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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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중건이 먼저 시선을 돌리였다. 그는 《아주머니, 이걸 좀…》하며 무겁게 들고있는 운전사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때 성난 목소리가 김중건의 귀전을 후려쳤다.
《받지 마오.》
함승일은 성큼 다가가 처의 손에 든것을 앗아내여 중건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더니 씽하니 방안에 들어가는것이였다. 인차 나왔는데 두손에는 커다란 폴리마대 두개가 들려있었다.
《내 성남아바이가 이런걸 가져왔을 때 도로 보낼라하다가 년세많은분이고 애꿎은 사람에게 골받이하는것같아 참았는데 마침이구만. 이것두 가져가오.》
《?》
《병주구 약주구 하지 말란 말이야.》
《승일동무, 내 말 좀 듣소. 난 당신 데리러 왔어.》
《뭐, 나를? 어째서?》
《산소열법때문이지. 가자구, 승일이.》
함승일이 코웃음을 쳤다.
《여보시오 지배인, 그간 고생하며 보충해놓은 도면을 줬으면 됐지 뭘 또 사람을 데려간다 어쩐다하며 그러오? 웃기지 마오. 지배인동지야 사람보다 그 종이장이 필요하잖소.》
《그게 아니란데. 내 말을 마저…》
《중건동무답지 않소. 역겹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겼다.
김중건은 윽윽거리며 퇴지돌에 오르려는 운전사를 엄하게 꾸짖었다.
산골의 저녁해는 짧다. 잣나무숲우듬지를 태우던 저녁노을이 스러지자 사위는 인차 어둑어둑해나기 시작하였다.
《갑시다, 지배인동지.》
승용차주변을 오락가락하며 애꿎은 담배질만 하던 김중건은 드디여 결심을 내리였다. 차문을 연 중건은 출장가방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여 긁적거리였다. 그는 종이를 차곡차곡 접어 쪽지편지를 만들었다.
《이걸 주령광산 지배인에게 주라구, 그 결과를 업무부지배인에게 알려주고 빨리 떠나라우.》
《지배인동진 어디서?…》
김중건은 어둠속에 묻혀있는 승일이네 집을 가리켰다.
《친구네 집이 있는데 걱정할거 뭐 있어. 일이 끝나면 전화를 할테니까 그때 오라우.》
다시 올라가 두드렸으나 굳게 닫긴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김중건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대문가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후회가 물밀듯이 차오른다. 이럴줄 알았으면 도면을 가지러 성남아바이를 보내는것이 아니라 내가 올걸. 아니,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지. 그가 말한것처럼 사람을 대하는 내 자세가 틀려먹은것이다.
낮에 김중건은 가스발생로건설장을 돌아보고가는 로상에서 황해제철련합기업소를 담당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을 만났었다.
많은것을 토론하였고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주로 김중건이 문제를 제기하고 견해를 내놓았으며 그는 대체로 중건이를 지지하였다.
《이번기 송림공업대학졸업생들을 모두 산소열법용광로기술집단에 배치하겠다는 지배인동무의 생각에 난 동감입니다. 현재 있는 기술자들의 실력제고를 위하여 내놓은 안이나 앞으로 기업소에 전망설계연구소같은 기구를 내오겠다는것도 찬성이고.
거 금포에 나가있는 청년돌격대원들 휴식문제 말입니다. 내 의견은 그들이 돌아오면 집에서 먼저 푹 쉬운 다음 기업소에서 환영모임을 했으면 합니다. 부모형제들이 얼마나 그립겠습니까.
지배인동무가 좋다니 그렇게 합시다. 물론 련합당위원회에선 어련하겠지만 저도 그들에 대한 평가를 크게 해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겠습니다.
한데 지배인동무, 함승일동무에게 성남설계원을 보냈댔다는게 사실입니까?》
《예, 성남아바이 가서 도면을 가져왔습니다.》
《본인이 다른 말은 없더랍니까?》
《글쎄 딱히는, 그새 보충을 많이 했고 도면은 홀홀히 주더랍니다. 그래 전 함승일동무가 오고싶은 마음이 없는거라고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잘된 일같지 않습니다. 사람을 데려와야 합니다. 도면같은거야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그릴수 있는거 아닙니까. 나는 지배인동무가 련합당집행위원회의 한사람으로서 산소열법개척을 실무적으로만 대하는것이 불만스럽습니다. 이 건설을 통하여 한사람, 열사람, 백사람을 당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우리 당 경제정책관철에 진심을 바치도록 하는것이 지배인동무의 첫째가는 사업으로 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승일동무를 데려옵시다. 어떻습니까?》
《련합당위원회에 제기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지배인동무가 가야 합니다. 그 동무는 지배인동무가 데리고 일할 사람이고 또 지배인동무가 가야 그 동무는 생각을 깊이 할것입니다.》
길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의미짙은 권고였다. 평상시에 김중건은 책임일군의 권고나 조언, 의견을 심중하게 대하군 하였다. 언행이 점잖아서 학자들과의 사업이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지만 정작 마주앉아 얘기를 나눠보면 실무에 밝은 일군이였다. 그런가하면 원칙적인 문제에서는 한걸음도 타협을 하지 않는 속대가 바로선 사람이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산소분리기 축랭기에 넣을 보랭제를 다른 나라에 가서 사오자는 의견에 김중건은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국내에서 찾아볼 작정은 안하고 덮어놓고 사오자는것은 말이 안된다는것이 중건의 견해였다. 갑론을박의 론의끝에 나중에 중건의 견해가 다수에(여기에는 련합당위원회의 일부 일군들도 있었다.) 몰리게 되였는데 이때 책임일군이 나섰다.
《지배인동무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보랭제를 만들수 있는 대용재료가 있고 그걸 리용해서 축랭기를 살린 전례가 있다는데 어째서 부득부득 외국시장에 나가 사오자는것입니까.
나는 귀중한 외화를 랑비하며 사오느니 우리 땅에서 찾아보자는 지배인동무의 견해를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하여 산소분리기 축랭기에 넣을 보랭제문제는 김중건의 주장대로 하기로 락착이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