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0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3

(2)

 

왜놈들은 이목구비조차 가려보게 될만큼 매복구간으로 점점 깊이 들어서고있었다. 얼핏 보아도 2 000이 넘어보였다. 놈들의 꼬리에는 두채의 말달구지가 따라오고있었다. 먹을것과 화약따위일것이였다. 이놈들은 한개의 부대가 틀림없어보이였다.

벼랑아래 행길에서 까막까치 떠드는것과 같은 혀까부라진 왜놈들의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빨리빨리, 뒤떨어지지 말라.》

은빛갑옷에 은빛투구를 쓰고 말잔등에 앉은 놈이 거의나 달음박질치듯 가고있는 대렬을 재촉하였다.

《빨리빨리 따라서라. 어서 따라서라. 옥천의 의병놈들을 놓치겠다. 빨리, 빨리잇-》

왜놈장수는 서너놈씩, 대여섯놈씩 줄레줄레 뒤떨어져오는 놈들을 말채찍으로 다몰아댔다.

왜졸들은 숨을 헐떡이며 걸음발을 다그쳤다. 대렬의 간격이 좁혀지고 어깨우에 삐죽삐죽 솟은 창과 칼들이 더 빨리 오르락내리락 도깨비춤을 추었다.

갑자기 선두왜놈들이 《아이쿠-》, 《어이쿠-》 째지는 비명을 지르며 저저마다 발바닥을 싸쥐고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뒤따르던 놈들이 웬일인가 하여 멈춰서고 또 그뒤에 섰던 놈들도 멈춰섰다.

놈들이 밀집되였다. 바로 이렇게 되기를 바라서 조헌의병장은 행길과 그 좌우풀숲에도 마름쇠들을 수없이 깔아놓게 하였었다.

왜놈들의 한개무리 2 000여놈이 예상대로 의병들과 승병들의 매복구간에 모여들어 머뭇거리게 되였다.

조헌의병장은 천천히 왜놈장수를 겨누어 활시위를 만궁으로 잡아당겼다가 화살을 날려보냈다. 왜장수의 목줄띠에 화살이 면바로 박혀들었다. 놈은 들고있던 채찍을 허공중에 뿌리며 말잔등에서 떨어졌다.

바로 그 순간에 산판이 저절로 무너져내리듯 난데없는 돌사태가 무섭게 태를 치면서 돌폭포, 돌벼락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나무를 쓸어눕히고 쾅다당, 와당퉁탕 풀숲을 짓쳐부시면서 폭풍처럼 왜놈들을 죽탕쳐버리였다.

왜놈들은 처음에 대지진이 일어났나 하고 발목이 땅에 박힌듯 어쩔줄 몰라하다가 돌사태에 깔려죽었다. 요행 살아남은 놈들이 닭무리 흩어지듯이 사방으로 도망쳤으나 어데선가 날아오는 화살에 벌렁벌렁 나자빠졌다.

살아서 도망친 왜놈 몇놈이 화살이 미치지 않는 먼곳까지 가서야 멈춰서서 방금 돌사태가 쏟아져내린 벼랑가와 산비탈을 바라보았으나 그 무엇도 볼수 없었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적들을 속이기 위해 의병들과 승병들이 적을 친 다음에 그자리에 엎드려 몸을 숨기도록 하였던것이다.

북도 울리지 않고 징도 두드리지 않고 조총도 쏘지 않고 있는듯 없는듯 하게 하여 마치 천지조화의 이상한 변이 벌어진것처럼 왜놈들을 속이는 전술이였다.

산굽이를 돌아나오던 왜적 2진이 멈춰섰다. 방금 도망쳐간 왜졸의 말을 듣고있는 모양이였다.

조헌의병장은 여러명의 의병들이 풀과 나무가지로 위장하고 산아래로 내려가 왜놈들의 조총과 화약, 철알들을 거두어오도록 하였다. 잠간사이에 그 명령이 훌륭히 수행되였다.

