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첫 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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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네명의 녀학생들이 그 두 녀인을 둘러싸고 저마끔 재잘거렸다.

《왜 여기 있나요?》

《어디 갔댔나요?》

《병원에 갔댔다.》

《구역인민병원에요? 공장엄마들이 아직 일어나지 못하나요?》

《아니, 이제 며칠 있으면 나올수 있겠더라.》

《그래요?!》 녀학생들이 짝자그르르 박수를 치며 좋아들했다.

그러니 그들도 오리공장 종업원인 모양이였다. 게다가 병원이란 소리를 들으니 가만있을수가 없었다. 그들과는 초면이지만 병원에 입원한 종업원들은 이미 남이 아닌것이다.

《병원이라니, 차를 따라가다가 넘어진 사람들 말이지요? 어떻던가요?》

신형일은 그들앞으로 바싹 다가들며 성급하게 물었다.

《뭐, 다 나아가고있어요.》

녀인들은 신형일을 이 고장사람으로 보았던지 병원에 입원한 녀인들이 치료를 잘 받고있는 이야기를 한동안 했다.

《그럼 너희들 천천히 오너라. 우린 이제 공장에 또 나가야 한단다.》

통계원이라는 녀인이 자전거에 오르려다 말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잠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애들도 녀인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너희들은 언제 가겠니, 힘들겠는데…》

《일없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가면 힘들지 않아요.》

한 애가 제법 어른스레 말했다.

《맞아요.》

나머지 아이들이 합창하듯 목소리를 합치였다.

통계원이라는 그 녀인은 아무 말을 못하고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더니 자동차소리가 나자 날래게 자전거를 세우고 길 한가운데로 나섰다.

《좀 세워주세요.》 그가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댔다.

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멎어섰는데 어마어마하게 보이는 대형차였다.

《아니, 어쩌자구 길복판까지 뛰여들면서 그러오?》

언짢게 어성을 높이는 운전사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통계원은 발뒤축을 고이며 소리쳤다.

《저- 모래사업소에 가는가요?》

《오리공장에 가오.》

《오리공장에요? 지원자인 모양이네.》 통계원의 목소리가 노래처럼 울리더니 《우린 오리공장에 있어요. 미안하지만 이 애들을 공장앞에까지만 좀 태워다줘요.》하고 알지 못할 사람에게 무랍없이 부탁했다.

《허, 이건 명령이군. 좋수다. 이다음 오리고기로 값을 내야 하우다.》

운전사는 쾌히 응했다. 마침 대형차인지라 운전칸에는 뒤좌석이 있어 아이들이 다 타고도 자리가 넉넉했다.

《걱정말라요. 현대화가 끝나면 언제든지 오라요, 단백반 통계원한테. 얘들아, 빨리 올라라.》

《야!》 학생들이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달려갔다.

보매 통계원은 의협심이 여간 아니였다.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인정도 있어보이는 그의 정열에 신형일은 어느새 자기 마음도 그한테로 끌려갔다. 녀학생들을 태운 대형차가 떠나자 신형일은 앞으로 쑥 나섰다.

《나도 오리공장에 갑니다.》

《그래요?! 지원자인 모양이지요? 요즘은 우리 공장이 지원자들로 들썩 끓어요.》 통계원의 목소리는 거의 환성이였다.

잠시후에 신형일은 녀인들과 같이 공장으로 달리였다. 그는 아까 통일거리 녀인들을 떠나보낸 후에 알찌근한 마음을 덜지 못하고있었는데 아이들을 차에 태워보내는걸 보니 가슴속 한귀퉁이가 조금이라도 열려지는것같았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공장에 통근차가 없어서 통일거리의 녀인들이 걸어다니고 학교에 갔던 자녀들이 걸어온다니 이건 보통 걸린 문제가 아니였다. 게다가 차를 얻어타려다가 넘어진 녀인들이 입원해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 현대화를 하는 공장에서 한명한명의 로력이 얼마나 새로우랴.

