은근히 키대보기를 하는 심정으로 당비서의 모든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갑자기 우덕진은 걸음을 멈추었다. 당비서가 이밤에 공장에 나타난것은 누구도 모르니 빨리 운전사에게 알려야 했다. 그리고 분명 시당에서 곧장 떠났겠는데 저녁식사를 했을리 만무할것이다.

우덕진은 운수직장에 가려다말고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솜옷의 단추를 열어제끼고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

아무리 봄철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어두워지기만 하면 이 솜옷이 제격이였다. 밤새 건설장에 있다 해도 몸이 훈훈했고 어쩌다가 사무실이나 건설장구석에서 잠간 눈을 붙인다 해도 덮개가 되군 하여 늘 입고 돌아갔다. 그는 지금 은근히 마음이 급해났다. 오늘 밤에 계획했던 미장을 빨리 끝내야 했다. 운전사에게 당비서의 도착소식을 알려주는것도 걸어가면서 손전화기로 했다.

그가 쌓인 모래무지를 돌아서는데 앞에서 누군가 우물우물 일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뜻밖에도 차학선이였다. 여느때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우덕진이지만 방금전에 당비서의 관심속에 있었던 차학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뭘하시우?》

《예, 우리 아들이 보이지 않길래. 집에두 안들어오구…》 목소리만이 아니라 그의 주름투성이 얼굴에도 근심이 한가득이다.

《천호가요? 아까 시내에 나갔다가 들어오는걸 봤는데.》

《그래요?》

《어서 가보시우, 지금쯤 집에 들어섰을지 모르지요.》

《허, 그렇겠군.》 로인은 인차 돌아섰다.

우덕진은 발자국을 재게 놀리는 로인의 거동을 잠시 지켜보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허리가 꼿꼿했고 걸음도 빨랐다.

당비서가 왜 그에 대해 물어보았을가. 그와 아는 사이인가?

차학선은 벌써 정문으로 나가고있었다. 집에 가서 아들을 만나볼 생각만 꽉 차있는것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까 시내에 좀 나가겠다고 하던 천호의 얼굴에 어렸던 초조감이 인차 생각났으나 그에 대해서 더 생각지 못했다. 회관초벌미장이 더 바빴다. 당장은 식당부터 가야 했다. 차학선의 생각은 인차 그의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우덕진이가 부지런히 식당앞으로 가는데 앞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생산국의 처장과 시당부원이였다. 그들은 두연오리공장의 현대화를 위해 파견된 지도소조성원들이였다. 이들뿐이 아니라 공장의 현대화를 다그치기 위한 조치로서 시내의 각 공장, 기업소에서 지원로력이 들어오고 가두녀성들까지 동원되여 공장은 어디서나 지원로력으로 끓어댔다.

《기사장동무구만, 식사나 했소? 우린 지금 식당에 가는 길인데 같이 합시다.》

《하, 같이 식사를 한다한다 하면서도, 미안합니다. 식당에서 손님들 식사를 제대로 해드리는지 모르겠군요.》

《우리가 무슨 손님이요? 공장에 온지 언제라구. 아직두 그런 관점이면 곤난한데.》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지요.》

《사실이 그렇지.》

그들이 겨끔내기로 수긍하는 소리를 하자 우덕진은 가슴이 쭝해져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사실 이들은 공장에 온지도 퍼그나 되여 종업원들과 친숙해진지 오랬고 현대화에서 걸린 고리들을 한모퉁이씩 맡아서 해제끼는 솜씨가 걸차서 감탄하기도 하는 터였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바삐 가오?》 시당에서 온 나이지숙한 부원이 물었다.

《식당에 가느라고, 공장에 당비서동지가 왔습니다.》

《당비서라니?!…》 시당부원이 어리둥절해서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 공장 당비서 말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왔더군요.》

《그렇소? 시작이 좋군. 집안일이 잘되려면 부모가 정정해야 하는것처럼 공장일도 마찬가지요. 지배인, 당비서가 그쯘해야 하거던.》

《참, 시당에서 같이 일했으니 당비서동지를 잘 알겠구만요. 시당에서 종합부원을 했다는데 그의 전공은 뭡니까?》

우덕진은 부원이라는데 특별히 방점을 박으며 슬며시 이렇게 중떴다.

《전공? 하여튼 농업대학졸업생이요.》

《축산은 아니구만요. 그러니 오리를…》 목소리가 어방없이 커졌다.

《모르는 소리, 어쨌든 농업부문이 아니요. 언제인가 가금단위들 현대화하는데서 그의 실력이 과시됐소. 그때 축사꾸리기와 살림집을 계획했는데 그는 축사는 물론 살림집도 완성해서 입사까지 시켰거던. 다른 사람들은 절반상태에서 앉아뭉개는데 말이요.》

《그래요?》

우덕진은 시당부원의 그 말에 대번에 눈이 치떠졌다.

《그럼, 일할줄을 알지. 그리고 당비서인 경우는 전공이 문제가 아니요. 어떤 자세와 관점을 가지고 일하는가 그거지. 하여튼 그 사람은 내가 좀 아오. 말은 없으나 손탁이 여간 세지 않소.》

《그렇습니까?》

우덕진은 이제야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마트면 아래로 내려다보는 큰 실수를 할번했다.

《아무튼 이젠 당비서가 왔으니 됐구만. 기사장동무도 그렇고 지배인이 숨이 나가게 됐지. 지금 그가 어디 있소?》

《잘 모르겠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는걸 보고선… 우선 식당부터 알릴 생각으로…》

《식당? 그 사람이 정말 식사를 못했겠구만. 잘 생각했소.》

시당부원이 그 자리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들고 교환수를 찾아 당비서에 대해서 물었다. 교환수의 챙챙한 목소리가 우덕진의 귀에도 들렸다.

《당비서동진 지배인동지의 행처를 물었습니다.》

《그러니 벌써 지배인과의 사업에 들어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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