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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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석진은 황철에서 돌아오는길로 금속공업성에 들렸다가 바로 퇴근길에 올랐다. 일찍 들어가는감이 있었는데 그래야 19시를 바투 댄 시간이였다. 집에 들어서니 안해와 막내딸이 반겨맞는다.
석진은 서로 손을 내미는 모녀에게 모자며 겉옷을 벗어주면서 안해에게 물었다.
《신정인 잘 있다오?》
《그앤 지금 한창 여기로 오고있어요.》
가방을 받아들며 안해가 하는 말이였다.
《그저께 청진서 떠나기 전에 전화가 왔었는데 연구소에랑 인민대학습당에 볼일이 있다나봐요. 막판에 와서 일이 잘 안된다면서 속상해하더군요.》
《계속 고생이군. 한데 그 고온공기인지 저온공기인지 되긴 되는 일이길래 그애 그 고생이라오?》
《참 당신두, 되길래 그러겠지요. 신정이 막 대견스러워요, 거기 금속연구소사람들에게도 존경이 가구. 그처럼 고생하며 연구한 고온공기연소기술이 조만간에 빛을 보게 된다지 않아요.》
《그래? 그게 성공한다면 아주 대단한거요. 음- 하기야 빛을 봐야지, 우리 신정이도 청춘시절을 바친거니까. 그앤 초창기부터 일했지?》
《그래요.》
신석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넓다란 전실의 세 벽면을 따라 놓인 진회색고급쏘파들중 자기가 늘 앉군 하는 식탁 겸 앞차대앞의 쏘파로 갔다.
신정은 신석진의 맏딸이였으나 보통 가정들에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처럼 그들부부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있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경제참사로 외국에 나가살던 신석진이 사업정형을 총화지으러 조국에 왔다가 온 가족을 데리고나가 일하게 되였다. 그런데 일이 잘 안될 때라 신정이 급성충수염에 걸려 입원하는 바람에 회복을 기다리고있었는데 이번에는 유착이 와 더는 지체할수 없게 되였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 앞에 있어 석진은 할수없이 딸을 청진에 있는 가시집에 맡기고 떠나게 되였다. 신정이는 처가켠 사람들의 손에서 자라며 중학교과정을 마치고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하였다. 졸업후에 국가과학원 재료연구실의 연구사로 배치받은 딸은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에서 축열재료에 대한 연구》라는 과제를 자진하여 맡아안고 지금까지 현지에 나가살았다.
그러다나니 석진이내외는 귀국한지 여러해가 되였어도 신정이와 언제한번 따뜻한 분위기속에 앉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신석진은 늘 맏딸에게 무엇인가 죄스러운 심정이였고 과년한 딸의 장래에 대해 항상 왼심을 쓰고있는터였다.
《그애에게서 총각소리 들어본적이 없소?》
석진은 막내딸이 주는 차잔을 받아들며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나가는 안해를 불러세웠다.
《전에 연구소에서 같이 일하는 처녀에게서 피뜩 듣자니 금속연구소의 실장을 하는 한 과학자와 보통이상으로 가깝더라는 말을 듣긴 들었는데.》
《어머니라는게. 당신 그애 올해 들어 몇살인줄 아오? 조금만 더 있으면 혼기를 완전히 놓치게 돼. 이런거야 어머니가 더 관심을 돌려야 하지 않는가.》
그는 손사래를 하며 뭐라고 발명하려는 안해를 제지시키였다.
《알아보오, 구체적으로. 그애 좋다면 상을 차려줍시다. 우리 신정이 눈이 바로 배겼는데 배우자선택에서 어련하겠소?》
《그럼 신정인 거기서…》
어머니의 마음이란, 그래서 어머니들의 사랑엔 리기심도 적지 않다고 하는지. 저 사람은 대상자가 지방총각이라는걸 두고 우려하지 않는가.
《대상자가 똑똑하구 전망성이 있는 사람이라문야 합당한 자리에 끌어올리면 되는거지 뭐. 쓸데없는 걱정일랑 말구 어떤 총각인지 그거나 빨리 알아보오.》
신석진은 안해를 내보내고나서 차잔을 기울이였다. 몇모금 마신 씁쓸하면서도 향기로운 인삼차가 울기를 다소 삭여주는듯싶다.
석진은 김중건이와 있은 일로 하여 아직도 속이 불편하였다. 암만 생각해봐야 중건이 나를 떫게 대할 리유란 하나도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작히나 도와주었는가.
귀국해서 만나보니 그새 하나의 대기업소를 맡은 책임일군으로 성장한것은 무등 기쁜 일이였지만 시야가 좁고 트이지 못한것이 확연하게 알리였다. 이런 사고와 안목을 가지고서는 황해제철련합기업소라는 거대한 기업체를 새세기의 요구에 맞는 하이칼라기업소로, 우리 경제가 목마르게 요구하는 철강재를 마음껏 생산해내는 야금공장으로 개변시키지 못할것이다. 하여 신석진은 자기가 데리고나가는 대표단에 넣어주기도 하고 다른 대표단들이 나가면 상급에 김중건지배인도 포함시키도록 제기도 하는 등 그를 도와주려고 여러모로 왼심을 써왔다.