이번엔 아까의 해말쑥해보이던 청년의 얼굴이 살아올랐다. 처녀와 갈라진 천호라는 청년. 이제 보니 그도 오리공장 종업원이다. 무슨 일이 있기에 처녀와 헤여질가. 처녀는 분명 미련이 있던것같은데.

이밤에 보고 들은 모든 일들이 신형일의 머리속에서 감겨돌아갔다.

사실 신형일은 한번 보고 들은것을 어느 하나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천성이 아니였다.

몇년전 그가 어느한 공장의 당부원으로 조동되였을 때였다.

그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네가 이젠 어머니가 됐구나.》하며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처음 신형일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의아해서 어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당일군을 보고 모두 어머니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 않니. 실제로 당일군은 어머니가 되여야 한단다.》

오랜 당원일뿐 아니라 몇십년을 세포비서사업을 해온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하는 말을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는단다.》

오래전에 한 이 말은 그후 구역당을 거쳐 시당으로 소환된 후에도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새 일터로 가고있는 지금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가 그 말을 명심하라고 속삭이는듯했다.

신형일은 밤공기를 가르던 처녀의 목소리를 상기하며 그 천호라는 청년에 대해서 알고싶었다. 앞선 통계원을 따라가서라도 묻고싶은 심정이였다.

갑자기 세차게 불어치는 강바람이 신형일의 뺨을 얼얼하게 후려쳤다.

신형일은 앞에서 달리는 통계원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은근히 감탄했다. 50대에 들어선 녀인같은데 마치 30대 젊은이들같이 씽씽 달리였다. 그의 온몸에서는 생기와 정열이 솟구치고있었다. 먼저 지나보낸 통일거리 녀인들과는 전혀 다른 류형이였다. 저런 정열과 지향을 가진 녀성들이 몇명만 있어도 공장에서 걸릴게 없을것같았다. 오늘 정말 자전거를 타고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타고오면 시간은 단축되지만 이런 체험은 못했을것이다. 또다시 길가에서 알게 된 공장일이 겹쳐들었다.

《웃는 대틀》은 누구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일가? 《대틀》이라고 하면 엄엄한 사람을 론하는것같은데 웃는다는걸 놓고보면 정반대다. 무슨 의미일가? 이번엔 천호며 통근차문제, 새로 알게 된 단백반의 통계원이며 같이 가는 저 녀인…

얼마쯤 왔는지.

사택마을에서 나온 사람들인듯 몇사람이 잰걸음으로 마주나오고있었다.

갑자기 《아니, 당비서동지!》하는 소리에 신형일은 목을 뺐다. 누군가 했더니 얼마전에 시당에서 면목을 익힌 기사장이 굳어져있었다. 처음 만날 때 별로 거쿨지고 싱글싱글하는 인상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던 그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왔다.

《아니, 래일 아침부터 출근하시는것으로 알고있는데…》

말끝을 맺지 못하는 그의 목소리가 처음 만날 때와 달리 석쉼했다.

《하루라도 시간을 앞당기고싶어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마나!》

뒤따르던 통계원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하더니 《용서하십시오.》 하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참을수 없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밝으면서도 구김살없는 그의 웃음소리는 활짝 피여난 꽃처럼 소담했다. 신형일이도 그 웃음에 말려 호탕하게 껄껄거렸다.

《우리 첫 상면이 멋있소. 자, 통성합시다. 내 이름은 신형일이요. 단백반의 통계원이라지요?》

《조현숙이라고 합니다. 》 그가 면구스런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자기 소개를 했다.

《단백반 통계원 조현숙. 그리고…》 신형일은 옆으로 돌아섰다.

호리호리한 몸에 털이 부르르한 쟈케트를 입은 녀인이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산과 책임부원 한미순입니다.》

《동무들을 알게 되여 반갑습니다. 자, 어서 가보시오.》

신형일은 그러며 먼저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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