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6 장

윤선각관찰사의 군령

3

 

안세희가 임금의 어지를 안고 충청도로 떠나는 그날 윤선각은 만여명의 관군을 이끌고 청주성으로 들어왔다. 조헌의병대와 령규승병대가 피흘리며 해방한 청주성을 화살 한대 날려보내지 않고 차지하였다.

조헌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청주목사에게 청주성을 인계하고 왜놈들을 칠 싸움준비를 하려던 참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윤선각이 관찰사의 군권으로 의병대를 관청앞마당에 모두 정렬시키라는 명령부터 내리자 그가 몹시 증오스러웠다.

의병을 무은 소식을 담은 글을 주어 임금께 보냈던 리유, 김경백들이 제때에 돌아왔다면 그리고 여기 충청도에 내려와 윤선각의 온갖 그릇된 처사를 알고 올라간 선전관 안세희가 임금께 보고드렸다면 윤선각이 이렇게 전횡을 부릴수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안세희는 천리먼길을 가야 하고 또 어지가 내린다 해도 여기까지 닿으려면 오랜 기일이 걸려야 할것이였다. 그리고 청주성을 해방하고 띄운 장계문에 윤선각을 규탄하였지만 그에 대한 어지가 내려오려면 아직도 멀었다.

조헌은 관권, 군권을 무지하게 휘두르는 윤선각을 막지 못하는것이 분통하였다.

윤선각은 관청앞에 모여온 의병들을 도끼눈으로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그는 조헌의 의병대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졌다.

이번 청주성에서 조헌이를 왜놈들과 기껏 싸우게 하여 의병대의 힘을 약화시킨 다음 청주성을 어부지리로 차지하려고 하였지만 하교남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탓에 오히려 조헌의 의병대가 이름을 떨치게 하지 않았던가.

하교남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선참후계하려다가 왜적의 맹습격을 받아 수많은 군사를 잃고 자신도 죽을번 하였다. 그는 왜놈의 급습에 도망치느라고 하교남을 미처 죽이지 못한것이 불안스러웠다. 하교남이 왜놈의 총에 맞아죽은줄 모르고 그가 왜놈들에게 산채로 붙잡혀 끌려간줄로 알았다. 그가 왜놈들에게 무슨 비밀을 다 토해놓을지 알수 없는것이다.

선전관 안세희가 건건마다 엄중히 질책하고 임금에게로 돌아간것만으로도 매우 불안스러운데 하교남의 일로 불안우에 불안이 겹쳐서 밤잠을 못잤다. 이 모든 불안의 근본뿌리는 조헌에게서 생겨났다고 할수 있었다. 그는 터져나오는 분풀이를 조헌의병대를 해산시키는것으로 하려고 잡도리를 하였다.

윤선각은 기염을 토했다.

《모두 듣거라. 충청도관내에서는 누구나 이 관찰사의 군권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군령은 법이다. 군령에 불복한자는 선참후계해도 무방하다.》

의병대가 갑자기 술렁이였다. 청주성을 목숨걸고 탈환한 의병들에게 그 공을 높이 축하하여줄 대신에 죄인을 다루듯이 위협공갈부터 하니 이게 웬일인가.

《의병대는 비법불법으로 군적에 올라있는 사람들을 모아들이였다. 본관은 이런 사람들을 이제부터 관군에 포함시킬것을 명령한다.》

조헌은 분격을 참을수 없었다. 그는 의병대들을 보호하듯 그들의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나는 충청도의병장이요. 우리 의병대가 일어나 왜적을 치고있는것은 임금께서도 아시고 조정에서 알고있소. 관찰사는 옥천에서도 우리 의병대를 허물고 오늘은 또 청주성을 해방한 우리 의병대를 또다시 허물려고 하오. 무슨 목적인가. 나는 의병장으로서 의병을 해산하려는 관찰사의 목적을 알기 전에는 의병대를 허물수 없소. 또 관찰사는 군적에 등록된 사람들은 다 관군에 포함시킨다고 하였는데 우리 의병대들속에는 그런 사람이 없소. 포함시키려면 군적대장을 내놓고 한사람, 한사람 대조확인하면서 데려가오.》

침착하고도 사리정연한 조헌의병장의 말에 의병들은 《야-》하고 경탄을 터뜨리였다. 그것은 자기의 의병장을 지지하고 고무격려하는 찬사였다.

윤선각은 대번에 당황해졌다. 의병대를 해산하는 정정당당한 목적이 없었고 군적대장도 없었다. 청주관청에 군적대장이 있었다면 왜놈들이 다 불태웠을것이였다.

윤선각은 악에 받쳐 군권으로 조헌을 누를수밖에 없었다.

그는 즉시에 대기시켜놓았던 만여명의 관군으로 천륙백여명의 의병들을 둘러싸게 하고 젊고 씩씩한 의병들을 골라내게 하였다.

