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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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정은 자기 차례가 되자 될수록 사랑이라든가 결혼과 같은 일신상의 일들은 에둘러가며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제일 알고싶었던 이런 문제가 변두리에서 맴도는것은 그 녀자에게 있어서 불만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던 동창생은 고온공기연소기술이 신정의 입에 오르자 호기심을 나타내였다.

《우리가 만드는 편집물도 고온공기연소기술이야. 하니까 너도 그 기술을 연구하댔구나.》

이번에는 신정이 강한 호기심을 나타내였다. 동창생은 기꺼이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박미연은 얼마전에 본사의 과업을 받고 정람내화물공장에 내려가 김책공업종합대학의 한 과학자를 취재하였다. 그로 말하면 정람내화물공장의 소성로들에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하여 내화물공업에서 수입연료를 밀어낼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마련한 청년과학자라고 한다. 미연은 주인공이 성공시킨 새 기술공정실무에 대하여서도 전문술어까지 드문히 써가며 료량껏 말해주었다.

《취재를 해보니 30대를 넘긴 사람인데 글쎄 총각이더구나. 박사원을 졸업하고 류학이랑 갔다오느라 장가를 못간 모양이야. 생활상문제에 들어가니 어색해하더라. 이 기술을 금속로에 도입해보는것이 꿈이고 목표이다, 이외에는 사생활에 대하여 아직은 관심하고싶지 않다. 이런 말을 하는걸 들어보니 생활문외한보다 간단치 않은 야심가같애. 내 분석이 어때?》

《금속로에?》

신정은 금속로라는 말에 큰 주의가 쏠려 동이 닿지 않게 되물었다.

《응, 분명 금속로랬어. 한번 보겠니?》

정도이상의 반응을 보이는 신정의 눈치를 알아차린 박미연은 가방에서 판형콤퓨터를 꺼내들었다. 그 녀자는 콤퓨터를 동작시켜 임의의 화일을 찾은 다음 신정에게 주었다.

《글을 쓰는데 필요할가 해서 따로 몇분짜리 동영상을 찍어둔거야.》

신정은 흘러가는 화면에 시선을 박고 주의를 집중시키였다. 먼저 주인공이 기다란 속보판앞에 서서 동창생과 말을 나누고있는 화면이 나타났다. 준수하게 생긴 용모에 넓은 이마우에는 굽실굽실한 파도형머리칼들이 보기 좋게 옆으로 얹혀있었고 한곳만을 응시하는 눈빛을 보니 엄격하고 침착한 성격일것이라고 짐작되였다. 박미연은 도간도간 참녜를 하면서 친절을 베풀었다.

《경력을 들어보니 놀랍더구나. 음악으로 금성중학교를 졸업했는데 김책공업종합대학추천서가 나왔다는지. 리유를 캐물어보니 그저 웃으면서 지금도 동창생들이 그걸 두고 가끔 놀려준다지 않니. 뭐 사춘기시절에 대뇌에서 갑작변이가 일어났다는거야. 그래서 잠재하고있던 공과계통의 신경이 갑자기 발달한 결과라나.》

하지만 신정의 온 신경은 화면이 바뀌자 김형규라고 부르는 청년과학자가 소개하는 소성로에 쏠려있었다. 동창생의 풍월만으로는 그들의 도압방식을 전부 알수 없었으며 그래서 제눈으로 파악하고싶었다. 그런데 화면의 주인공은 신정의 심정과 상반되게 행동하고있었다. 자기들의 새 기술도입에 관하여 뚜껑만 열어보이는가 하면 소성로의 가동상태를 보여주는 맨 마지막화면도 몸으로 로를 가리운채 서있었다. 그렇다고하여 주인공의 탓이라고 볼수는 없었다. 편집물의 기본대상은 소성로가 아니라 고온공기연소기술을 성공시킨 과학자였던것이다.

시기심이 아닐가하고 신정은 자신을 질책하였다. 우리는 김철의 내화물소성로들에서 이미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있는것만큼 그들보다 한걸음 앞서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 림시 중지되였지만 금속로도입에서도 우리는 그들보다 먼저 시작을 떼지 않았는가. 그러니만큼 나는 응당히 그들의 첫 성공을 축하해주는 립장에 서야 하며 금속로도입에서도 응당한 성과가 이룩되기를 진심으로 원해야 한다. 좋기는 선험자적립장에서 그들이 어려운 길을 걷지 않도록 도와주는것이다. 그들이 택하게 될 다음번 금속로도입적지는 어데일가.

한편 미연은 이상한 눈초리로 신정이며 콤퓨터화면을 번갈아 여겨보고있었다. 동창생의 눈길이 상반신으로 소성로를 가리운채 굳어져있는 김형규에게 머무른채 움직일념을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것을 주관적으로 분석해버린 그 녀자는 능청스럽게 신정의 속을 떠보았다.

