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9

 

윤선각은 청주성관가의 높은 지붕우에 휘날리고있는 조헌의병대와 령규승병대의 기발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그는 어제 청주성이 수복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백여명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말우에 우뚝 앉아 위풍당당하게 청주성 서문앞에 말을 멈춰세웠다. 비장 하교남의 말대로 관가의 지붕우에 충청도 관찰사의 령기가 휘날릴줄 알았는데 조헌과 령규의 령기가 그를 비웃듯 휘날리고있는것이다. 그의 욕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것이다. 까마귀가 까치집을 빼앗으려다가 빼앗지 못한것처럼 일이 망측스럽게 되였다.

그는 온몸이 잦아드는것만 같은 실망감을 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망이 큰것만큼 화가 열탕과도 같이 끓어올랐다.

비장 하교남이 눈앞에 있다면 그자리에서 일도량단하고싶어졌다. 네놈이 나를 속였구나. 여지껏 네놈이 하자는대로 했다가 옳게 된 일이 한가지라도 없지 않았느냐.

왜놈과 싸우지 않은것도, 임금을 호위하러 북행길을 가자고 할 때도, 조헌의 의병대를 해산시키자고 꾀한것도 조헌을 모살하려던 자객이 조선8도를 분담맡은 왜장들을 벌써 임명해놓았다고 토설하였지만 네놈이 나를 꾀여 조정에 장계를 올리지 못하도록 추기지 않았더냐. 이번 충주성에 의병보다 먼저 관군의 기발을 꽂자고 한것도 네놈이였다. 조헌과 령규에게 이 관찰사의 인장을 박아서 의병대와 약속한것을 지키지 않았으니 수많은 왜적이 살아 도망치게 하였고 조헌이 이것을 또 임금께 상주하면 일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선전관 안세희가 이 윤선각의 허물을 들추어가지고갔는데 이번 일로 죄를 덧지게 되였구나.

그는 하교남을 릉지처참해도 씨원치 않겠다고 치를 떨었다.

윤선각은 분격이 상투끝까지 치받치였다.

《북문으로 가자.》

윤선각일행이 말발굽으로 진탕을 휘뿌리며 북문앞에 이르렀을 때는 무더위가 한창인 정오의 한낮이였다. 갑옷과 투구를 갖춘 그의 얼굴에는 줄땀이 흐르고있었다. 그 땀은 더위보다도 이번에 청주성을 타고앉지 못한탓에 흘리는 땀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것이다.

북문성루와 그 좌우의 성가퀴마다 의병들이 창대를 세워잡고 파수를 서고있었다. 관군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파수병들은 윤선각과 그의 호위병을 보고도 세워놓은 돌기둥처럼 꼿꼿이 부동자세로 파수병의 의무만을 수행한다는듯이 앞만을 내다보고있었다.

윤선각은 관찰사를 알은체도 하지 않는 의병들을 형틀에 올려놓고 곤장을 치고싶었지만 그보다도 하교남과 리옥의 행처를 알고싶은것이 더 급하였다.

《관군이 어디에 있느냐?》

윤선각은 저도 모르게 꽥 소리가 나갔다.

《관군은 어제밤에 여기서 도망하는 왜적을 친다고 하였는데 싸움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소이다. 저기 보이는 산기슭너머에 아직도 있는것같소이다.》

파수병이 손을 들어 멀리 가리켜보였다. 그곳에서는 점심밥을 짓고있는것같은 연기들이 여기저기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었다.

윤선각은 즉시에 호위군사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말을 짓쳐몰았다.

하교남의 군사들은 어제밤에 비를 맞아 흠뻑 젖은 옷들을 말리우느라고 나무가지와 풀판에 널어놓고 또 활과 전통을 여기저기에 걸어놓았다. 그리고는 먹을것을 끓이고 또 한쪽에서는 나무그늘아래 끼리끼리 모여앉아 한담을 하고 또 다른쪽에서는 코를 드렁드렁 골아대면서 자고있었다.

도리풍을 친 장수막앞에서 파수를 서고있던 군사가 관찰사 윤선각일행이 말을 몰아오는것을 보고 깜짝 놀라 하교남에게 알리였다.

하교남은 부대의 각 위장을 모아놓고 어제밤에 북문으로 도망치는 왜적을 놓친 죄를 어떻게 모면할것인가를 의논하고있었는데 윤선각이 벌써 들이닥친것이다.

하교남이 급히 나아가 윤선각을 마중하였다. 윤선각은 하교남을 본체도 하지 않고 벼락치듯 호령하였다.

《방어사는 어디에 있느냐?》

《도망친 왜놈들을 잡는다고 군사들을 이끌고 어데로인지 갔소이다.》

《한밤중에 도망한 왜적을 날밝은 다음에 따라잡는다고? 좋다. 방어사는 따로 죄를 따지겠다. 여봐라, 군사를 집합시켜라.》

그의 흡뜬 눈에 살기가 내뿜고 살진 두볼편이 푸들푸들 떨었다.

윤선각은 청주의 관청지붕에 의병보다 먼저 령기를 띄우라고 하교남에게 따로 주었던 군사 100여명을 맹수의 눈과 같이 휘둘러보고는 분격을 터뜨리였다.

