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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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기중기들이 쉬임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창너머로 내다보이는 청진항회의실에서는 아침일찍부터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협의회가 열리였다.
원래 현지인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서 가지려고 했던 협의회였는데 여러모로 장소가 적합치 않아 고르던중 이곳이 선택되였다. 여기에는 중앙에서 내려온 심의성원들이 항 맞은켠에 위치한 려관에서 숙식하고있다는것도 있지만 역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름난 갈매기각에서 협의회성과를 축하하여 소문난 명태회국수를 대접하려는 주인들의 왼심도 작용한것이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한 협의회는 늦은점심무렵에야 끝났다.
신정을 위시한 금속연구소며 김형규네 김책공업종합대학사람들,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기술자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달아있었다.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문제를 놓고 두 주장들이 벽을 세우고 어느 켠도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신정은 일언반구없이 치렬한 론쟁을 듣기만 하였다. 처녀도 일어나 김형규네 도입조의 주장에 반론을 피력하려고 했으나 짬이 없어 그러지 못하였다. 그만큼 한사람의 주장이 피력되면 련달아 사람들이 뒤를 이었기때문이였다.
신정은 금속연구소의 도입방안이 낡았으며 비생산적이라고 지적하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도입조, 찍어말하면 김형규의 언행이 퍽 귀에 거슬렸다.
하다보니 언젠가 동창생의 동
외려 소성로를 줄곧 몸으로 가리우고 이야기하는 김형규의 자세가 자기네 기술에 경계선을 쳐놓고 누구도 접근시키려 하지 않는 일종의 선언처럼 재분석되여 기분이 나빴다. 후회되는것은 동창생에게서 정람성과를 들었을 때 무슨 방법을 쓰든 그들의 도입방식을 알아보지 못한것이였다.
하지만 제일 원망스러운것은 열간압연직장의 공정기사 채호명아바이의 처사였다. 호명으로 말하면 수년세월 신정을 포함한 금속연구소와 함께 고온공기연소기술이라는 처녀지를 하나둘 개척하며 쓰고단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호명은 누구보다 금속연구소의 창조물을 인정하고있었으며 이에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고있었다.
올해 들어 일흔인 년세로 보나 구형본을 쓰는 1세대고온공기연소가열로를 화학직장과 내화물, 특수내화물직장에 각각 한기씩 도입하는 과정에 얻은 풍부한 현장경험으로 보나 그가 한마디라도 내드는 주장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게있는것인가. 그런데 호명아바이는 협의회 전 과정을 손님처럼 듣고있다가는 이따금 작은 수첩에 무엇인가를 계속 적기만 한다. 쪽지편지까지 써서 알렸는데도 요지부동이였다.
신정은 머리를 짓수굿한채 현관밖을 나서는 채호명을 따라가 그를 불러세웠다.
《어디 편찮아 그러세요?》
《내야 얼굴인상이 노상 그런걸. 왜 그러나?》
《아바인 어째서 이자 발언 한마디 안하셨어요?》
채호명은 턱이며 볼에 수염자리가 퍼렇게 내돋은 얼굴을 들어 지꿎은 눈길로 신정을 마주보았다. 신청은 그와 일하면서 이런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있었다. 령감이 떠올랐거나 어떤 과학기술적견해를 청취하면서 그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때면 호명의 눈빛이 이러했다.
채호명은 들고있던 수첩을 바꿔들며 원주필은 흑곤색작업복저고리웃주머니에 꽂아넣었다.
《암만 들어봐야 우리네 론거가 빈약해. 형규선생네들 주장에 비하면 말이요.》
《?!》
《축열체나 절환변만 봐도 그렇지. 신정선생, 우리야 벌집형축열체를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절환변 하나만 봐두 구식인 피스톤식, 왕복락하식밖에 모르지 않나. 김책공업종합대학 선생들의 방식은 다르거던.》
《?》
신정은 너무나 아연하여 채호명을 처음보는 사람처럼 여겨보았다. 처녀는 입을 열려다가 김형규네 일행이 곁을 지나치는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서 발언을 그만두셨나요?》
신정은 멀어져가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며 호명에게 다우쳐물었다.
《그야 부분적인 우점이 아닌가요. 그러나 우린 여기서 그걸 직접 현장에 도입한 실천적경험이 있지 않아요.》
채호명은 대꾸없이 바지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여 한대 붙여문다. 담배 한대 다 타들도록 여전히 그러고있는 호명의 침묵을 더 기다릴수가 없었다.
《저, 아바이.》
신정은 흘러내린 귀밑머리칼을 꼼꼼히 쓸어올리고나서 그의 속내를 조심히 찔러보았다.
《호명아바인 그들의 방식에 공감이 되는가보지요?》
《공감까지야 무슨. 우리것과는 전혀 다른 식인데 알아야 공감이 되지.》
《그럼 어째서 우리걸 주장하지 않으셨어요?》
《내 다는 모르겠지만 가만 들어보니 그네들의 방식이 흥미가 있어. 현대판이야. 로조작방법도 그래 이자 말한 그 축열체랑 절환변생김새도 그렇고.》
《리론적단계에서는 무엇이나 가능하지요. 론리적으로 증명하면 되니까요. 더우기 그들의 실천성과라는것은 정람내화물이 아닌가요. 아바이, 우리가 당장 도입해야 할 대상은 야금공장가열로예요. 금속로란 말이예요. 이런 점을 감안하면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주장엔 허점이 많지 않은가요. 연구소동무들이 이걸 중심으로 그들과 론쟁을 벌렸어야 하는거예요.》
《그래 오늘 협의회에서 두 주장을 재검토해가지구 다음주에 제출하라고 하지 않았나. 그날엔 심의위원회 전체 성원들과 금속로전문가들이 다 모이니까 그들이 두 주장을 들어보고 결정하겠지.》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군요.》
신정은 속삭이듯이 뇌이였다.
《그러니까 아바인 이미 그 주장에 공조하고있었군요.》
《공조하는게 아니라 그게 좋은것이라고 증명된다문야 낡은걸 왜 끌어안고있겠나. 포기할거면 포기하는게 옳지.》
신정은 왜 그런지 눈물이 불쑥 솟구치는것을 주체할수 없었다.
(뭐, 낡았다구? 포기하는게 옳다구?)
처녀는 누가 볼세라 손수건으로 눈물을 꼼꼼히 훔치고나서 오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그걸 성공하기까지 어떤 험한 길을 걸었는지 아바인 잘 아시지요? 난 포기 못해요. 아바이, 우리의것이 낡지도 않았구요. 내가 주장할테야요, 내가요.》
말을 마친 신정은 또다시 쏟아지는 눈물에 얼굴을 수그리며 돌아서서 종종걸음을 놓았다. 처녀는 오가는 사람들이 휘둥그런 눈길로 자기를 주시하는것도 몰랐다.
뒤에서 《신정선생, 신정이!》하는 채호명의 부름소리가 계속 뒤쫓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