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5
(3)
김갑석은 혼신의 힘을 깡그리 짜내여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 죽어도 조헌의병장과 함께 죽고싶어 인생의 마지막걸음을 한발자국, 두발자국 옮겨짚는것이다. 성돌에 깔리워 다 죽었던 몸을 살려주었고 그후에는 왜놈들에게 붙잡혀 짐군으로 끌려다니던 자기를 의병대에 받아준 조헌의병장을 숨이 붙어있는 한 위해주고싶었다. 조헌의병장에게 날아드는 왜놈의 조총알과 화살, 창과 칼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여 의리를 다하여 죽기를 바랐다. 그는 마침내 완기, 해동이네들과 더불어 조헌의병장의 두리에 설수 있었다.
왜놈 한놈이 한두걸음 나와서 조헌의병장을 향해 조총을 겨누었다.
그 순간 설향이에게 기발을 넘겨준 완기는 《
조헌의병장을 겨누었던 왜놈의 목이 당장 떨어져나가고 눈깜빡할 사이에 수십놈들이 꺼꾸러졌다. 수백의 왜졸들이 세 사람을 에워쌌으나 장검을 세차게 휘두르며 호랑이처럼 싸우는 그들을 어쩔수 없었다.
조헌의병장은 오른손에 칼을 잡고 갈등으로 북을 치면서 힘차게 적의 무리를 맞받아나아갔다. 설향이는 조헌의병장의 곁에서 기발을 높이 들고나아갔다. 효숙이, 옥섬이도 칼을 높이 들고나아갔다.
왜놈들은 전률하였다. 이같이 두렴모르고 이같이 불사신의 모습으로 다가드는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 그 어떤 신성불가침의 신비로운 존재처럼 환각되였다. 만약 그들을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하늘이 노하여 청천벽력을 일으킬것같이 여겨졌는지 모른다.
놈들은 무서워 뒤걸음치면서 조총을 마구 쏘아댔다.
완기, 해동이, 갑석이들이 조헌을 막아나섰다.
해동이는 흠칫 몸을 떨더니 《
완기는 칼을 땅에 벋디디고 비틀거리였다. 그도 총에 맞은것이다.
《여보-》
설향이 그를 그러안았다. 설향의 가슴에도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는 제 가슴보다도 피흐르는 남편의 가슴을 손으로 막으면서 남편과 함께 쓰러졌다.
조헌의병장은 이 마지막순간에 의병장으로서 사랑하는 의병들에게, 아버지로서 귀중한 아들딸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다하듯이 그들의 맑은 눈들을 하나하나 감겨주었다.
완기는 마지막숨을 모두어쉬면서 《아버…님… 소자가…
《오냐, 걱정말아. …나와 함께 갈 때가 되였다. 설향이랑, 삼녀랑, 해동이랑, 덕보랑, 효숙이랑 다 함께 가자.》
《
설향이와 완기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조헌의병장은 기발대를 의지삼아 우뚝 일어섰다.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진악산기슭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을 터쳐올리면서 기마대가 질풍처럼 달려나왔다.
열, 스물, 서른… 그 끝을 알수 없는 기마대의 급습이였다.
왜놈들은 깜짝 놀랐다. 조헌의병장이 또 어떤 천변만화를 일으키는지 몰라 당황하였다. 놈들은 파죽지세와 같이 휘몰아쳐오는 기마대가 얼마나 되는지 미처 가려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조헌의병장은 기발대를 꽉 그러쥐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의 가슴에서 피가 배여나왔다. 의병장의 상처를 감싸주고 피를 막아주던 삼녀는 그의 발앞에 고요히 누워있었다.
기마대는 도망치는 왜놈들을 뒤쫓아가며 무자비하게 족치고 또 족치였다. 그들은 살아남은 왜적들이 멀리 쫓겨가자 급히 말머리를 돌려 조헌의병장에게로 왔다.
그들은 송익필, 송한필의 기마대였다. 그들의 앞장에서 안세희선전관과 그의 호위군관들이 그리고 정암수후위장과 장공인들이 달려왔다.
안세희는 윤선각이 고의적으로 조헌을 함정에 몰아넣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밤낮으로 달려오던중에 송익필형제의 기마대를 만났던것이였다.
조헌의병장은 간신히 기발대에 의지하고 서서 가물가물 흐려오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거친 숨결을 헉헉 내쉬고있었다.
《중봉- 》
《중봉선생- 》
안세희와 정암수는 말잔등에서 급히 뛰여내려 조헌의병장을 와락 끌어안았다. 송익필형제도 말안장에서 훌쩍훌쩍 뛰여내려 조헌의병장앞에 엎어지듯 무릎을 끓었다.
《의병장님, 송익필, 송한필이 이제야 왔사오이다.》
조헌의병장은 그들을 알아보고 가까스로 엷은 미소를 피웠다.
《다… 다들…왔구…려… 청수, 죽산…송익필이… 이 기발을 받아주…오…》
정암수는 눈물을 뿌리며 기발을 넘겨받았다. 조헌의병장은 그제야 안심하듯이 두눈을 감으며 의식을 잃었다. 안세희와 정암수는 쓰러지는 그의 몸을 안아서 조심히 눕혔다.
《중봉이 정신을 차리라. 응?! 중봉이-》
《중봉선생, 선생은 가면 안될 분이요. 어서 눈을 뜨오.》
안세희와 정암수가 조헌의병장을 흔들어 깨우며 눈물을 쏟았다.
《나리님, 아이구 나리님, 정신을 차리시오이다. 흑흑… 으혹…》
조헌의병장은 꿈속에서처럼 아득히 먼곳에서 자기를 부르는것같은 소리를 듣고 가느스름히 실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