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1)

 

대동강을 따라 한동안 가느라면 흡사 흘러가던 콩꼬투리가 갈뿌리에 기우뚱하게 걸린듯한 섬이 보인다. 이 섬을 평양사람들은 두단도라고 부른다.

길둥그런 이 두단땅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두루도며 문발도는 강주변의 멋을 한결 돋구어주고있다. 여러 강줄기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었다고 하는 대동강의 물결이 자식들을 감싸안고 다독이는 어머니인양 부드럽게 섬기슭을 찰싹이며 유유히 흐르는데 그 경치는 말그대로 한폭의 그림을 련상케 한다. 이 고장사람들은 푸른 비단 필필이 늘여놓은듯한 대동강의 경치가 하 좋아 노래한 어느 옛 시인의 한시를 외우기 즐겨했다.

 

야들야들 고운 풀

봄비 지나 더욱 자라

노을비낀 강기슭은

비단실로 수놓은듯

 

강물에선 숭어가 펄떡

나루가엔 버들이 줄줄

절경이로다 산수그림

병풍속에 들어있는듯

 

황홀하면서도 유정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목가적인 향취를 불러일으키는 이곳 경치에 반한 시인은 대동강기슭을 떠나지 못하고 자기의 있는 재주를 다 뽑아 시줄을 읊어나갔다.

 

유난히도 새파란 강물

저리도 푸른것은

녀인네 람색치마

잠갔다 꺼내서인가

푸른 하늘의 조화런가

 

자기야말로 누구에 못지 않은 시재주 있다고 자처한 시인이였지만 그러나 한가지만은 몰랐다.

여기 두단도앞의 대동강물이 어느곳보다 더 푸른것은 마주보이는 만경봉 락락장송의 기상이 그대로 어려서임이다. 사철 변색을 모르고 푸르름과 아름다움을 떨치는 만경봉의 웅건한 자태가 비낀 대동강의 물결에 실린 두단도의 경치는 그야말로 이름난 화가가 병풍속에 담으려 해도 그 진맛을 살리기 힘든것이다.

경치좋고 전설 또한 많아 소문난 이곳 지대는 이 나라를 강점한 간교한 왜놈들의 눈독에 선차적으로 걸려들었다. 서해로 쉽게 빠질수 있고 시내로의 교통도 유리한것에 한껏 구미가 동한것이였다.

이 섬이야말로 대륙침략을 위한 군수산업에서 닭알 노란자위가 될것이라는 약빠른 타산밑에 대대적인 공사를 벌리였다. 운하를 파내고 군용지를 넓히는 공사였다. 턱없이 불어나는 왜놈들의 전쟁야망속에서 섬주민들의 목에 걸린 올가미는 해마다 조여들었다.

이 섬 서쪽의 주민들은 조와 피, 수수를 심기도 했지만 남새농사를 지어 시내에 내가는 일을 더 많이 했다. 혹은 서해까지 나가 새우나 까나리 같은 서해물산을 날라다 생계를 유지하는 집도 있었다. 그러다나니 살림이 다른 고장보다 더 각박했다.

오죽했으면 이 고장을 칭하는 문발리라는 이름이 외곡되여 맨발리라고 불리웠으랴. 말하자면 신발도 못신어 맨발이라는 뜻이다. 무성한 갈대들만 설레이는 이 고장은 바람골이기도 했지만 섬을 닥달질하는 왜놈들의 등쌀에 발파소리가 그칠새 없어 하늘은 노상 우중충 흐려있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하늘이 훤해지며 개밥바라기가 나타났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게 되였다. 정월대보름날 보름달구경을 가듯 구경을 가야 할 그날 마을에서는 매우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겼다.

대동강동뚝에 냉이나물 돋아나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막살이동네의 어느한 집에서 《와지끈!》하고 무엇이 깨져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급하게 다우치는 뜀박질소리가 동네개들을 놀래웠던것이다.

점점 커진 발자국소리는 강뚝으로 이어졌다. 희끗희끗 움직이는 흰옷형체는 곧장 강뚝으로 내달리고있었다. 작대기마냥 홰친홰친한 몸이였다.

그는 동네에서 《젓갈집》이라고 불리우는 동뚝아래 첫집의 막내인 차학선이란 애였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자못 높았다. 곧장 동뚝으로 올라간 그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우중충한 하늘밑에서 고요히 흐르는 강물은 검은 타르처럼 침침해보였다. 어쩐지 섬찍했다. 다리가 떨리는 그 순간 뒤에서 다급히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학선아! 얘, 학선-아-》

학선은 흠칫 놀라 방금 떠나려는 나루배에 훌쩍 올랐다. 나루배는 강을 건느는 길손들을 태우기도 했지만 땔감들을 마련하는 이곳 주민들을 위해 밤에도 마다하지 않고 다니군 했다. 주르르 미끄러진 나루배는 점점 강기슭과 멀어져갔다.

배전에 서있던 학선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뚝우에 흰옷차림의 어머니가 나타난것이다.

외로이 서있는 버드나무앞에서 애절하게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강안에 울려퍼졌다.

《학선아, 학선아!》

학선은 그만 고개를 떨구고 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었다.

끝내는 무릎을 꺾으며 얼굴을 싸쥐였다. 나루배에 탔던 사람들의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처절한 부름이 강안을 울리고 이 애어린 총각은 무엇때문에 저렇게 눈물을 쏟는단 말인가.

학선이네 집은 쪽배에 몸을 싣고 서해에 나가 젓갈을 받아다 팔아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군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일도 제대로 할수가 없었다.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왜놈들은 이즈음에 와서 날아갈수록 기울어져가는 제놈들의 운명을 군수시설확장에 걸고 두단땅으로 숱한 사람들을 끌어왔다. 그런 판이니 섬토배기인 학선이네가 빠질리 만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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