《인재야. 내 보기엔 나기도 잘나고 그렇지?》

한순간 얼떠름해하던 신정은 의미를 알아차리고나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니?》

《오- 그러니까 애인은 있었구나.》

말뒤를 잡으며 환성을 올리다싶이하는 동창생이였다.

《별나게 그런 일은 어물거리며 피하기에 여적 외톨인줄 알았지.》

《미연아, 난 그런 뜻으로 말한건 아니야. 난

《됐어. 친구의 련애담을 들었으면 너도 값을 내야지. 이 세상에 공짜가 있는줄 아니? 자, 그럼 어디 료해한번 해보자꾸나.》

무슨 일을 하는가, 몇살인가, 성격은 좋은가, 학력은? 가정환경은? 결혼식은 언제? 별의별 질문이 소나기처럼 한꺼번에 쏟아지였다.

신정은 어느 물음이든 대답을 못하고 당황해하였다. 신정을 불쌍하게 바라보던 박미연은 《할수 없지. 그럼 서로가 어떤 계기에 속을 털어놓게 되였는가 그것만 듣자꾸나. 거기엔 다 있을테니까.》라는 명령조로 소나기를 그치였다. 그러고는 버들잎눈을 깜박이며 언제건 앉아들을 작정을 하는것이였다.

기꺼이 말해주고싶었고 애인을 내놓고 한껏 자랑하고싶었다. 고온공기연소기술개척과 더불어 엮어온 애정의 서사시를 하다못해 간추려서라도 소리내여 읊어주고싶었다.

그런데 어찌된셈인지 이러한 심리는 반발심으로만 여겨지였고 그래서 입속에서만 맴도는것이였다. 신정은 털어놓지 못하는 이 원인을 잘 알고있었다. 설혹 동창생에게 례의를 지켜 몇련만 읊어준다고 해도 그로 하여 스스로 당할 아픔을 도무지 감당해낼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박미연은 신정의 안색에 비낀 한줄기 그늘을 눈치채고 동정심에 젖어 지레짐작한다.

《크게 다툰 일이 있는거구나.》

《미안해. 후에, 후에 들려줄게.》

신정은 진심으로 그 녀자에게 량해를 구하였다.

 

그들의 해후는 학습당이 문을 닫을무렵에야 끝이 났다. 동창생과 헤여진 신정은 곧바로 평양역쪽으로 뻗은 중심거리 뒤길로 향하였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에는 미연이 던진 질문에서 환기된 감정이 상당히 컸기때문이였다. 처녀는 저녁산책을 하면서 동창생에게 들려줄수 없었던 그 감정세계에 들어가 혼자서라도 즐기고싶었다. 늦은 저녁이여서 뒤길로는 산책을 나온 사람들외에는 별로 오가는 사람들이 없었다. 허나 길가녁의 의자며 돌계단, 느티나무며 소나무밑에서는 행복에 취해있는 련인들의 나름의 모습을 얼마든지 찾아볼수 있었다.

저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랑하게 되였을가, 누가 먼저 심중의 고백을 털어놓았을가. 신정은 부러운 눈길로 그들을 일별하며 뇌이였다. 하나같이 순결과 희망으로 넘치는 련인들의 얼굴을 보니 이제는 지나간 일로 되여버린, 허나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도 저 하늘가에서 빛나는 밤별들처럼 또렷하게 그려지는것이였다.

신정은 밤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혼자 웃었다. 옛일을 더듬어보니 애인과의 첫 상봉이 이상하게 맨 먼저 눈앞에 나타났기때문이였다.

《먼길에 오느라고 수고많았습니다. 축열재료에 들어가서는 최우수전문가라니 우선 나같은 촌놈을 잘 계몽시켜주시오.》

이것은 김책제철련합기업소에 도착하여 려장을 푼 날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조의 책임자이며 금속연구소 실장이였던 정철이 반롱담조로 한 첫인사였다. 렬차가 고원이북구간에 들어서면서부터 때없이 귀설게 울리는 투박한 함경도사투리를 들으며 생소한 고장에 몸을 붙일 걱정을 어지간히 해오던 신정은 정철의 그 인사 한마디에 속이 편안해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들의 관계는 이렇듯 평범하게 시작되였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고흘러 서로가 남다른 정을 품고있다는것을 알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던 신정이였다. 언제? 어느때? 어째서? 무엇때문에? 새 기술도입이라는 고행의 나날에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아무리 더듬어보아야 도대체 그 시발을 알수가 없었다. 그저 분명한것은 정철이 자기를 오래전부터 열렬히 사랑하고있으며 신정이 역시 언제부터인지 기계체조선수처럼 탄력있는 체격을 가진 이 열정적이고 투지만만한 청년과학자를 사랑하고있다는것이였다. 다만 그들은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의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솟구치며 끓고있는 이 감정을 리성과 지성을 의지삼아 누르고있을뿐이였다.