그런데도 김중건은 나를 이상하게 대한다. 곰곰히 지난 일을 뒤져보니 외국회사들과의 면담이 뜻대로 되지 않은 그때부터 중건의 태도가 일변된것같았다. 전번에 동아시아의 어느한 강철회사와의 면담이 류산되자 그 이튿날 중건이 석진에게 롱담인지 진담인지 《가만보니 신동문 저쪽을 나보다 모르오.》라고 하던 말이 상기되였다.
석진은 유럽에서 십년강산이 두 고패를 넘게 대외사업을 하였다. 그 과정에 쏘련과 동유럽의 비극을 누구보다 처절히 체험하였던 그였다. 이어 시작된 조미핵대결전을 주시하면서 조국의 운명을 두고 편히 잠을 이룬적이 몇날이나 있었는가. 이러한 신석진이였기에 그 시절 고난의 행군을 하는 조국인민들과 함께 고락을 나누는 심정으로 푼돈을 절약하여 선진과학기술도서들과 잡지들을 틈틈이 사모았다가 인편에 수시로 보내군 하였다. 마침내 조국은 지하핵시험과 인공지구위성의 성공적인 발사로 주도권을 더욱 확고하게 틀어쥠으로써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을 제압할수 있는 무쇠주먹을 가지게 되였다.
신석진은 우리의 승리는 불변이며 확정적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적대세력들이 반공화국대결전에서 수세에 빠질 때마다 언론을 총동원하여 우리 공화국을 시비중상하며 악의에 차서 헐뜯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 개발한 대륙간탄도미싸일과 전략폭격기, 핵잠수함을 TV에 선보이며 허세를 부리는것은 오히려 패배자의 몸부림에 불과한것이다.
그는 세계에 경제강국건설을 선포하고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고있는 조국에 귀국하여 큼직한 사업을 하나 맡아 힘껏 일하고싶었다. 그 사업이란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정책에 수동적인 반면에 우리에게는 숙부드럽고 유화적인 유럽나라들과의 경제교류와 협조사업을 광범위하게 벌려 최신생산체계를 갖춘 공장들을 들여오는것이였다.
귀국하자마자 판을 벌려놓은 신석진은 아직 눈이 둥그래질만한 성과는 없지만 시작은 괜찮게 떼였다고 믿고싶었다. 그간 지역과 대륙에서 제노라하는 기업들과 어쨌든 면담이야 많이 해보지 않았는가. 인내성이 있어야 하고 면담실력이 있어야 한다.
(흠- 그런데도 내가 저쪽을 몰라?)
신석진은 코웃음을 치며 차잔을 입에 가져다대였다. 시간이 증명할것이다.
식사를 하자고 찾는 안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초인종소리가 울리였다. 인민반장이겠거니 하고 례사롭게 생각하던 석진은 출입문쪽에서 급기야 들리는 환성에 차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반쯤 열린 전실문을 소리나게 밀어젖히고 들어서는 막내딸의 거동을 지켜보다가 환한 기색을 지었다. 래일쯤에야 올것이라고 짐작했던 맏딸 신정이 깊숙이 인사를 하며 들어섰던것이다.
×
신정은 이틀간에 걸쳐 인민대학습당걸음을 하고나서야 고온공기연소기술도입에서 제기되는 난관을 푸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볼수 있는 보충자료작업을 끝낼수 있었다. 이제 남은것은 자료를 재검토하고 현지에 내려가 해당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실천에 응용해보는것이였다.
2층계단을 내려 회전문으로 향하던 신정은 옆에서 누군가가 찾는 목소리에 얼굴을 돌리였다.
처녀를 찾은것은 연청색치마에 하얀 와이샤쯔를 받쳐입은 한 녀성이였다. 쭉 빠진 고운 몸매와 복숭아형의 얼굴에 버들잎모양의 눈을 가진 그 녀자는 신정이를 알아보자 두손바닥을 마주치며 탄성을 올리는것이였다.
《맞구나. 나야. 신정아, 날 모르겠니?》
《?!》
《야-참, 속상하구나. 나야, 중학교때 남자번지개 박미연이.》
그제서야 신정은 동창생을 알아보고 달음에 다가가 팔을 얼싸잡았다. 미연은 중학시절에 남자번지개로 소문이 난 한학급동창생이였다.
박미연은 신정을 좌우아래로 뜯어보며 부산을 피웠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단발머리시절에 헤여진 후로는 처음 만난 동창생이였다. 호리호리한 몸매며 타원형의 얼굴, 좀 가늘사한 눈에서 뿜기는 강단기는 그 녀자에게 있어서 결코 낯이 설지 않은 신정의 모습이였다. 다른것이 있다면 그의 얼굴이며 몸전체에서 절로 풍기는 오랜 과학탐구와 현장생활이 가져다준 엄격성과 랭정성이였다. 신정이네들은 반가운나머지 손을 맞잡고 인사치레를 하며 서있는것이 오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된다는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였다. 그들은 학습당 지하식당에 내려가 다과를 나누며 회포를 풀기로 하였다.
다과를 마주한 그들은 인차 서로의 이야기들에 심취되였다.
미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