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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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건은 접은 편지를 서둘러 펼쳐들었다.
《성남동무, 그간 무고했나? 집에서랑은 다 잘 있는지. 우리가 서로 만난지는 오래지 않았건만 왜 그런지 만나고싶구만.》
가로세로 뛰여넘어 읽던 그의 눈길은 여기서 멎었다.
《우리는 현재 많은것을 해제꼈네.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요. 그게 뭔가하문 우선은 가열로련동시험 모의프로그람을 아직 만들지 못한거네. 여기서는 김책공대의 젊은 수재들도 바빠하는데 나같은 구새먹은 놈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나. 난 그저 그들에게서 재교육을 받다싶이 하면서 그들의 기술을 습득하고있는데 모의프로그람작성에서는 뻐꾹소리 한마디 삐치지 못하지. 그 동무들이 작성하고난 다음에나 배우게 되겠는지.
두번째 골치거리는 새 가열로를 다룰수 있는 기술자, 기능공양성이지. 김책공업종합대학동무들은 가열로를 돌리고나서는 떠나겠지? 이후에는 우리가 가열로를 다루어야겠는데 야단이 아닌가. 아닌게아니라 구형가열로만 다루던 직장기능공들이 뒤에서 벌써 수군수군하며 막연해하는구만.
나이많은 축들은 새 가열로가 돌아가게 되면 낡은 기능을 가진 자기네는 필요없게 될거라며 이제라도 사직하는게 현명한 일이라고들 하고있소. 그 소릴 들을 때면 욕사발을 하고싶은데 내 무슨 자격으로 그런단 말이요. 그들에게 공정별기술기능전습을 일일이 해주어야 할 내자체가 겨우 새 가열로의 가나다라를 익히는 처지가 아닌가.
내 그래 각오를 모질게 먹고 김책공대동무들에게서 배우네만 역시 나이는 속이지 못하겠소. 그 동무들은 내가 년세에 비해 소화속도가 빠르다고 칭찬하는데 이건 다 나를 위로하는것이고.
자체위안과 푸념은 그만합세. 성남동무가 늘 내게 반진반롱담을 했듯이 무슨 일이나 지꿎게 파고들어 끝장을 보고야마는 함경도기질이 빠지지 않았으니까 난 해낼거네.
성남동무가 부탁한 고온공기연소기술설계도면을 보내네. 황철의 고온공기와는 다르지만 참고는 충분히 될걸세. 집의 아주머니에게 내 인사를 전해주게. 산소열법의 성공을 머나먼 북변 대김철의 채호명이 목마르게 기다린다는것을 잊지 말게.
…》
(대김철, 대김철, 그쪽사람들은 언제봐야 체통자랑이거던. 그저 젠체한다니까.)
김중건은 속으로 두덜거리였다.
《총설계도면을 보니 어떻습디까?》
김중건은 편지를 접어 성남에게 넘겨주었다. 성남아바이가 함승일이에게 몇번이고 왔다갔다하더니 끝내 설계도를 가져왔던것이다.
《함승일이 그 사람 아까운 사람이요. 병치료를 하며 황철을 잊었는가 했더니 그새 일을 했소. 5평방식에 있던 부족점들을 많이 찾아냈소.》
《다행이군요.》
《건 무슨 말씀이요?》
《그저 그렇다는거지요. 몸이 크게 추서지 못했다니 우리가 돌봐줍시다. 내 정양소장더러 뭘 좀 싣고가라고 장연에 보내겠습니다. 참, 그리고 순천동무들은 뭐라고 합니까?》
순천의 어느한 기업소에서도 산소열법을 리용한 어떤 일을 벌려놓고있었다. 그래서 김중건은 성남에게 그들과 련계를 가지고 경험을 교환해보라고 하였었다.
《대번에 퇴를 놓더군요. 순천과 황철방식이 다르기때문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지.》
《그래요?! 성남아바이두 같은 생각이겠지요?》
《그야 물론이지요. 내키지 않았지만 지배인동무가 곡진하게 말씀했길래 그 동무들과 얘기해봤는데 기분이 상하더군요.
