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서 장

(4)

 

편지에서 호준은 급작스레 이동했던 부대의 소식을 전했다.

자기 부대는 최고사령부의 중요한 긴급명령을 받고 이동했댔는데 그 중요한 긴급명령이란 조국으로 날아오는 비행기의 엄호를 보장했다는 소식이였다.

《학선동무, 우리가 엄호했던 그 비행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아나?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오리알들이 실려있었대. 그러나 그 오리알들은 그저 평범한 오리알이 아니라 전쟁이 승리한 다음 우리 인민들에게 오리고기를 먹이기 위하여 김일성장군님께서 특별히 과업을 주시여 구해오는 오리알들이였네. 그것을 알았을 때의 내 심정이 어떠했겠나. 우리 전사들은 모두 만세를 불렀다네. 우리는 벌써 이긴 전쟁을 하고있구나 하고 말이야. 정말이지 가슴은 격정으로 터질듯했다네. 학선이, 지금 동무가 하는 축산이 그렇게 중요한거야.

이제 대성산골안에도 우리가 엄호하여 들여온 오리알들이 들어가게 될거야. 그러고보면 축산에서도 오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되누만. 오리를 전문으로 하라구. 그래서 꼭 오리박사가 되라구. 전승의 날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학선은 몇번이고 호준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가슴은 말할수 없는 격정으로 설레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축산을 그렇게 중히 여기시누나.

그때 학선은 호준의 말대로 꼭 오리를 전문으로 하는 축산기사가 될것을 결심했다.

정말 얼마 있지 않아 포장된 오리알이 목장에 실려왔다. 학선은 최성준이와 함께 오리알깨우기에 달라붙었다. 전쟁 전기간 학선은 오리알을 깨우고 새끼오리를 키우는데 전념했다.

전쟁을 겪고난 후 몇배로 늘어난 목장의 살림살이속에서 오리작업반이 따로 분리되였다. 오리작업반은 보통강으로 분가하게 되였는데 최성준이가 책임지고 떠났다.

오리들을 실은 통나무떼가 떠나기 시작하자 학선은 더 견디지 못하고 돌아섰다. 형님처럼 따르던 최성준이며 정이 든 오리들과 헤여지는것도 견디기 힘든것이지만 불시에 고향생각이 겹쳐서였다. 오리작업반이 분가해가는 보통강을 생각하니 대동강에 있는 두단땅이 못견디게 그리워났다.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 10년세월. 그간 아버지, 어머니는 안녕하신가. 우리 집은 어떻게 되였을가. 집안의 막내라고 늘 애지중지하던 아버지가 이 아들에게 목침을 내던질 때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장독이 부서지던 아츠러운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가슴을 찢어발겼다. 아, 나의 집! 흰옷입은 어머니의 옷자락과 동뚝우의 버드나무가 삼삼히 어려왔다.

가고싶어도 갈수 없는 고향땅,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한뉘 이 골안에 묻혀야 하는가.

한해두해 날이 갈수록 터진 동뚝으로 쓸어져나오는 물살을 맞는것처럼 마음은 걷잡을수 없었다. 그는 고민속에서 날을 보냈다.

더는 견딜수가 없어 어느날 학선은 최성준을 찾아갔다. 강에서 골뱅이잡이를 하는 그를 만난 학선은 여직껏 숨겨온 자기의 죄를 말끔히 털어놓았다. 만일 최성준의 지지도 받지 못할 인생이라면 물속에 빠져 죽을 각오까지 한 그였다.

《죽다니, 이 좋은 세상에서 무슨 그런 끔찍한 생각을 다 했나. 열살 아이적에 몰라서 한 일이 무슨 흠이라구. 그렇게 보면 내가 일본놈들밑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것도 죄가 되게? 왜정때 난 부두가에서 일하는 가대기군이였네. 우리 나라의 숱한 재산을 내 손으로 날라서 일본으로 실어보냈는데 죄라면 그보다 더한 죄가 어디 있나. 그러나 해방이 되여 나같은 사람두 나라를 위해 일할수 있게 됐네. 어서 일어나라구. 자네는 열성도 있고 또 기능도 있네. 참, 얼마전에 평성에 수의축산대학이 일떠섰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아니, 앞으로 오리박사가 되겠다더니 벌써 그 결심이 변했는가? 지난날 나는 공부할 처지가 못되여 학교엘 못갔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 학교공부는 할수 없네만 학선이야 얼마든지 공부를 할수 있지. 대학에 갈수 있구말구.》

최성준의 한마디한마디 고무는 그대로 학선의 가슴에서 바람이 일게 했다. 대학생! 생각만 해보아도 가슴이 드놀았다. 눈앞으로는 대학생복을 입고 대학정문으로 들어서는 자기의 모습이 우렷이 다가왔다.

그 이듬해 차학선은 정말로 대학생이 되였다. 그는 꼭 훌륭한 축산기사가 되리라는 한가지 일념으로 밤이고 낮이고 학문을 파고들었다.

졸업을 앞둔 때였다. 뜻밖에 최성준이가 그를 찾아왔다.

어쩐일인지 최성준은 《학선이, 이 사람… 내가… 내가》 하는 말만 곱씹으면서 미처 말을 하지 못했다. 학선은 눈이 뗑그래서 최성준에게 다우쳐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이보라구. 내가… 내가 글쎄 수령님을 만나뵈웠다네, 어버이수령님을…》

《예?!》

학선은 닝큼 뒤로 물러섰다. 이게 꿈인가. 정말 최성준이가 맞는가.

《그동안 우리 오리작업반은 늘어나서 오리목장으로 커졌다네. 그런데 내가 그 목장의 지배인이 되지 않았겠나. 글쎄 나같은 사람이 그 큰 목장의 지배인이 되였단 말이네. 게다가 점점 번창해지는 우리 오리목장이 얼마전엔 저기 대동강기슭으로 이사를 했다네, 두단땅으로. 자네가 늘 외우던 그곳 말이야.》

《어디라구요?》

차학선은 눈이 사발만큼이나 커졌다.

《자네네 집도 찾았네. 집은 무사하네. 어버이수령님을 뵈온 나를 붙잡고 식구들이 온밤 이야기를 했다네. 자네 얘기를 듣군 얼마나들… 참, 무슨 말부터 할지 모르겠군.》

학선은 가슴이 꺽 막힌것같아 아무 말도 못했다. 자기의 고향땅이 그렇게 력사적인 고장이 됐다니 가슴이 뻐근하고 눈물이 솟구쳤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친히 찾아오시기까지 하시였다니 세상에 이런 꿈같은 일도 다 있구나.

최성준과 할 말은 끝이 없을것같았지만 그는 한자리에 앉아있을 사이가 없었다. 단지 졸업하면 다른데 갈 생각을 말고 꼭 두단으로 와야 한다는 말만은 귀에 박혀들었다.

이렇게 되여 대학을 졸업한 축산기사 차학선은 두연오리공장으로 오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렀다. 왜놈들이 살판치던 이 나라 땅엔 어디가나 창조와 건설의 노래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있었다. 그전날 동뚝우에 외로이 서있던 가냘픈 버드나무가 거목으로 자란 자연의 변화만이 아니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인민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전변이 일어났다. 대동강동뚝밑의 두연오리공장에서도 현대화의 불바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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