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8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2

 

조헌의병대와 령규승병대는 완기의 기마대가 조계산을 가까이하고있을 때 진악산의 깊은 수림속에 들어섰다. 사흘낮, 사흘밤을 쉬지 못하고 예정기일보다 하루 앞당겨왔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전 부대를 쉬게 하고 위장들과 함께 진을 치고 왜놈들을 족쳐댈 장소를 정하려 산 남쪽기슭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금산에서 뻗어오는 길이 진악산기슭을 에도는 곳에 진을 치기로 의논하였다. 거기에는 병풍처럼 바위벼랑들이 둘러서있었다. 그아래로 행길이 지나갔었다. 벼랑가에서는 왼쪽으로 벌 하나를 사이두고 조계산이 가까이 바라보이였다.

그들이 의병대와 승병들이 각각 차지해야 할 곳을 분담하고 부대가 쉬고있는 수림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에는 해빛이 나무우듬지에 비쳐들었다.

조헌의병장은 곤히 자고있는 의병들을 돌아보았다. 네활개를 펼치고 드렁드렁 코를 골면서 세상만사를 모르고 자다가도 가만히 흔들어깨우면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 땀에 쩔어든 옷들을 그대로 입고 해진 짚신들을 그대로 신고 자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이 깊었다. 이 사람들은 고되고 힘들고 또 언제 죽을줄 모르는 사지판을 넘나들면서도 고생스럽다는 말 한마디할줄 모른다. 자기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이 나라를 위해, 일년열두달 늘 굶주리고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왜적을 맞받아 일어난것이다. 그들은 여기 진악산이 제 죽을 곳이 될수 있다는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모르는듯 평시처럼 래일의 장한 싸움을 위해 잠을 달게 자고있다.

조헌은 그들을 7 000여놈의 왜적과의 무모한 싸움에서 희생시키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용서하시라, 귀중한 사람들아. 우리들이 왜놈들을 막지 않으면 과연 그 누가 막아서 나라와 백성들을 구원해내랴. 그 누가 호서땅에서 임금을 호위하여 싸우다가 죽으랴. 내 마음 그대들이 알아주리라.

조헌의병장은 생각깊이 숲속을 거닐었다. 문득 몇해전에 상소를 올리고 대궐밖에서 처분을 기다리다가 밤늦어 돌아오는 길에 밝은 달을 바라보며 읊었던 시가 떠올랐다.

 

맑고 고운 달 물에서 건져냈나

인간세상 구석구석 샅샅이도 비치누나

외로운 이 신하께 못된 마음 있다면

그 빛발 남겼다가 이내 심정 밝혀주렴

 

그의 심정은 왜란이 터지기 전이나 왜적이 쳐들어온 오늘에나 나라와 백성, 임금을 위해 죽고살겠다는 마음이 한결같았기에 이 시가 저절로 떠오른것이였다.

풀숲을 헤치면서 삼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한잠도 못자고 400여리를 걸어왔지만 조금도 피로한 기색도 없이 생글생글 웃었다.

《의병장님, 저기 바위옆에 의병장님의 초막을 지어놓았소이다. 의병들이 달라붙어 제꺽 지어놓았는데 의병장님께서 한잠 푹 쉬셔야 하오리다. 꼭 쉬셔야지 몸이 견디여낼수 없사오이다. 예?》

삼녀는 의병장님의 날마다 수척해지는 얼굴을 보면서 때식이라도 제때에 맛있는 음식감으로 지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언제나 가슴을 허비였다.

《허허, 의병들은 풀을 깔고 자는데 나라고 초막에 들어 자면 되나.》

《령규승병장님의 초막도 나란히 지어드렸는데 승병장님이 기다리고있사옵니다. 》

《음, 그래? 어서 가자. 의병들의 밥준비는 다되였나?》

《예, 저기 골짜기아래 샘터가에서 밥들을 짓고있소이다.》

《음, 빨리 지어서 먹이도록 해야겠다.》

《알았소이다.》

조헌의병장은 의병들과 승병들이 밥을 먹은 뒤에 싸울 준비를 서둘러야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령규승병장도 그때문에 기다리고있었다.

두 의병장이 마주앉는데 초막밖에서 의병 하나와 승병 하나가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옥천에서 왜놈들을 치고 조계산으로 슴배여들어간 기마대의 긴급보고를 안고온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두 의병장앞에서 옥천고을의 적들을 쳐부시던 싸움장면까지도 자세히 이야기하고 충청도의병대와 충청도승병대의 기발을 관가의 지붕에 이틀간이나 나란히 휘날렸다는것과 지금은 조계산에 들어와 의병장님들의 지시를 기다린다고 하였다.

조헌의병장과 령규승병장은 매우 만족하여 그들을 치하하였다. 그리고 조계산의 기마대가 수행해야 할 전투임무를 정해주었다.

조헌의병장은 마지막으로 엄격히 마디마디에 그루를 박아 지시하였다.

《이번 싸움에서 크게 적을 치자면 련락신호가 잘되여야 하오. 여기 본진의 신호기발은 두폭의 령기요. 이 두개의 령기가 동시에 가로세로 두번씩 세번 흔들리면 조계산의 기병대 200필이 질풍처럼 달려나와 왜놈의 옆구리를 급히 휘몰아치라는 신호요. 이 신호대로하지 않으면 우리가 패한다는것을 뼈에 새기시오.》

《알았소이다.》

의병과 승병이 힘차게 대답하고 옥천고을에 휘날렸던 령기들을 의병은 조헌의병장에게, 승병은 령규승병장에게 바치였다.

《그러면 여기서 밥을 먹고 급히 돌아가오.》

《알았소이다.》

두 사람이 초막밖을 나섰다. 의병은 바위옆에 서있는 효숙이를 보더니 초막앞으로 다시 돌아섰다.

《의병장님, 옥천고을 차효숙이라는 처녀가 의병에 들겠다고 찾아왔소이다. 완기선봉장이 우리와 함께 그를 보냈소이다.》

《응, 차효숙이?!》

조헌의병장은 초막을 나왔다.

효숙은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만나는것처럼 조헌의병장앞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였다.

《나리님, 차효숙이 문안드리나이다. 저도 의병에 들겠사옵니다.》

《아니, 네가 삼녀의 어깨동무 효숙이로구나. 아, 이런 반가운 일이라구야.》

조헌의병장은 온 얼굴에 가득히 웃음을 피워올리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때마침 삼녀가 의병장의 끼식을 담은 도시락을 들고오다가 효숙을 보고 너무도 반가와 《효숙아-》하고 그를 얼싸안았다.

차효숙을 데리고왔던 의병이 이 소식을 해동에게 알려주어서 그도 달려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정말 효숙이구나.》

해동의 두눈은 놀라움과 기쁨이 한꺼번에 비껴들어 숯불처럼 불타올랐다.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내린것만 같은 사랑하는 처녀를 한동안 넋없이 바라보았다.

《효숙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어, 응?》

《해동오빠, 저두 의병대에 들려고…》

효숙은 해동이를 만나는 기쁨과 행복에 눈물을 흘리였다.

조헌의병장은 해동이와 효숙이의 혼례를 치르어주지 못하여 애쓰던 안해가 생각나서 온몸이 저려왔다. 이제 싸움에서 이기고 저들의 가정을 무어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그의 눈물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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