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6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4
(2)
김갑석은 청주성밖마을의 우물에서 물을 긷고있는 할머니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물었다.
《할머니, 의병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시오이까?》
할머니는 쪼글쪼글한 얼굴을 들고 갑석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석이가 순박해보였던지 이가 다 빠진 호물때기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을 담았다.
《젊은이도 의병에 들려고 하나?》
《예 그렇소이다, 할머님.》
《우리 손자도 의병을 따라갔는데 아산으로 간다고 하더구만.》
김갑석은 할머니앞에 허리를 깊숙이 굽혀서 절을 하였다.
《고맙소이다, 할머님.》
그는 그길로 아산을 향해 거의나 달음박질하듯이 걸어갔다. 하루낮 하루밤을 지나서 천안고개에 올라 잠시 다리쉼을 할 때였다. 고개아래서 세 젊은이가 각기 말 하나씩을 끌고 오르는데 말잔등엔 무엇인가 실려있었다.
갑석이는 맨앞에서 오는 사람이 낯이 익어보여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해처럼 얼굴이 둥실둥실한데다가 언제나 낯이 밝아서 제이름이 해동이라던 젊은이, 옥천지경 성쌓기공사장에서 돌에 치워 다죽게 된 자기를 들것에 실어 집으로 데려온 젊은이! 조헌나리님과 함께 나를 살려내느라고 사흘낮, 사흘밤을 지새우던 그 해동이로구나!
갑석은 벌떡 일어나 《해동도련님 아니시오?!》 하고 달려나갔다. 갑석이는 해동이가 조헌나리님에게 《
해동이는 처음엔 누구인지 몰라하다가 이내 두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니, 갑석형님이시구려.》 하면서 말고삐를 내던지고 갑석이를 부둥켜안았다.
《여보게들, 여기서 잠간 쉬고가세.》
해동이는 함께 가는 두사람에게 말하고 갑석이를 이끌어 소나무그늘아래 앉았다.
《내가 지금 조헌나리님을 급히 뵈울 일이 있어 그러는데 나리님이 어디에 계시오이까?》
《그게 무슨 일인데?》
해동이는 놀라서 갑석이를 지숙히 바라보았다.
갑석이는 해동에게 자기가 이 걸음을 하게 된 사연을 소곤소곤 귀속말로 들려주었다.
해동이는 깜짝 놀라 분연히 주먹을 꽉 부르쥐였다.
《여보게들, 의병장님께 급히 알려야 할 일이 생겼네. 어서 되돌아가야겠네.》
…
해동이네들이 갑석이를 데리고 조헌의병장의 초막앞에 도착하였을 때는 새벽녘이였다. 초막안에서 불빛이 새여나왔다.
조헌의병장이 벌써 일어나 초불을 밝히고 일을 보고있는것이다.
그는 수백명의 끌끌한 의병들을 윤선각이 강권으로 빼앗아간탓에 700여명밖에 남지 않은 의병들을 이끌고 여기 아산으로 진영을 옮기였다.
그가 여기를 택한것은 자기의 옛 스승이였던 토정 리지함(1517-1578)이 늘그막에 고을원을 지냈던 곳이기때문이였다. 리지함은 학식이 풍부하고 청렴고결하였다. 어느 한때에는 가난한 백성들이 사는 한성 마포강변동막부근에서 백성들처럼 토굴집에서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토정선생으로 불렀다. 그것이 그의 별호가 되였었다.
리지함은 아산현감으로 부임하였을 때 이전 고을원이 살던 좋은 집으로 이사하지 않고 백성들과 다름없는 집에서 살면서 아전들이 온갖 사기협잡으로 백성들의 피땀을 짜내는것을 용서치 않았다.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들의 배를 채워주고 례의와 렴치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의리와 충의로 임금을 받들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장한 뜻으로 교화하였다. 그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후에는 나라의 실록청에서도 력사기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1578년 계유일에 아산현감 리지함이 죽었다. 그는 마음씨가 깨끗하고 욕심이 없으며 재주와 학식이 뛰여났다.》
바로 이런 리지함이 다스리던 곳이여서 고을풍속이 좋고 지반이 좋아서 다른 지역보다 의병대의 군량을 마련하기가 조금이나마 헐할것이였다. 또 아산지경에는 대나무숲이 많아서 화살감을 넉넉히 취할수 있었다.