저들이야 사실 우리보담 산소열법을 썩 후에 시작하지 않았소. 우리에게서 배워간 사람들이 오금이 떴다구 배를 내미는데 우리라구 왜서 자존심을 버리겠소. 뭐 그네들이 없다구 우리네 산소열법이 빛을 못보겠소.
이건 나뿐아니라 우리 설계집단전체의 주장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좀더 진지하게 의논할걸 그랬습니다. 경험을 교환하면 서로가 좋겠는데.》
김중건은 엉치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하여간 함승일동무의 총설계도면이 도착한 이상 그걸로 성남아바이도면을 마저 보충해서 빨리 다그칩시다.》
이때 김중건은 컴컴하게 질린 성남의 얼굴이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듯 그의 입이 우물거리고있다는것을 보지 못하였다.
만일 기동선동대처녀들의 대렬이 지나가고 그뒤를 따라 방송선전차가 느리게 움직이며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성남의 입에서 불같은 지탄이 쏟아져나왔을것이다.
×
가늘게 내리던 비는 점점 발이 굵어지더니 이내 폭우로 변하였다. 비가 어찌나 세차게 내리는지 오가는 인총이며 차들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 시창밖은 시뿌연 비장막이 드리웠고 길가의 나무들은 나붓기는 녀자의 머리칼처럼 온통 가지들을 여기저기로 흩날리며 자연의 광란에 시달리는 괴로움을 호소하고있었다.
락연까지는 그럭저럭 달렸으나 함승일이 살고있다는 산천리로 들어가는 도로는 그닥 좋지 않았다. 그런대로 신고를 하며 거의다 도착했는데 산천리를 눈앞에 놓고 차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산골물이 갑자기 불어나는 바람에 그리 크지 않은 개울이 급류가 되여 길을 막았던것이다. 차에서 내린 김중건은 운전사와 함께 여울목을 찾아 오르내리였다. 퍽 시간을 들여 겨우 찾았는데 비발이 가늘어지더니 어느새 하늘은 언제 그랬던가싶게 활짝 개이는것이였다.
군산림경영소 산리용반에 다니는 연고로 함승일이네 집은 인가와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잣나무숲을 등에 지고 약간 둔덕진 곳에 큼직하게 자리잡은 그의 집을 눈여겨보며 김중건은 차를 세우게 했다.
갑자기 큰 비가 왔는데도 달구지길이며 승일이네 집으로 올라가는 길은 석비레를 깔아놓아 걷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둔덕을 올라 대문을 열고 들어선 김중건은 마당을 휘둘러보며 연신 혀를 찼다. 퍼그나 넓은 마당에 돼지며 닭, 오리, 게사니들이 왁왁 밀려다니며 제 할짓을 하고있었다. 왼켠에는 토끼사가 있었는데 어림짐작을 해보니 70~80여마리는 얼마든지 기를수 있는것이였다.
(성미 엄마가 여기 와서 성공했구만.)
성미 엄마란 평성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고 황철 후방부 축산기지 기사로 배치받아 무엇인가 일을 해보려고 시도를 많이 했던 함승일의 처였다.
김중건이 자기를 잊고 두리번거리고있는데 정지문이 열리며 《누구신가요?》 하는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지배인동지가 우리 집엘 다.》
함승일의 처가 방안에 대고 소리치다싶이 한다.
《여보 성미 아버지, 지배인동지가 오셨어요, 지배인동지가요.》
《이 산골에 지배인은 무슨 지배인. 길 물어보는 사람이겠지. 빨리 대주고 들어와 하던 일이나 마저 하기요.》
《아, 지배인동지가 오셨다는데두요. 김중건동지 말이예요.》
《뭐, 중건지배인이?》
김중건은 퇴지돌밑에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속내의바람의 함승일이 몸을 드러내였다. 둘은 잠시 말없이 마주보았다. 중건이앞에는 황철을 떠나겠다고 선언할 당시의 얼굴빛이 누렇고 여윌대로 여윈 함승일이 아니라 혈색이 돌고 체집이 단단해진 사람이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