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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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뒤를 이어 무대에 나선 신정, 대형액정현시판대신 두사람이 올라와 분주히 설치해놓은 걸개, 40페지분량에 한평방만한 크기의 설계도면을 넘기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허나 시간이 흐를수록 객석은 신정과 멀어지고있었다. 청취자들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떠오르고있었고 객석 어느 구석에선가는 하품소리마저 들리는듯싶었다.

등골을 적시는 땀줄기를 의식하며 마지막까지 인내심을 발휘하여 설명을 마쳤으나 동정과 련민에 찬 몇몇의 시선과 성의없는 박수를 받았을뿐이였다.

(정철동지!)

신정은 사랑하는 애인에게 괴롭게 속삭였다.

(저는 아무래도 우리의것을 포기해야 할가봐요. 사실 전형규동무네 방안에도 홀시하면 치명적일수 있는 빈구석이 있다는것을 륙감적으로 찾아보았어요. 그래도 그들의 방안은 우릴 압도하는군요. 우리 방식과는 정반대방향에서 시작한 방안이더군요. 이제 와서까지 그네들의 주장을 외면하고 반대한다는것은 과학자로서 량심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저를 리해해주시겠지요, 네? 정철동지.)

이제는 눈물도, 아픔도, 어떤 각오도 어디로 잦아들어버렸는지. 신정은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싶었고 어머니가 못견디게 보고싶었다.

김철의 하늘가에 12시를 알리는 정답고도 귀익은 코멘 고동소리가 울려온다.

신정은 그만에야 허탈이 온 사람처럼 앞의자등받이에 손을 얹고 그우에 얼굴을 묻었다. 무엇도 생각하고싶지 않은 체념에 처녀는 아까부터 품속에서 부지런히 찾는 전화기호출음을 듣지 못하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2강철영양제식당은 붐비군 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영양제식당은 2강철직장의것인데 정원이 작아 자기 식당을 못가지고있거나 혹은 한창 건설중인 여러 직장들 특히 전기자동화직장과 강괴관리직장, 열간압연직장들이 더부살이를 하기때문이였다.

영양제식당이라고 해서 뿔빠진 음식을 내놓는것은 아니다. 두부 반모와 콩우유 한고뿌, 우에 기름이 한벌 덮인 시래기국과 염장김치가 전부이다.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밥곽도 마찬가지였다. 백미에 강냉이쌀이 반반씩 섞인것이 제일 고급이였고 통강냉이밥, 시래기밥에 삶은 감자 예닐곱알을 싸온 사람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못싸오는 사람이 혹간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다들 펴놓고 품평회를 했으며 한술씩 덜어 서로 나누며 웃고 떠들군 했다. 하기야 고난의 행군때에는 이보다 더 거치른 음식을 들면서도 웃고 떠들며 할 일은 다했으니까. 이날도 여느날과 다름없었다.

《하, 이거 봐라. 북문(제철지구이다.)에서 도는 소문에 남문에선 여기가 제일 흥성인다 해서 와보니 과히 틀림이 없군.》

오늘은 8시 20분모양의 눈섭에 인중을 중심으로 왼쪽켠은 다 은색틀이를 한 3호용광로 2작업반장 강창길이 군데군데 점토가 묻은 용해공복을 입은채로 척 들어서며 한마디 던진다.

그는 사람들이 여러개의 식탁을 한데 모아붙이고 밥을 펴놓는다, 국과 영양제음식을 타온다 등 부산이 잦은 다음 의자를 하나 들어 비위살좋게 비집고들어간다.

《어디 좀 보자.》

강창길은 제잡담하고 이 밥곽, 저 밥곽 끄당겨 칭찬을 하고 평가를 했으며 《흉》을 보기도 한다.

《이건 왜 볼썽사납게 한쪽으로 쏠렸나. 어찌나 골숨하게 담았는지 한번만 더 들추면 녹아붙겠다. 야 수만아, 밥곽이 무슨 너네 전로인줄 아니? 이것만 봐두 너 확실히 제 아낙네하구 정치를 잘못한다.

우순동무네 음식이 괜찮다. 감자가 잘 익었소. 오늘 아침에 우리 교대가 쇠물을 이 감자처럼 잘 익혔다이.

가만- 이건 준희동무가 싸준건가. 준철아. 너네 누나 이렇게밖에 못해주니. 이게 뭐야? 제 남편한테 해주는걸 한번 먹어보니 맛있던데 막내동생한테 해준건 개판이다. 에참, 내 총각적에 준희동무하구 말이 있었을 때 단호하게 자른것이 현명했지.》

《체, 제가 채우구선.》

준철이라고 부르는 애숭이총각이 그의 손에서 밥곽을 앗아들며 코웃음을 친다.

