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7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7 장

대지에 피로 쓴 상소문

1

(2)

 

그날밤 그들은 그 계책으로 왜놈들을 무자비하게 족쳐버리였다.

날이 훤히 밝아오고 아침노을이 산야에 비껴올 때 옥천관가의 지붕우에 충청도의병대 령기와 충청도승병대의 령기가 나란히 휘날리였다.

이 기발들을 이틀간 띄워놓고는 금산의 적들이 조헌의병대와 령규승병대가 옥천에 짓쳐나왔다고 알게 해야 하였다. 그리고는 조계산으로 감쪽같이 빠져나가야 한다.

그는 의병들과 승병들에게 왜놈들의 병쟁기들을 거두게 하고 또 놈들의 군량미를 터쳐서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하였다.

완기는 야장간의 군량미를 받으러 온 효숙이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효숙이가 왔네그려. 네가 혼자서 쌀을 다 가져가겠나?》

《도련님, 걱정마소이다. 호호호. 그런데 해동오빤 왜 보이지 않소이까?》

《해동이는 다른 일로 오지 못했다. 보고싶냐?》

《예.》

효숙이는 매우 활달하게 대답하면서 밝게 웃었다.

완기는 효숙이를 잘 안다. 삼녀와 어렸을 때부터 소꿉놀이를 함께 하고 처녀로 자라서는 삼녀와 함께 산에 올라 산나물도 뜯었고 밭김도 맸다. 그 나날에 효숙은 해동이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였다.

어느해인가 고을원의 말구종으로 관가에 매여살던 효숙이 아버지는 말을 풀판에 놓아먹이면서 꼴을 베다가 뜻밖에 말을 도적맞혔다.

《이놈, 네놈이 언감생심 말을 팔아먹었고나. 도적이 도적이야 한다더니 그 말 그른데 없다. 당장 말을 찾아내지 못할테면 말값을 내놓아라.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을 때에는 목을 칠테다!》

효숙의 집에서는 말값을 낼 힘이 없었다. 아버지는 옥에 붙잡혀들어가서 형장아래 곤죽이 되여 생명이 위급해졌다. 효숙이는 고을에 사는 강부자집에 부엌데기로 들어가 삼년석달을 살기로 하고 선돈을 받아 아버지를 구원하였다. 욕심많고 린색한 강부자는 삼년이 지나고 또 한해가 흘러갔지만 효숙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신씨부인이 해동이와 효숙의 관계를 알고 효숙의 몸값을 물어주고 해동이와 혼례를 치르어주려다가 세상을 떠나고 그뒤에는 왜란이 터졌던것이다.

강부자는 피난하면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늙은 머슴군과 함께 집을 돌봐주면 그날로 효숙이를 돌려보내겠다고 하였다. 효숙은 약속대로 그 집에 눌러있을수밖에 없었다. 했더니 이번에 왜놈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야장간이 있는 옥계동산속에 들어가 피신해있었다.

《도련님, 소녀도 의병대에 들겠소이다. 삼녀도 의병대에 들어갔는데 제가 왜 못들어가오이까. 처음에 해동오빠를 따라 의병대에 들려고 하였었는데 강부자가 놓아주지 않아서 못따라갔었소이다. 이번엔 의병에 들겠나이다. 해동오빠두 제가 의병에 들면 기뻐하리다.》

《암, 기뻐하구말구. 해동이가 얼마전에 여기 왔더랬다. 우리 어머님묘를 해치려던 놈들을 다 죽여버리고 무사히 돌아왔지.》

효숙의 두눈이 기쁨으로 반짝이였다.

《저두 그 소문을 들었었는데 해동오빠가 장한 일을 하고 돌아간 줄은 전혀 몰랐소이다. 그런데 나를 만나지도 않구 어찌 그대로 돌아갈수 있겠소이까. 도련님은 해동오빠를 가만두셨소이까. 혼쌀을 내주지 않으시구.》

효숙이는 나무람을 타듯이 새침하니 눈을 내리깔았다.

《하하하, 왜 혼쌀을 내주지 않았을고. 욕을 좀 했더니 해동이는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했네.》

《호호, 그러면 되였소이다. 소녀는 이번에 꼭 의병대에 들겠소이다.》

《허 그러니깐 효숙이는 제가 벌써 의병노릇을 하고있는줄 모르고있구만, 응?》

《소녀가?! 제가 언제 의병…》

효숙이는 속눈섭이 긴 두눈을 깜박이며 완기를 바라보았다.

《효숙이가 의병들의 야장간에서 의병들과 함께 일도 하고 때식도 끓여주고있으니 그게 의병이지 다른게 의병이냐.》

《아, 그래서?! 고맙소이다, 소녀를 의병이라고 불러주어서. 그런데 같은 값이면 해동오빠곁에서의 병노릇을 하고싶소이다.》

《하하… 그래라. 우리가 여기를 떠날 때 효숙이를 데리고 갈게.》

효숙은 《아이 좋아라.》하고 방긋이 웃으며 쌀을 받으려 새처럼 날래게 관가의 곡간으로 들어갔다.

옥천관가의 지붕우에 《충청의병대》의 령기와 《충청승병대》의 기발이 이틀동안 나란히 휘날리였다.

이번 옥천싸움에서 의병들과 승병의병대는 큰 승리를 떨치였다. 로획물도 많았다. 조총이 50여정, 화약과 철알 각각 20여근이 되였다. 말 세필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완기는 관가의 지붕우에서 휘날리던 기발을 내리워가지고 전체 기병대를 이끌어 은밀히 조계산으로 빠져나갔다.

그 대오속에는 남복을 하고 말을 탄 효숙이도 있었다. 효숙이는 아버지가 말구종을 한 덕에 말을 조금 탈줄 알았는데 이악하게 마음을 다잡고 말을 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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