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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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영호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를 처음보는 사람처럼 뜯어보았다. 여태껏 알고있던 신석진이 이 순간에는 이상한 인간처럼 보이였다. 아니, 면사포를 제 손으로 벗고 드디여 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았다.
그래서였구나. 리해가 되였다. 회담을 중도에서 그만둔 리유를 알게 된 신석진이 어이없어하며 쏟아내던 불만이 생생하게 기억되였다.
《이것도 일종의 면담이나 같은데 대방의 자세가 그러면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간에 우선은 결과물을 이끌어내고봐야지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 보니 틀려먹어도 아주 틀려먹은 사람이로군.)
그는 미풍에 엷은 몸을 하들거리는 푸른 창가림을 바로잡으며 석진을 외면하였다.
《됐소. 그 얘긴 그만합시다.》
《…》
《난 혼자 있고싶구만.》
《?!》
×
오래간만에 들어오는 집이였다. 반년이 퍽 넘었을것이다. 그새 평양에 올라오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집에 들어가 안해와 마주앉기는커녕 전화로나마 안부인사도 제대로 나누어보지 못한 그였다.
그러나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퍼그나 무거웠다. 수확이 없는 외국출장길과 더불어 낮에 있은 일때문이였다.
오늘 내각회의실에서 올해에 들어와 세번째로 되는 중간총화회의가 열리였다. 여기에는 주로 금속공업부문과 련관단위의 중요기업소 책임일군들이 참가하였다. 기조보고에 이어 토론이 진행되는 전기간 그는 내내 침중한 기색으로 청취하였다.
얼굴빛이 어찌나 어두웠는지 소휴식시간에 외국출장결과를 알고싶어 그의 주위에 다가왔던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물러갔다.
그러는중에도 저쪽창문가에 서서 사람들과 웃으며 담소하는 김중건의 뜬뜬한 태도가 부러웠다. 이전에는 내각에만 올라오면 원료, 연료문제를 가지고 무던히나 영호를 괴롭히던 김중건이였다. 그랬던 중건이였는데 근간에 만나게 되면 굽석 인사나 하고는 제 볼장을 본다. 하기야 수입연료와의 결별을 선포한 황철이니 왜 그러지 않겠는가.
회의가 끝난뒤 당위원회를 찾았다. 문기척을 하고 들어서니 주영호와 나이는 어슷비슷하지만 몸이 체소한 당책임일군이 쏘파에 앉아 무슨 문건인가를 번지고있었다.
문건을 상우에 놓은 그는 가녁으로 옮겨앉으며 곁의 자리를 권하였다.
《신색이 좋지 않구만. 어디 편찮소?》
《피로때문이겠지요.》
그는 오른팔굽을 무릎에 대며 일군쪽으로 비스듬히 돌아앉았다.
《오늘 제 이렇게 당위원회걸음을 한것은 일을 쓰게 못하여 우리 당 경제정책관철에 엄중한 지장을 준것을 비판하려고 왔습니다.
주영호는 침통하고 낮은 어조로 생각했던바를 그대로 털어놓았다. 토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넓다란 방안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창문가녁에 세워놓은 커다란 밤색벽시계의 추소리만 고르롭게 울릴뿐이였다.
언제 일어섰는지 모른다. 당책임일군은 뒤짐을 지고 방안을 천천히 거니였다. 그러던 일군은 주영호의 앞에 와섰다. 그는 주영호의 한손을 지그시 잡는것이였다.
《와주어 고맙소. 이번 일을 통해서 나두 자기 힘을 믿고 일떠서야 한다시던
…
집에 들어서니 안해가 보이지 않았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그는 안해가 건설장에 있을거라고 짐작되였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 들어가보니 입에 댈거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없으니 때식을 하며말며하였을것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쌀을 일어 안친 다음 감자를 볶다가 국물을 잡았다. 랭장고에서 두부를 꺼내 칼도마에 올려놓고 식탁의자를 하나 끄당기였다.
인차 부엌에는 감자국이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떠돌았다. 어느새 자기를 잊고말았다. 머리속에는 또다시 조절, 보충, 삭제, 불균형을 맞추는데 드는 막대한 소모량이 되살아났고 그것은 계산과 계산을 끝없이 거치며 그를 괴롭히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갑자기 《아이구나, 이 탄내.》 하는 안해의 기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펀뜩 정신을 차린 그는 부랴부랴 불을 끄고 남비를 들었다. 헉 소리를 치며 국남비를 떨구어버렸다.
《어, 따겁다.》
《들어오면 전화 한통이라두 할게지 이게 뭐예요?》
안해는 서둘러 덧옷을 벗어 의자우에 놓고 바닥에 널린 국거리를 그러모으며 칭원한다.
《인줘요.》
주영호는 앞치마를 벗어 넘겨주며 식탁가녁의 의자에 몸을 실었다. 빠른 손질로 남비를 부시고 새로 국감을 안친 안해는 랭장고를 열고 버섯이며 산나물을 꺼낸다. 젊어서는 가리는 음식이 없었지만 나이들어 감에 따라 혈압의 파동이 심해서인지, 입맛이 변해서인지 지방질음식이 질색인 영호였다.
대신 남새음식을 가까이하게 되였는데 특히 토장국과 산나물은 주영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였다. 가락맞은 칼도마소리며 토장과 산나물특유의 별스러운 냄새가 부엌에 가득찬 탄내를 힘있게 밀어내고있었다.
그러는 속에 내외간에 딸과 아들의 소식, 손자, 손녀얘기, 건강, 사는 형편 등 궁금했던 가정소식들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