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5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4
(1)
금산고을 관가의 높은 돌담안에는 왜놈우두머리들이 둥지를 틀고있고 돌담밖에는 서너칸 떨어진 곳에 마구간이 있는데 왜놈들은 여기에 붙잡아온 조선사람들을 몰아넣고 밤에는 보초를 세웠다가 날이 밝으면 그들을 끌고다니면서 저들이 략탈한 쌀이며 재물들을 나르게 한다든가 혹은 우리 백성들의 논밭에 내몰아 낟알을 거두어들이도록 하였다.
김갑석은 깊은 밤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누구도 모르게 마구간에서 가만히 빠져나왔다. 그는 마구간 한쪽모퉁이에 붙어서서 주위를 살피였다. 어디에나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가까운 풀속에서 조우는듯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에는 반달이 구름에 가리워졌다 나졌다 하면서 구름속을 헤쳐나가고있었다.
그것은 마치 왜놈들의 무리속을 빠져나가려는 김갑석이 자기와 같이 생각되였다.
왜놈보초 두놈의 형체가 거무스레하게 보여왔다. 놈들이 꼼짝 않고있는것으로 보아 창을 세워 잡고 끄덕끄덕 졸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김갑석은 이 틈을 타서 소리없이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새벽이 푸름푸름 밝아올 때에는 벌써 금산성을 감쪽같이 넘어 10리나 넓게 펼쳐져있는 벌을 지나 진악산기슭에 들어섰고 해가 산마루에 올랐을 때에는 진악산북쪽변두리에 닿았다.
그는 입고있던 왜옷을 벗어 풀숲에 던지고 가슴에 품고있던 조선옷을 갈아입었다. 그 옷은 그가 왜놈들에게 붙잡혔을 때 입고있었던 베잠뱅이다. 마음이 거뜬해졌다. 뱀의 허울을 벗어던진것처럼 안도의 숨이 나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제부터는 왜놈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다. 왜놈들이 북으로 쳐들어갈 때 서쪽길로 잡은 지대였지만 금산을 거쳐 추풍령으로 해서 곧바로 청주성으로 기여들었기때문에 호남과 호서의 바다가고을과 백성들은 해를 입지 않았었다.
김갑석은 본래 옥천고을과 이웃한 회덕고을에 살았었다. 왜란이 터지기 전해인 지난해에 옥천-희덕사이 성을 쌓는 공사장에 내몰렸다가 돌에 치워 다 죽게 되였던 사람이다.
그때마침 성쌓기에 나왔던 조헌이 성의껏 돌봐주어 살아났다.
그후에 그는 살길을 찾아 가족을 이끌고 금산지경으로 이사하였다.
거기에는 그럭저럭 끼니를 대는 처가편이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일년도 못되여 왜란이 터지고 미처 피난할 사이도 없어 왜놈들의 손에 온 가족을 잃었다. 그
김갑석은 왜놈들과 사생결단할 강심을 먹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였다.
그는 며칠전에 조헌의병대가 왜놈들을 치고 청주성을 해방하였다는 가슴후련한 소문을 들었다. 뒤이어 청주성에서 살아남은 왜놈들이 금산성에 기여드는것을 보았다.
김갑석은 가슴이 들먹이였다. 마치
그런데 뜻밖에 그를 놀래우는 소문이 나돌았다. 왜놈들이 조헌의병장의 안해묘를 파헤치려 한다는것이다. 그리고 묘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큰상을 준다는 소문까지 겹쳐 나돌았다.
(아 아- 이 더러운 놈들이 못하는짓이 없구나. 청주성에서 녹아난 앙갚음을 이렇게도 추악하게 하려는구나.)
한시바삐 조헌의병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의병대를 찾아갈 결심이였는데 이런 소문까지 듣고보니 잠시도 지체할수 없었다. 그래서 갑석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왜놈의 소굴을 빠져나와 이렇게 급히 청주성으로 가고있는것이다.
왜놈들은 조헌의병장이 안해묘를 파헤친다는 소리를 들으면 분격하여 가만있지 않을것이라고 타산하고 그를 그곳으로 유인해서 없애치우려고 꾀하였다.
그랬었다. 적장 고바야까와는 이미 두번씩이나 조헌을 모살하려고 자객을 파했지만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하여 조헌의 손에 청주성을 빼앗기는 후과를 빚어냈다고 통탄하게 되였던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헌을 죽여버릴가. 금산성에 쫓겨와서 이 한가지생각으로 골머리를 싸쥐고있는데 꾀바른 부하장수 하나가 그의 귀에 손을 오그려붙이고 여사모사 하니 여사모사 하면 일이 되리라 하였다.
고바야까와는 귀가 번쩍 열렸다.
이리하여 패륜패덕한 놈들은 도깨비귀신까지도 생각지 못할 상상밖의 악착한 흉계를 짰던것이다.
고바야까와는 옥천일대에 기여들어 로략질을 하고있는 왜놈들에게 긴급명령을 떨구어 조헌의병장의 안해묘를 빨리 찾아내도록 하였다.
갑석의 다급한 마음은 배고픔도 잊게 하였고 잠도 잊게 하였다.
그는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서 이틀만에 청주성에 다달았다.
하지만 의병대는 이미 청주성을 떠난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