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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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잠간 동이 나자 안해가 핀잔한다.
《왜 그리 뚫어지게 쳐다봐요?》
《대학시절이 생각나 그러오. 로친과 사귀였던 일 말이요.》
둘은 김책공업대학(당시)의 한학부, 같은 학급에서 공부한 동창생이였다.
《어이구, 난 그 일이라문 자다가도 웃게 돼요.》
《건 어째서?》
《처녈 낚아보겠다고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쓰던 령감행동이 영화화면처럼 생동해서요. 령감두 잊지 않았을거예요. 내 동무를 평생 금방석에 앉혀 호사시키겠소, 이러면서 흰소릴 치던걸 말이예요.》
《내가 그랬던가. 기억나진 않는데.》
그는 시뭇이 웃으며 딴전을 피웠다. 희끗희끗한 안해의 머리칼이며 곱게 늙었으나 체소한 안해의 몸을 더듬어보며 중떠보았다.
《당신 내 앞으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일없겠소?》
《무슨 소리가 있는 모양이군요. 뭬라오? 한생 령감따라 별의별 고장에 다 돌아다녔는데 오늘 와서 마다할가. 괜찮아요. 애들도 시집장가를 보냈겠다, 걱정할거 있나요.》
《그건 그렇소.》
주영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불었다. 남편의 물음을 좋은 방향에서 짐작하는 안해였다. 이 로친이 제 령감 재구를 쳐도 아주 큰 재구를 쳤다는걸 알면 뭐라고 할가. 주영호는 안해앞에 더없이 죄스러웠다.
젊어선 제 남편 성격이 너무 급해 사업에서 종종 탈선되는것때문에 애를 태웠고 한편으로는 남편의 직무변동에 의하여 여기저기 다니다 큰 병을 만나 장기간 고생했던 안해였다.
아서라. 이게 무슨 망녕된 심성인가. 주영호는 불현듯 자기를 자책하였다. 나라앞에 일군구실 못한게 큰죄이지 안해앞에 지키지 못한 도리가 다 무엇인가.
식사가 차려졌고 오래간만에 남편과 식탁을 마주해 그런지 안해는 그 나이답지 않게 퍼그나 즐거워한다. 주영호는 때때로 응대는 해주었으나 흥심없이 수저를 놀리며 제 생각에 옴해있었다.
호출음이 적막을 흔들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치락거리다가 서재방의 쏘파에 기대여 깜박 졸고있던 주영호는 전화종소리에 눈을 떴다. 탁상등을 켜고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시간은 2시를 가까이하고있었다.
그는 앞차대우에 손을 뻗쳐 송수화기를 잡아들었다. 수화구에서 정에 젖고 저력넘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깊은 밤에 안됐습니다. 제
그는 자기소개의 말씀을 올리며 황황히 일어나 옷매무시를 정돈하였다.
《외국출장내용을 내 다 들었습니다.》
《부총리동무는 이번에 체통에 비해 얼마되지도 않는 설비며 물자를 가지고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존엄을 롱락하려드는 추종세력들에게 본때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그대로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커다란 성과를 이룩했습니다. 나는 이번 일로 신념이 투철하고 배짱센 좋은 일군 한사람을 알게 된것이 기쁩니다.》
온몸을 괴롭게 짓누르던 중압감이 한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듯싶었다. 주영호는
《대장동지, 제 응당히 한 일을 공적으로 쳐주시고 과분한 치하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나 전 한켠으로는 일군구실을 못해 당의 경제정책관철에 막대한 저해를 줄번 하였습니다. 그 개건현대화안이 부결된것은 천만다행이였습니다.》
웃으시는것같았다.
《잠에 젖은 목소리가 아닌게 이상하다 했더니 고민하고있는 모양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혁명의 간고성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으며 천하가 뒤집히고 광풍이 불어와도 제힘으로 억척같이 버티고 살아야 한다는것을
절감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
《
좋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나는 부총리동무가 보여준 투철한 신념과 배짱대로 맡겨진 사업을 잘해서
《대장동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주영호는 송수화기를 정중히 내려놓았다. 방안에는 또다시 적막이 흘렀다.
사위를 몇번이나 휘둘러보았다. 툭툭 귀에 알릴정도로 높뛰는 심장의 박동소리며
서재문이 슬며시 열리며 덧옷을 걸친 안해의 모습이 문가에 나타난다. 안해도 이상한 예감을 눈치챈듯싶다. 흘러내리는 덧옷을 잡으며 문턱을 넘어선다. 곁에 다가온 안해는 묻는듯한 지꿎은 눈길을 주영호의 얼굴에서 떼지 못한다.
《이보우 로친네, 내 전화를… 이자 내가.》
이 깊은 새벽에 불현듯 한가득 받아안은 신임, 그로 하여 행복과 희열에 빛나는 얼굴을 하고있던 주영호는 안해의 손을 잡아쥐였다. 그는 떨리면서도 축축한 목소리로 더듬거리였다.
《말해주겠소. 내 이제, 지금 당장.》
모든것을 짐작했는지 주영호의 너른 가슴에 손을 대는 안해이다. 흥분으로 혈압파동이 올가봐 진정시키려는 거동이였으나 안해 역시 눈굽이 붉어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