조총 200정과 많은 화약과 철알을 거두어왔다. 승병들은 자기들의 매복구간에 화약상자를 실었던 마차가 있었기에 많은 화약을 얻어들이였다.

이제는 배심이 더욱 든든하였다. 의병들과 승병들의 사기와 열기가 백배해졌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서로 찾아가고 찾아오다가 바위뒤에서 만났다. 그들은 다음 싸움의 계책을 의논하였다.

《승병장님, 우리의 조총대는 400명으로 늘어났소이다.》

《우리 승병대의 조총대도 200명으로 늘어났소이다.》

그들은 잠간 계책을 의논하고 각기 자기들의 위치로 돌아갔다. 두 의병장의 생각이 꼭같았던것이다.

적들이 갑자기 벌떼처럼 벌판으로 흩어지더니 새까맣게 벌려서서 돌사태가 일어난 전구간을 향해 달려나오기 시작하였다.

전렬에서 달려나오는 왜놈들은 방패를 들고 가면을 썼는데 가면에는 흰이발을 무섭게 드러내고 울부짖는 호랑이와 사자, 승냥이대가리들이 그려져있고 룡대가리, 끔찍스러운 뱀, 혹은 귀신과 도깨비들이 그려져있었다. 이것으로 상대를 무섭게 하고 얼혼이 빠져나가도록 하려는것이였다.

왜놈들이 활 한바탕거리에 들어서고 또 반바탕거리까지 들어오기를 기다리던 의병들과 승병들은 일제히 비발치듯 화살을 내리쏘았다. 조헌의병장의 화살은 왜놈의 가면을 어김없이 꿰뚫고들어가 연해연방 쓸어눕히였다. 덕보, 해동이들이 쏜 화살도 왜놈의 가면을 골라가며 꿰였다.

그러나 대다수 의병들의 화살은 그렇게까지 명중하지 못하고 놈들의 방패에 꽂혀들었다. 왜놈들은 화살을 무서워하지 않고 새까맣게 다가들었다.

이때 갑자기 북소리가 세차게 울려가자 의병들과 승병들은 《와야-》하고 돌팔매를 쳤다. 하늘을 가리우며 날아가는 돌이 우박처럼 왜놈들의 방패를 까부시고 대갈통을 짓부시였다. 왜놈들이 피할 곳을 찾아 아우성을 치며 흩어졌지만 이내 돌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자빠지고 엎어지고 너부러져 죽었다. 수백놈이 순식간에 몰살되였다. 돌팔매는 때에 따라서 활과 조총보다도 더 위력한 병쟁기가 되여 상대를 통쾌하게 짓쳐버리는것이다.

왜놈들은 너무나 예상밖에,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무리죽음을 당하고 분통이 터질대로 터져올라 돌팔매가 미치지 않는 곳까지 무리지어 나와서 의병들을 향해 일제사격을 세차게 들이대였다. 삽시에 조총탄알이 앙칼진 소리를 지르면서 바위를 물어뜯고 풀숲을 쓸어눕히고 나무가지들을 꺾어놓았다. 그것은 여태껏 볼수 없었던 불소나기와 같았다.

왜놈들은 이렇게 의병들이 머리를 들수 없게 제압해놓으면서 한편으로는 불개미떼처럼 달려나왔다.

이때를 참을성있게 기다리였던 조헌의병장은 북을 세차게 세번을 두드리였다. 북소리가 《둥둥-》 울려가자 매복구간의 좌우숲속에서 600여정의 조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천지를 가르는 뢰성처럼 터져나오는 총소리와 함께 왜적의 무리가 뭉청 쓰러졌다. 뒤이어 또 한차례의 조총사격이 불벼락치듯 터져나와 수백놈의 왜놈들을 쓸어눕혔다.

이때라 의병들과 승병들의 진에서 천지를 진감하는 북소리, 징소리, 와와- 기세를 올리는 함성이 터져나와 싸움을 돋구었다.

그때에야 왜놈들은 산우에 활과 돌밖에 가진것이 없는 의병인줄 알고 달려들다가 또다시 뜻밖에 무리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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