조헌의병장은 여기서 싸움준비를 든든히 갖춘 다음 임금을 호위하려 북으로 떠날 결심을 굳히였다. 령규승병장도 이에 호응하여 승병대를 이끌고 함께 왔다.
조헌의병장은 바로 어제 아침에 그동안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서 마련한 화살대감 수천개를 해동이네들에게 주어서 옥천의 옥계동과 계곡동의 야장간에 실어보내고 올 때에는 다 만들어낸 화살과 마름쇠를 실어오도록 하였었다.
헌데 그들이 되돌아올줄은 모르고있었다.
해동이는 헛기침을 두어번하여 인기척을 낸 다음 초막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에 해동이는 밖으로 나와서 김갑석을 데리고 다시 들어갔다.
조헌의병장은 초불을 들어 김갑석을 비쳐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못내 반가와하였다.
《갑석이로구만, 응? 이 사람 갑석이!》
그는 갑석의 어깨를 그러안으며 그의 팔을 쓰다듬어내리였다.
《지난해 다쳤던 팔은 일없나?》
갑석이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그자리에 무너지듯 엎드리였다.
《나리님, 소인 김갑석이 문안드리옵니다. 지난해 성쌓기공사장에서 돌에 치워 다 죽었던 이놈이 나리님덕분에 살아났지만 사람구실을 못하와 죽을죄를 지었소이다.》 하고 흐느끼였다.
《원, 별소릴 다. 자, 진정하게.》
조헌은 그때 윤선각관찰사와 그의 비장 하교남이 돌에 치워죽게 된 사람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성을 쌓으라고 채찍질을 휘둘러대던 일이 방불히 떠올랐다. 그때 그는 비장을 쳐내깔리고 갑석을 저의 집에 데려다 눕히고 돌봐주었었다.
김갑석은 여전히 엎드린채로 자기의 죄를 그대로 쏟아놓았다.
《이놈은 근 한달가까이 왜옷을 입고 짐군노릇을 하였소이다. 배은망덕한 이놈을 죽여주시옵소서.》
《허허, 임자가 제 잘못을 알고 이렇게 의병대를 찾아왔으니 장한 일을 한셈일세. 옛날부터 착한 일 한가지를 보고 그의 백가지 잘못을 잊어준다고 하지 않나. 자, 어서 일어나게.》
김갑석은 눈물을 씻고 자기의 지난날에 있었던 일과 청주성을 빼앗기고 금산으로 도망쳐온 적장 고바야까와의 흉계를 다 이야기하였다.
조헌의병장은 다박수염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순간에 터져오르는 분격을 참아내느라고 모지름을 썼다.
날이 훤히 밝아왔다.
조헌의병장은 평소의 침착성을 되찾았다. 그는 위장들을 모두 불러들이였다. 그리고 각 위장들을 모이게 한 리유를 밝히고 고바야까와의 흉계를 알려주었다.
위장들은 너무나 격분하여 치를 떨었다. 완기와 덕보는 놈들을 당장 쳐죽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새까맣게 탔다.
조헌의병장은 사람들의 흥분을 눅잦혀주면서 침착하게 말하였다.
《김갑석이는 내가 잘 아는 사람이요. 나는 그의 말을 믿소. 왜놈들이 우리 집사람의 묘를 파헤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으로 청주를 빼앗긴 앙갚음을 하는데만 그치겠는가. 나는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소. 자, 의논들을 해봅시다.》
이윽하여 그들은 왜놈들의 교활한 술책에 어떻게 대처할것인가를 오래동안 의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