원래 련인의 고백이란 일하는 과정에 축적된 상대방에 대한 고상한 감정의 공개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서는 대체로 남자쪽이 먼저 입을 떼는것이 례상사였다. 그래서 신정은 모든것은 시간문제일따름이라고 인정하고있었다. 현재는 그가 새 기술도입의 성공에 전력을 기울이느라 곁눈을 돌리지 않아 그러지 틀림없이 그 언제인가는 내게 다가올것이다.

그날은 언제일가. 그이는 어떻게 고백할가. 때때로 신청은 야릇한 심정에 싸여 혹은 공포에 질려 내심 그려보군 하였다. 편지나 청년공원의 어느 나무밑이 아니면 수성천모래불이 상상되였고 한켠으로는 고루하달 정도로 엄격한 가풍을 미루어보아 정철의 집안사람들을 통하여 전해올것이라고도 짐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가슴을 조이며 바라고 기다리던 그날은 예상을 뛰여넘어 갑자기, 그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닥쳐오고야말았다.

대동강의 밤물결이 유정히 흐르고 사랑의 꽃들이 만발하는 유보도를 걷고있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보면 금시 온몸이 달아오르고 행복감으로 하여 심장의 박동이 세차게 뛰는듯싶다.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도입하여 특수내화물직장에서 수입연료를 밀어낸 그날이였다. 새 기술로 뽑은 내화물이 쏟아져나오는 순간 모두는 제눈을 의심하며 얼어붙은듯 서있기만 하였다.

그러고있을 때 신정은 불시에 누군가의 억센 손아귀에 한손을 잡히웠다. 정철이였다. 그는 다른 손으로 이글거리며 춤추는 로안의 등황색불길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처녀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투로 그러나 가장 가까운 사이임을 확인하는 말투로 열을 토하였다.

《봤지? 난 오늘을 기다렸어. 이게 바로 신정에게 하는 나의 고백이야. 말 안해도 돼, 신정이도 나를 사랑한다는걸 아니까.》

그리고는 로안을 살피는 정구철부기사장에게로 이끌어가는것이였다.

《형님, 나와 신정일 승인해주세요. 우린 서로 사랑해요.》

다짜고짜 들이대는 동생의 청에 정구철부기사장은 어이없어하였다. 그러다가 물기돋은 눈덕을 훔치고나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알고있다. 하지만 약속해라, 내게 아니라 이 불앞에서 그리고 오늘의 성공을 위해 사심없이 너희들의 손발이 되여준 저 호명아바이랑 여러 동지들앞에서 말이다.》

처녀는 정철에게 이끌려 불길이 맹렬하게 솟구치는 로를 배경으로 사람들앞에 나섰다. 누가 먼저 말했고 누가 끝을 맺었는지는 모른다. 그랬어도 불처럼 사랑하겠다는것, 영원히 한몸을 태워 조선의 불을 많이 만들겠다는 약속만은 하나와 같았다.

이어 소성로동음을 누르며 터져오르는 박수, 박수소리, 그다음 처녀의 고막을 울리는 목소리.

《난 신정이를 사랑한지 오랬어. 신정, 내가 결혼식기념품을 얼마나 값비싼걸로 준비하고있는지 알아? 신정인 아마 그걸 받으면 너무나 좋아서 눈물을 되박으로 흘릴거야. 신정, 신정인 그날 내게 뭘 주겠어, 응?》

《나는… 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도 꼭.》

그러고나서 정철이며 신정이들은 불앞에서, 금속연구소와 김철사람들앞에서 다시한번 언약하였다. 다들 박수를 치며 눈물을 훔치였다.

(만일 그이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리고 가열로도입이 성공하였더라면 이러한 추억은 얼마나 내놓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돌이켜보니 미연에게 말해주지 못한것이 후회가 되였다. 정말 모든 일이 순조롭게 끝났더라면 아마 신정은 탐구의 나날에 희로애락으로 엮어진 사랑의 서사시를 밤새도록 말해주었을것이다.

그런데 정람에서 성과를 거둔 그 사람들은 다음번 도입적지를 어디로 정하였을가?

지나간 일을 매듭짓자 또다시 갈마드는 의문이였다.

(황철? 성강? 아니면 천리마제강일가?)

의문의 밑바탕에는 호기심이나 관심보다도 딱히는 이름짓지 못할 불안 비슷한것이 깔려있었다. 고온공기연소기술을 금속로에 도입해보는것이 꿈이고 목표라는 김형규의 말에서 은연중 잠재하고있던 적수가 자태를 드러내고 경쟁을 걸어오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자격지심이 강하게 뇌리를 쳤다. 사고원인을 사람들에게 정확히 인식시키고 새로운 출로를 모색하여야 한다. 그래서 중지되였던 새 기술도입을 계속 밀고나가야 한다.

그러나 신정은 멀지 않은 앞날에 이 결심을 스스로 포기해야 할뿐더러 사랑했던 청년과학자가 자기의 희생으로 이룩하여놓은 공적마저 누구도 아닌 자기가 부정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생기게 된다는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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