《됐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구 밥이나 빨리 먹기요. 아, 근데 밥이나 싸왔소?》

약간 주춤거리는 창길이다.

우순이라는 사람이 눈여겨보다가 한마디 시까스른다.

《우리 한술씩 덜어줍세. 저 사람 오늘은 궁바가지야. 아침부터 정식로장한테서 욕이나 배부르게 먹구 쫓겨다니는 주제에 밥이 어디 있겠다구.》

웃음판이 한바탕 터졌다. 일리가 있는 우순의 롱담이였다. 어제 후야근에 나와서 창길은 광재길담당공아바이가 몸이 불편해하여 그 일까지 맡아하였다. 출선준비를 마무리짓고 휴계실에 올라와 담배를 피우며 깜박 졸다가 벽력같은 소리에 놀라 내려가보니 정식로장이 광재구앞에 서있었다. 출선을 앞두고 먼저 광재구를 뚫러놓아야 하는데 어떻게 된셈인지 막혀버렸던것이였다.

소동이 일어났고 정식로장이 직접 나서서 신고를 해서야 바로잡을수 있었다. 큰 사고는 아니였으나 강창길은 정식로장에게서 태여나 처음으로 엄하고 아프디아픈 온갖 욕설을 고스란히 먹게 되였다.

《이놈, 반장이라는 놈이 부반장한테 일을 맡겨놓고 전 피곤하다구 자? 요즘 쇠물이 뭐 아무거나 막 처넣어서 끓여도 되는 돼지물인줄 아니? 이놈의 자식, 네놈이 오늘 뽑은 쇠물이 어떤 모양새로 변해버렸는가를 네 눈으로 확인해가지구와서 보고해라.》

한생 불에 그슬려 눈섭자리마저 번번한 정식로장이 어찌나 노성을 질렀는지 창길은 이런 욕설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를 도망쳐버렸다. 1강철직장의 각강질과 색갈을 확인하고 2강철에 넘어와 그 일을 하던중에 점심시간이 되여 여기에 나타난 그였다.

웃음이 잦아들자 창길이 들고온 구럭지에서 2k는 실히 될 인조고기퉁구리들을 꺼내 식탁우에 놓는다.

《우순동무, 준철이, 까불지들 말라구. 없긴 뭐가 없어. 이런거문 되지.》

역시 우순이나 준철이 뭐라 하든 낯색 하나 변하지 않는 강창길이였다. 그는 배식구쪽에 대고 소리쳤다.

《순애!- 순애아주마이, 거 여기 들여옵소.》

불룩한 배에 랭기가 가득 내돋은 50들이맥주통이 식탁우에 놓이자 이번에는 창길반장에 대한 찬사로 떠들썩했다.

얼마쯤 지나서야 맨 구석식탁에 있는 채호명을 띠여본 창길은 반색을 하며 맥주 한사발을 퍼들고 다가온다.

《마침입니다. 오후에 강괴관리하구 열간압연에 가야 하는데 호명아바이, 잘 봐줍소.》

《나도 알아. 일없을거네. 하지만 정식령감 말 아프게 들으라구. 교훈으로 삼아야 해.》

강창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났다. 그는 식탁우에 놓인 4단짜리 밥통과 그옆의 아름되는 보따리를 일별하더니 묻는것이였다.

《근데 식산 왜 안하오?》

《응, 누굴 기다리는데 어디 와야지.》

《오전에 고온공기연소기술토론을 했다면서요?》

《…》

《물론 정철실장에게 통과되였겠지요?》

호명은 애매한 끄덕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무래도 리해가 안되는지 강창길은 더 묻지 않고 돌아가버린다.

호명은 섭섭했다. 심의가 끝난 즉시 그는 로친네에게 사람을 띄워 댓명분식사를 푸짐하게 준비해서 가져오라고 일렀다. 김형규네며 신정이들, 열관리부기사장 정구철이들을 대접하고싶었던것이였다.

로친네와 함께 영양제식당에 가져다놓고 전화를 거니 정구철은 시간이 없수다라는 한마디였다. 신정을 찾아보니 신호는 가는데 웬일인지 받지 않고있었다.

김형규는 고맙다는것, 자기넨 이미 식사를 하고난 뒤라는것 그리고 오고싶어도 데리고온 박사원생들이 학위론문준비를 해야 하므로 그들을 바래주러 청진역에 와있다는 대답이였다.

어쩌겠는가. 다들 사정이 있는데. 호명은 꼬리를 물고 갈마드는 섭섭한 생각을 애써 물리치며 식탁우의것들을 모아들었다. 그리고는 배식구에 다가가 로친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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