《왜적이 이 땅을 도륙내고있는 이때에 본관은 왜놈들을 크게 치기 위해 싸움준비를 드팀없이 다지면서 참을성있게 기다려왔었다. 마침내 그 기회가 와서 하교남에게 군사를 주어 방어사와 함께 청주성 북문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방어사와 하교남은 성문가까이에 진을 치지 않고 10리밖에 나앉아있었다. 수많은 적들이 북문을 거침없이 빠져나가도록 도와주는 역적질을 자행한것이다. 전시에 명령에 불복한자는 군률을 면치 못한다. 군률은 용서하는 법이 없다. 하교남은 할말이 있으면 하라.》

삽시에 군사들의 머리우에 공포가 떠돌았다. 사위는 쥐죽은듯 정적이 깃들었다. 하교남은 아래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아니, 저 미욱한 윤선각이 나를 죽이려드는구나. 내 지금껏 너의 팔다리가 되여주고 너의 머리와 입이 되여주었는데 이제는 제가 지은 죄를 나에게 전부 뒤집어씌워서 저는 살고 나는 제대신 죽이려 하는구나. 하교남은 분통이 터져올랐지만 어제밤 왜적도 치지 못하고 관찰사의 령기도 관청지붕에 꽂지도 못한것은 사실이였다. 저 윤선각이 군률을 쓰면 죽었지 별수가 없다. 그러나 말만 잘하면 살수가 있다. 독틈에도 용수가 있지 않는가.

《왜적을 치고 의병보다 먼저 성을 차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하옵소이다. 하오나 죽어도 그 리유를 밝혀야 하옵기로 감히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어제밤 비가 억수로 퍼부었지만 북문가까이 매복하려고 하였는데 적아쌍방이 일단 싸움을 거두었소이다. 날이 밝으면 다시 싸우려는것이 뚜렷이 느껴져서 오늘밤에야 왜적이 북문으로 도망쳐나오리라 하여 방어사 리옥과 함께 기다리였는데 왜놈들이 미리 도망칠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겠소이까.》

《네가 관찰사를 꾀여 일을 그르치게 한것이 한두번만이 아니다. 이번에도 요사스런 말로 나를 구슬려대는구나. 리유는 어떻든간에 너는 수천의 왜적을 살려보냈다. 여봐라, 저놈을 묶어라.》

윤선각의 전령수가 불호령을 제꺽 받아 웨치였다.

《비장 하교남을 묶으랍신다-아-》

그 쨋쨋한 웨침이 군사들의 머리우에 메아리쳐갔다.

윤선각의 호위군사들이 하교남을 사정없이 묶었다.

《여봐라, 저놈의 입에서 요사스런 독설이 더는 나오지 않게 헝겊을 물려라.》

이리하여 하교남은 오라를 지고 입을 틀어막히였다.

군사들이 술렁이였다. 잘하였다느니, 모를 일이라느니 하고들 수군덕거리였다.

바로 이때 군사들속에서 누가 《왜놈들이다-》 하고 소리쳤다.

윤선각이 와뜰 놀라 산기슭을 바라보았다.

벌써 숲속에 몸을 감추고 가까이 다가들던 왜놈들이 이때라 벌떼처럼 뛰쳐나오면서 조총을 몰방으로 퍼부었다. 관군은 한곳에 모여있던지라 수많은 군사들이 철알에 맞아죽었다. 관군은 쫙 흩어졌지만 왜놈들의 추격을 당해내지 못하였다.

윤선각은 칼을 뽑아들고 웨치였다.

《왜놈들을 맞받아치라.》 하고는 호위병들과 함께 달려드는 왜놈들을 쓸어눕히였다. 그의 칼날에 여러놈이 비명을 지르면서 목이 떨어졌다.

관군과 왜적사이에 혼전이 벌어졌다. 얼마 못가서 관군은 밀리기 시작하였다. 무방비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맞다든 왜적의 급습을 이겨낼수 없었다.

윤선각은 네댓명의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말을 타고 도망쳤다.

적장 고바야까와는 청주성싸움에서 살아남은 군졸들을 이끌고 북문으로 빠져나와 이곳 산속에서 만신창이 된 무리들을 수습하고있었는데 내보냈던 렴탐군이 돌아와 하는 말이 조선관군이 산너머에 있다는것이였다. 모두 젖은 몸과 옷들과 활들을 말리우면서 먹을것을 끓이기도 하고 아무런 싸울 준비도 없다고 하였다.

이게 웬떡이야. 고바야까와는 즉시에 군령을 내려 관군을 치게 하였다. 어제밤에 청주성에서 패한 앙갚음을 해야 하였다.

그는 수하장졸이 많이 죽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조선관군을 족쳐버린것이 한가닥 위안이 되여 전장을 돌아보았다.

헌데 조선관군의 풍막앞에 오라를 지고 입을 틀어막힌 하교남을 보게 되였다.

《이게 웬놈인가? 왜 잡아먹을 돼지처럼 묶어놓았는지 알아보는것이 좋겠다.》

고바야까와를 따라다니는 수하졸개들이 하교남의 입에서 걸레짝을 뽑아주고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하교남은 어느 총에 맞아죽었는지 숨줄이 끊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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