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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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음식상을 든 딸이 사이문가에 나타났다. 함승일은 이따가 들여오라는 뜻으로 손짓했다. 그는 올방자를 고쳐앉으며 중건을 똑바로 보았다.
《그래 그 노죽값이 얼마요?》
《동무 몸값이야.》
《그래도 못가.》
《못가?!》
김중건은 방바닥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가야 돼.》
그는 승일의 가슴노리에 뭉툭한 식지손가락을 뻗쳤다가 주먹을 쥐며 자기 동가슴을 두드리였다.
《네가 황철에 가야 하는건 나 김중건의 의향이 아니라
그런데 못간다구? 이게 어디다 대구 배짱놀음이야?!》
《?!》
《네가 날 원망하구 미워하는걸 알아. 응당하지. 그만큼 내가 미욱하게 널 대해주었으니까. 그리고 주체철이 스러지는걸 뻔히 알면서도 조건과 환경의 포로병이 되여 이 김중건이 우의 일군들 눈치를 보며 함구무언한것두 있고. 이건 앞으로 계산하란 말이야.
그러나 우린
《!》
《그래 어떻게 하겠어? 가겠어, 안 가겠어?》
《…》
《하긴 내가 괜한걸 묻는구나. 안 가겠다면 기업소에 돌아가 보위대를 한차 꽉 박아 실어보내면 될걸 가지구.》
방안에는 긴 정적이 흘렀다. 부엌에서 듣기만 하던 승일의 처며 딸이 언제 들어왔는지 방구석에 앉아 가장의 얼굴을 어떤 절절한 희망의 눈빛으로 주시한다.
《자식, 일군이라는게 말하는 본새란.》
한참후에 함승일이 입을 열었다.
《좀 차근차근 말해야 될거 아니야.》
그제야 김중건은 격한 나머지 앞뒤가 잘린 말을 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중건은 될수록 감정을 푹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모든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또다시 흐르는 정적, 정적을 가볍게 흔들며 곁에서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뭘해? 밥을 들여오지 않구.》
승일이 갈린 목소리로 채근하자 안해며 딸이 부엌으로 경쟁하듯 나간다. 이내 음식상이 들어왔다.
《하겠어?》
함승일이 눈굽이 불깃해가지고 술잔을 기울이는 시늉을 한다.
《달라우.》
큰 사발 두개를 벌려놓고 넘치도록 술을 붓는다.
《일없어?》
《별상관을.》
김중건은 사발을 들다말고 따지고들었다.
《가지?》
《지배인이 되더니 좀상스러워졌구나. 이걸 보문 몰라?》
함승일이 너 황철사람본태는 잃지 않았구나. 김중건은 사발을 들었다.
《무슨 소리가 있어야지.》
《또또, 이게 다 말해주잖아.》
《하긴 그래.》
두 술사발이 부딪치며 넘는 술이 서로 합쳐지며 넘어간다. 단번에 쭉 들이킨 두사람은 물기가 어룽어룽한 눈으로 마주보며 사나이답게 웃었다. …
김중건이 승일의 집을 나선것은 정오가 퍽 지나서였다. 귀로에 오른 중건은 운전사에게 주령광산으로 가자고 하였다. 주령광산 지배인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끄떡도 안한다. 종이장을 읽는것과 얼굴을 마주하며 의논하는것이 역시 다른것이다.
황철이 운수수단이 빈약한데다 이러저러하게 동원되는 일이 많아 이번 분기에는 아무래도 주령의 철광석을 광산의 힘을 빌어 실어들여야 한다. 그러자면 아주 역기로 소문난 그곳 기업소 일군과 《흥정》을 잘해야 하는것이다.
광산어귀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르러서야 중건은 《흥정거리》를 찾아내였다. 그는 기분이 좋아 휘파람을 나직이 불었다.
그러나 김중건은 자기앞에 어떤 커다란 슬픔이 기다리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보랭제채취전투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다가 차전복사고가 났던것이다.
어느 시인의 가사였던지, 기쁨과 슬픔은 엇갈려있다고.
《오빠, 어디 있어요? 그따위 외화 몇푼이 뭐라구 내 아들을 내보내요? 내 아들을 내놔요. 오빠, 어디 있어요? 네? 오빠!》
막내녀동생의 애끊는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러왔으나 김중건의 손전화기는 덤덤하기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