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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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참만에야 신정은 자기를 의식하고 눈물을 거두었다.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발길이 닿은 주변을 둘러보니 항구의 낯익은 부두가였다.

점심시간이여서 그런지 긴 팔을 쉼없이 빙글빙글 돌리며 상하선작업을 하던 항만기중기들의 동음도 잦아들고 분주스레 오가던 지게차며 사람들도 별반 없는 부두가에는 유정한 파도소리만 가락맞게 울리고있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가 저끝과 맞붙은 수평선에는 닻을 내린 몇척의 짐배가 굼니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한가스레 흥떡이고있었다.

신정은 어째서 스스로 이 부두가에 나오게 되였는지 알고있었다. 처녀에게 있어서 무역짐배며 어업선들이 나드는 항구와 그곁의 수산사업소부근은 이모네 집과 멀지 않은 까닭에 생소한 곳은 아니였다. 이모네 집에 얹혀살며 동네의 코흘리개친구들과 많이도 나든 곳이였고 대학시절 여름방학철이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였다. 특히 고말산을 끼고 틀고앉은 수산사업소가 방파제로 리용하는 등대가 그러하였다.

높고 넓다란 콩크리트몸집으로 크고작은 바위떼들과 푸른 바다를 헤가르며 저 멀리 뻗어나가 머리를 버쩍 들고 선 옛 등대. 어느때든지 련인을 그려보면 첫 화면에 나타나는것은 저기 바라보이는 등대였으며 그러면 뒤이어 펼쳐지는것은 즐거움과 아픔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생생한 화면들이였다.

그랬다. 처녀가 이 부두가로 나온것은 애인의 마지막날을 기억하고있는 저 옛 등대를 바라보며 그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창조물을 지켜주지 못하고있는 자기자신을 모질게 타매하고싶어서였다.

수평선쪽에서 푸른 파도들이 굼닐며 끝없이 밀려와 부두가를 애무한다. 그에 실려 옛 등대가 간직하고있던 일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는데 국가긴급과제며 하반년도 첫 분기 생산과제를 넘쳐수행한 뒤끝이여서 련합기업소는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여기에는 마지막단계에 이른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성과도 한몫을 차지하고있었다. 그래서 련합기업소에서는 체육대회며 예술공연, 직장별음식품평회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다채로운 행사들을 조직하였다.

신정은 이날이 오기를 손꼽아기다렸다. 처녀는 한주일후에 있게 될 마지막시험을 앞두고 련인과 오래간만에 단둘이서 휴식을 즐기고싶었다. 수영, 문어잡이, 섭이나 성게캐기, 낚시질… 신정이 주동이 되여 짠 휴식날의 일정은 대체로 이러했고 정철은 무조건 복종하기로 약속하였다. 일정을 알려주면서 처녀는 저녁에 총각을 이모네집에 데려가 소개하려는것만은 빼놓았다. 놀라게 해주고싶었고 한량없는 기쁨을 안겨주고싶었던것이다.

둘은 오전일과가 끝나기 바쁘게 정구철부기사장의 승용차로 휴식에 필요한 낚시도구며 문어잡이창, 남새며 과일, 작은 가마, 남비, 바께쯔, 나무단 등속을 실어날랐다. 옛 등대에서 정철은 창발성을 발휘하여 여기저기 걸음을 하더니 전마선까지 하나 빌려 끌어다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맨 마지막일정은 이 부근의 해안관광이라고 제잡담 선포하여 가뜩이나 떠있는 처녀의 기분을 고무풍선처럼 만들었다.

호명아바이며 도입조사람들에게 량해를 구하고 오겠노라며 그가 떠나간 뒤 처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준비를 서둘렀다. 일고 씻고 썰고 다듬느라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갔다.

푸른 양산을 펴놓고 그속에 들어앉아 책을 읽고있던 신정은 그만에야 깜박 졸게 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언뜻 정신이 들어 잠에서 깨고보니 정철의 모습은 여전히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손전화기로 찾아보니 전원을 차단했다고 알려준다. 초조해지는 심리를 달래려고 일거리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낚시미끼삼아 준비한 정어리를 가지고 방게잡이를 하는것이였다.

그처럼 기다리던 총각이 옛 등대에 나타난것은 중천에서 불타던 해가 서켠으로 기울며 신정이 앉아있는 거부기바위등을 노을빛으로 감싸기 시작할무렵이였다.

무리를 이루고 등대밑에 기묘하게 박혀있는 바위들을 하나둘 뜯어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신정은 갑자기 머리우에서 나는 애인의 목소리에 허리를 일궈세웠다. 정철은 한손에 바지며 와이샤쯔를 뭉그려들고 커다란 거부기바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크고작은 바위들 짬으로 내려오고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오는 길인지 까만색바탕에 흰 두줄이 그어진 체육복형식의 반바지며 흰 런닝그는 온통 땀으로 얼룩이 져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치자 정철의 입이 벙글써 열리더니 불시에 탄성이 터져올랐다. 알맞춤히 부는 바다바람에 보기 좋게 날리는 머리카락이며 덧옷자락, 그 서슬에 엷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그대로 드러난 처녀의 모습. 청춘의 건강미와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는 그 자태는 휘거나 예술체조선수를 련상케 하였다. 늘 수수한 옷차림과 작업복에만 익숙되여온 정철은 신정의 모습을 보자 그만에야 자기를 잃고 처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정철은 너럭바위우로 뛰여내리려다가 전에없이 독을 쓰며 날리는 처녀의 눈총에 맞고 무춤하다가 뒤늦게야 눈치를 채고 미안하다는 말을 련발하였다.

호명아바이며 연구소사람들에게 량해를 구하고 돌아서는 참에 성강사람들과 마주쳤는데 도움을 청하기때문에 피할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 그들과 토론하고나서 돌아섰는데 이번에는 무궤도전차가 정전이 되였다는것이였다. 기다리다못해 자전거를 하나 빌려 탔는데 또 이번에는 바퀴가 터지는 바람에 포항광장서부터는 달려오다싶이 왔다는것이였다.

수선을 떨며 그럴듯하게 엮어대는 변명과 구실이였지만 애써 리해하고 넘기였다. 성강에서도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설계를 하고있으니까 도와줘야 했을것이다. 기업소에서 여기까지의 거리가 수십리길은 실히 되니까 정전이니 바퀴고장이니 하는 그러루한 피치 못할 정황도 생겼을것이고. 손전화기의 축전지가 방전이 되였다는것도 쓰거운대로 들어줄수 있었다. 하지만 신정의 부아를 돋구기 시작한것은 뒤끝에 한 정철의 이런 말에서부터였다.

《아무래도 시간상관계로 낚시질외에는 략해야 할것같애. 내가 물고기를 댓마리 낚아 어죽을 제꺽 쑤겠으니 신정인 헤염이나 치지 뭐.》

그가 그릇가지며 음식들, 짐들을 거부기바위에서 옮기는것을 지켜보던 신정은 흥심을 잃어버리고말았다.

등대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정한 정철은 방파제에 걸터앉아 낚시질을 시작하였다. 적중한 시간에 좋은 미끼와 자리탓인지 낚시를 넣자마자 어른손으로 한뽐반은 실히 될 이면수가 거퍼 두마리나 올라왔다.

세번째로 그 정도 크기의 거무틱틱한 우레기가 올라오자 정철은 사기가 부쩍 오른듯싶었다. 그는 두다리를 흔들어대며 노래를 흥얼거리다가는 받자도 하지 않는 싱거운 롱질을 처녀에게 던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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