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서 장
(3)
하마트면 머리가 깨여져나갈번한 학선은 당장에 혼이 빠져 어떻게 마당을 뛰쳐나갔는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동네가 소란스러워졌다. 사방에서 개들이 짖어대고 무엇인가 날아가는듯 바람소리가 스산했다. 학선은 허둥지둥 내달리는 속에서도 줄곧 한생각에 매달렸다.
락랑국 토성자리 떼무덤을 헤친다구? 그러니 물고기를 못바친 집을 찾은것이 아니였구나. 아, 내가 그만 돈생각에… 아, 아-
학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휙휙 소리를 내며 돌멩이들이 날아가는 바람에 학선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무엇인가 날아가는것같은 소리란 바로 돌이 날아가는 소리였다. 끝내 돌싸움이 터진 모양이였다.
두단땅에는 원래부터 석전패가 있었다. 이 석전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었다.
예로부터 매해 락랑언덕에서 사냥놀이를 벌려 무술경기를 하는 때면 대동강에서는 편을 갈라 돌던지기로 승부를 다투군 했다.
임진왜란때 평양의 10장사중에서 현차돌이로 이름을 날린것도 바로 거기서 유래된 일이다. 그때부터 더 유명해진 평양석전이였고 두단땅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 석전이였다.
그날 토성주변에서 투석전이 치렬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두단땅까지 번져왔다. 당시 두단땅에는 그무렵에 조직된 조국해방단성원들의 활약으로 한낱 돌싸움으로만 벌어지지 않았다. 그 조국해방단의 조직자는 만경대일가분들중의 한분이였다. 그날의 투쟁은 조직성원들의 단합으로 왜놈들을 노리는 반일운동으로 확대되였다. 하지만 학선은 그 돌 하나하나가 다 자기를 노리고 던져진것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는 더 견디지 못하고 강뚝으로 뛰쳐달렸고 그길로 배에 오른것이였다.
벌써 배는 강복판을 벗어나고있었다. 이젠 강뚝에 외로이 서있던 흰옷차림의 어머니며 버드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별이 외로이 바들거리였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갈곳이 정해진것도 아니고 오라는 사람이 있는것도 아니다. 어둠이 짙어졌다. 하나둘 늘어나는 별들만 아니라면 하늘도 분간못할 어둠속이였다. 별들은 저렇게 빛을 뿌리는데 내가 갈곳은 없구나.
아,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학선의 눈에서는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날이 밝아올무렵 대성산이 바라보이는 기슭에서 내린 학선은 정처없이 대성산골안을 헤맸다. 그러다가 연기가 피여오르는 동네를 보고는 그만 의식을 잃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얼마만한 시간이 지났는지. 학선이가 눈을 떴을 때는 웬사람이 줄곧 내려다보고있었다.
첫눈에 길쑴한 얼굴에 큼직한 주먹코가 덩실한 수더분하게 생긴 사람이였다. 눈을 뜨는 학선을 보자 그 사람의 사슴처럼 어져보이는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두툼한 입술이 열리며 《에크, 이제야 눈을 뜨는구나. 됐다. 얘야, 우선 이것부터 먹자. 그러면 기운이 생길거다.》 그러며 옆에 놓인 보자기를 끌었다. 그속에 골숨히 담긴 노르무레한 죽그릇을 보며 학선은 소리없이 단침을 삼켰다.
최성준이라고 부르는 그는 이 고장의 깊고 험한 산골을 리용하여 집짐승들을 길러가며 살아가고있었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최성준이처럼 짐승치기를 했다.
그때부터 학선은 그의 집에서 살게 되였다. 그 이듬해 학선은 이 골안에서 해방을 맞았다. 시내에서 살면서 여기에 있는 목장을 운영하고있던 왜놈주인이 줄행랑을 치자 이곳 주민들은 짐승이 우글거리는 목장의 주인이 되였다.
나라의 축산발전을 위해 투자되는 정책으로 그곳은 곧 평양목장이라고 불리우게 되였고 책임자는 바로 그 최성준이가 되였다.
그는 목장사업을 착실하게 끌고나갔다.
학선은 자기 생명의 은인인 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었고 맏형처럼 따랐다. 하지만 다른 말은 다하면서도 고향을 떠나온 사연만은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나 학선은 어느 한시도 두단도를 잊은적이 없었다. 두단도도 해방을 맞아 새생활이 펼쳐졌을게 아닌가. 우리 고향은 어떻게 달라졌을가. 아침마다 최성준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로 갈 때면 자기의 이 모습을 부모들에게 보여주고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공부를 잘한다고 선생님이 칭찬한 날이면 어김없이 두단도의 자기 집으로 달려가는 꿈을 꾸군 했다.
거창한 나날이 흘러가는 속에서 학선이가 열여섯나던 해 전쟁이 일어났다. 새로 설립된 인민정권의 시책으로 한창 번창하던 목장은 전쟁의 불길속에 말려들어 숱한 짐승들이 불타죽고 굶어서 페쇄될 정도가 되였다. 하지만 목장에서 일하던 최성준이네들은 입을 악물고 종자를 보존했고 목장을 지켜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목장에서 일하던 학선이도 그 일에서 뒤지지 않았고 최성준이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의 어려운 나날도 함께 겪었다.
전선이 고착되면서 골안에서의 목장일은 다시 수습되여갔고 학선의 뼈도 굵어졌다.
목장에서 짐승을 기르는 일은 재미가 있기도 했지만 학선의 마음을 더더욱 기쁘게 한것은 목장부근에 주둔한 인민군대포병인 호준이와 사귄것이였다.
호준은 학선이와 동갑나이였다. 나이를 속여 입대했던 호준은 숱한 전투에 참가한 이른바 구대원이였다. 그에게는 참으로 들을 소리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돼지풀을 베고있던 학선은 다급히 달려온 호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자기가 속한 부대가 어디론가 급히 이동한다는것이였다. 어디로 가는건 군사비밀이였다.
그들은 섭섭한대로 산판을 내렸다.
어쩔수 없이 학선은 대렬에 들어서는 호준이를 눈으로 바래주기만 했다. 그는 이 순간처럼 군대가 되지 못한걸 후회한적이 없었다.
동갑인 호준은 나이를 불구면서까지 전쟁의 불구름을 헤쳐가는데 나는 기껏해야 돼지나 기르고있으니 자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못난이로만 생각되였다.
그러나 하지 않을수 없는 축사일이였다. 말 못하는 짐승들은 하루라도 게을리하면 그만큼 눈에 띄게 축가군 했다. 더우기 자기가 목장관리를 잘해야 호준이와 같은 인민군대에 고기를 많이 보낼수 있다는 생각으로 학선은 마음을 다잡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날이 흘렀다.
어느날 산판에 올라갔다가 축사로 돌아오던 학선은 편지봉투를 내흔드는 우편통신원을 보자 단숨에 달려내려왔다.
전선으로 나간 호준이한테서 편지가 왔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