의병들과 관군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여보시오, 군정님. 우리 의병장님의 말씀을 못들으셨소. 군적대장을 내놓고 이 사람이 거기에 등적되여있으면 데려가우.》

의병은 자기를 끌어내려는 관군을 밀어버리며 하하 웃었다.

《할수 없다. 우리는 명령대로 할뿐이다.》

《너희 관군은 왜놈들도 치지 못한 주제에 정말이지 집안장수노릇을 할테냐?》

《집안장수라도 하라면 해야지 별수 있나. 자, 어서 가자.》

《군적대장을 가져와라.》

《이놈 봐라.》

관군이 의병의 멱살을 거머쥐자 의병도 그의 멱살을 마주 거머쥐고 밀고 당기고 하는데 한쪽에선 와하- 하고 웃음판이 벌어졌다.

해동이앞으로 힘깨나 써보이는 관군 하나가 오더니 다짜고짜로 끌어내였다.

《너도 우리 관군에 들어가야겠다.》

《허, 이 사람 보게. 누굴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냐. 내 이름도 윤선각이다. 감히 무엄하게 놀지 말아라. 으흠-》

해동이 배를 내밀고 위엄을 돋구는 시늉을 하자 의병들과 그를 둘러싸고있던 관군들이 너무 우스워 폭소를 터뜨렸다.

힘깨나 써보이는 관군군사가 뜻밖의 엉뚱한 놀림속에 들자 가만있을리 없었다.

《뭐야? 이 자식, 한대 맞아봐라.》 하고 해동의 귀쌈을 세차게 후려쳤다.

헌데 번개처럼 날아가던 주먹이 어느 사이에 해동의 손에 비틀리였다. 관군군사는 꼼짝 못하고 《아그그-》 비명을 지르는데 그것이 또 웃음을 자아냈다.

해동이는 군정의 손을 놓아주고 빙긋이 웃었다.

《네가 나의 손을 당해내지 못해. 내 손은 이번 청주성싸움때 왜적의 화약고를 터뜨린 손이라네. 그리고 이 손에 칼을 잡고 왜놈 서른일곱이나 무찔렀어. 그런데 자네의 손이야 왜놈 하나 못잡지 않았나.》

의병들을 끌어내려고 달려들었던 군정들은 해동이 말이 다 옳게 여겨졌는지 머뭇머뭇 주춤거리였다.

윤선각이 불호령을 내렸다.

《여봐라, 왜 이리도 꾸물거리는거냐? 좌군장은 군사들을 더 풀어서 빨리 끌어내라!》

관군군사들이 와르르 의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저기서 또다시 옥신각신이 벌어졌다. 가자거니 못간다거니 말다툼이 벌어지고 주먹다툼질로 넘어갔다. 그대로 두면 서로 칼을 빼들것이였다. 나중엔 의병들과 관군사이에 란투극이 시작되고 수많은 의병들과 관군이 죽을것이였다.

조헌은 윤선각이 서있는 섬돌우에 급히 뛰여올라 웨쳤다.

《의병들, 물러서라. 싸우지 말라. 관군도 의병도 다 우리 사람들이다. 우리끼리 싸우면 좋아할 놈은 왜놈들뿐이다. 제편끼리 죽일내기를 하면 나라가 망한다. 어서 물러서지 못할가.》

의병들은 자기의 사랑하는 의병장의 말을 듣고 모두 물러나 싸우기를 그만두었다. 관군들도 조헌의병장의 말이 옳아서 잠시 그를 고맙게 바라보았다.

《의병형제여러분, 얼토당토않은 관찰사의 군령이지만 군령은 군령이다. 가슴이 아프지만 여기에 복종하자. 가까운 시일내에 우리 의병들이 관군의 지시를, 군령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싸우라는 어지가 내릴것이다. 그때면 이 사람이 형제들을 한사람, 한사람 다 찾아 데려오리다.》

그는 저도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씻었다.

관군에 편입되여 넘어갈 의병들이 조헌의병장앞에 일제히 엎드려 큰절을 드리며 눈물을 흘리였다.

《의병장님!》

그 부르짖음이 자기 부모의 슬하를 떠나는 서러움과 같이 들려와 사람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자아냈다.

《형제들, 그대들이 의병대에서 용감히 싸운것처럼 관군에 들어가서도 제 한몸을 돌보지 않고 왜적을 치리라고 믿는다. 부디 잘 싸워 공을 이루기를 바라노라.》

조헌이 마지막으로 두손을 합장하고 관군에 넘어갈 수많은 의병들에게 절을 하였다. 이리하여 의병대는 7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의병들은 또다시 《의병장님!》하고 하나같이 달려나와 조헌의병장을 둘러싸고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만약 윤선각을 파면시켜 일반군사로 떨구며 조헌의 의병대가 독자적으로 행동해도 좋다는 어지가 도착했다면 환성이 터져올랐을것이였다.

허지만 아쉽게도 안세희선전관은 왜놈들이 차지한 평양성을 에돌고 한성을 에돌아오느라고 길이 늦어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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