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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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락원기계련합기업소(당시)정문을 빠져나온 차는 평양으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서자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다.

김중건은 기분이 울적하였다. 큰 기대를 안고 오른 출장길이였는데 랑패를 본것이다. 어느것 하나 제대로 된것이 없었다. 팽창기복구인원은 황철에 와야 오는가부다 하고 생각해야 했고 산소압축기를 해결할수 있는 희망은 물거품처럼 되여버렸다. 페기처분한 문형기중기며 산소관들을 이관받으려고 점심식사도 잊은채 오후내껏 여러곳을 다녔건만 이렇다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진성기계공장에 갔다가 회의간 지배인을 기다려 공장앞공원 의자에 앉아 졸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김책공업종합대학에 갔던 일은 잘되였는가.

김중건은 낮에 고경달박사를 만났던 일이 생각히워 쓴입을 몇번이나 다시였다. 중건의 설명을 듣고난 박사는 의아쩍어하며 그야 함승일동무가 있지 않는가고 하며 반문하는것이였다. 사연을 터놓자 그는 알만하다, 한데 교원, 연구사는 물론 박사원생들까지 중요개건현대화대상에 파견되였으므로 현재 대학에는 황철에 보낼 두뇌진력량이 없는것이나 마찬가지라는것, 내가 갈수는 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방조자역할밖에 못한다는것, 그러니 좀 고생하더라도 자기 기술자들의 힘에 의거하는 방법이 제일 믿음직하고 빠른 길이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참으로 모든것이 난감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지였다.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던 김중건은 등받이에 뒤머리를 기대였다. 졸음이 오기도 했거니와 아무리 생각을 굴려봐도 방도가 짚이지 않았던것이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는지. … 눈을 뜬 김중건은 기지개를 하고나서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연신 지나치는 가로수며 그너머로 보이는 산발들이 천천히 비껴가고있었다.

김중건은 갑자기 속이 몹시 출출해났다. 그러고보면 점심식사를 건늬였고 저녁식사시간도 한참이나 지났다. 운전사에게 저으기 미안했다. 지배인이 식사를 잊고 다니면 운전사 역시 굶어다닌다. 이런것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어둑어둑해날 때까지 돌아다녔으니 나를 속으로 원망하였을것이다.

《밥먹구 가자구.》

《정주에 우리 사촌형네가 살고있는데 거기 가서 합시다.》

어딘가 모르게 불만이 약간 섞인듯한 말투다.

《밤중에 들어가 언제 불살리구 밥 끓여먹겠어. 그럴 시간이 없어. 오늘 밤중으로 기업소에 들어가야 돼.》

《…》

《거 뭐 여기 어데 맞춤한 장소에서 하면 되겠구만. 달빛이 환하잖아. 그렇게 하자구. 배고파서 더 못가겠어.》

운전사가 웃는것같았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다.

《15분정도면 정주 들어섭니다. 더운 밥을 해야지 속탈이 있지 않습니까.》

《괜찮아. 제꺽 조막불 피워놓구 덥혀먹으면 돼.》

승용차는 몇분정도 달리다가 길옆의 공지에 멈춰섰다.

《좋구만 뭐, 시내물도 있고.》

김중건은 한껏 들이킨 서늘한 밤공기를 내뿜으며 크게 기지개를 하였다.

《제 신발을 신으십시오.》

운전사의 권고에 김중건은 맨발을 내려다보며 피씩 웃었다.

《괜찮아. 시원하기만 하다.》

《그러지 마십시오. 보기가 막 민망스럽습니다.》

《아, 일없다는데. 여 경일이, 내 암만 머릴 굴려봐야 틀림없이 그놈 개가 물어간것같애.》

《글쎄 저도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놈을 봤는데 언제 날쌔게 해치웠는지.》

《그놈 우스운 놈이군. 땀내나는 낡은 신발인데 그게 먹을거 되나. 일이 안되니까 개까지 달라붙어 괴롭히는구나.》

《허나새나 돼지가죽신발이 아닙니까. 자, 받으십시오.》

《됐다니까. 거 실내화나 달라우. 외려 시원한거 그게 나아.》

김중건은 운전사가 내미는 손을 밀막으며 그가 신은 실내화를 가리켰다.

시내에 내려가 얼추 세면을 하고 올라오니 어느새 나무가지를 주어왔는지 소담한 조막불이 타올랐다.

부시럭거리며 밥곽을 헤치던 애젊은 운전사가 머리를 기웃기웃한다.

《왜 그래?》

김중건은 밥곽을 끄당겨 냄새를 맡아보았다. 시큼한 냄새가 진하게 풍기였다.

《이런 랑패 봤나. 어쩐다?! 경일이, 차에 먹을거 아무거나 없어?》

밥이 쉰것이 자기탓인듯이 어쩔바를 모르던 운전사가 활기를 띠였다.

《사탕 반봉지 하고 생고구마가 좀 있습니다.》

《웬 고구마나?》

《요전번에 전망설계연구소에 가니 림성남아바이가 기술자들에게 공급된것이라면서 몇알 맛보라구 준겁니다.》

《속담에 닭대신 메추리라구 했던가? 에이, 모르겠다. 빨리 굽기나 하자.》

김중건은 손벽을 쳤다.

《나무를 더 넣자우. 불땀좋아야 잘 익어.》

어느새 구웠고 어느새 먹어치웠는지. … 김중건은 그래도 시장기가 났다. 그래서 사탕 댓알을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으며 샘물 한병을 다 마시고나서야 무릎을 폈다.

《자, 이젠 신바람나게 달려보자우.》

김중건은 불자리를 정리하는 운전사를 재촉하고나서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그때 저쪽 산굽이에서 여러대나 되는 승용차행렬이 나타났다. 행렬은 이내 달려왔고 맹렬한 그 속도로 김중건이네를 지나쳐 내달려갔다. 김중건은 너무도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여서 행렬이 사라진쪽을 향해 얼떠름해 서있었다.

(이 깊은 밤중에 무슨 차행렬일가. 도당일군들인가? 아니면 내각일군들?)

김중건은 피씩 웃었다. 제스스로의 어리석은 추측에 웃었고 쓸데없는 관심에 웃었다.

그런데 몇분이 지나 행렬이 사라진쪽에서 한대의 승용차가 달려오는것이였다. 차는 김중건이네 가까이에서 멎어섰다. 차문이 열리더니 낯모를 고급군관이 내리는것이였다. 얼굴이며 몸이 우둥퉁하고 전투모에 혁띠를 바싹 졸라맨 그는 중건에게로 다가와 단마디로 물었다.

《황해제철련합기업소 지배인 김중건동무가 맞습니까?》

《예. 제 황철지배인 김중건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무를 부르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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