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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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건은 신석진, 함승일이와 한날한시에 송림공대를 졸업하고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기술발전과 기술원으로 배치받아 오래동안 함께 일하였다. 씨름군체격과 완력형에 감때사나운 성미인 중건은 목이 류달리 길고 그늘아래 싱아대처럼 허약한데다가 녀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석진이를 처음에는 보호자연하면서 생활에서 많이 돌보아주었다.

피가 끓는 청춘시절에야 무슨 일인들 생기지 않았겠는가. 절친했다가도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며 끝내 타협이 되지 않으면 해탄지구를 둘러선 담을 넘어가 사내답게 셈을 치르군 했다. 그리고는 용해공식당에 마주앉아 오리불고기에 맥주잔을 찧으며 사이좋게 화해해버리였다.

신석진이 아무리 녀성적인 성격에 담이 작아도 그 역시 사내인지라 생활에서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을수가 없었는데 김중건이 번번이 나서주군 하였다. 김중건의 보호자적역할이 정도이상이고 그에 습관된 석진의 태도가 어찌나 뚜렷했던지 한때는 입심드센 용광로직장이며 강철직장의 로동자들속에선 김중건이 석진이를 도와주는건 간부집아들인 그의 도움으로 출세하기 위해서라는 귀에 거슬리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뿐만아니라 친구지간인 설계실의 함승일이까지 자주 샘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건말건 의협심이 강한 김중건은 여전히 둘도 없는 보호자가 되여 석진을 각근하게 대해주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몇달동안 추진해오던 새 기술혁신안이 생산현장에 도입되여 빛을 보게 되자 기술발전과와 현장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당사자인 김중건을 축하해주려고 용해공식당에 저녁식사를 차리였다.

중건의 중학동창이며 어깨친구인 용광로직장장의 서투르고 지루한 《축하연설》이 끝나고 반짜리 맥주고뿌가 댓개 오간 뒤 옆에 앉아있던 석진이 문득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중건동문 희망이 뭐야?》

《희망이란건?》

《장래에 뭘까지 바라보구 있나 말이야. 이를테면 야심이랄가, 아니면 인생목표라구 할가?》

《오, 그거? 글쎄 뭐랄가. 에이, 잘 모르겠어. 그래두 명백한건 있다. 앞으로 당에서 그 어떤 일을 맡겨주어도 제힘으루 척척 제낄수 있는 그런 준비된 사람이 되는거야.》

《중건동무가 역시 다르구나. 난 왜 이 모양인지.》

《동무가 어째서?》

《운전사의 아들인 동무도 야심대로 착착 나가는데 난 이게 뭔가 말이야, 대학을 졸업한지 여러해가 지났는데 아직 이 꼴이니.》

《동문 목표가 뭐였게?》

《나? 금속공업부장(당시)쯤이야 내다봐야지 뭐.》

김중건은 고개를 숙이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 바람에 입에 물었던 맥주가 식탁의 밑바닥을 화락하니 적셔놓았다. 신석진의 실력을 제 손바닥처럼 아는 중건이였던것이다.

그는 평시에 범박한 재능을 가진 부류의 인간들 특히 실력제고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기술자들에게 로골적으로 경멸감을 표시하군 하였다. 이런 인간들은 례외없이 자기의 허점을 가리우려고 남의 성과를 시비중상하는데는 능사였기때문이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신석진은 첫번째부류 즉 범박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남의 창조물을 대하는 석진의 태도였다. 자그마한 기술혁신안마저도 안깐힘을 써가며 해를 두고 씨름질하는 실력에 남들의 창조물을 평할 때면 늘 대가연한 자세를 보이는 신석진이였다. 이런 행동을 목격할 때면 김중건은 매번 불쾌감이 일어 한번은 단단히 말해주리라 생각하고있는터였다. 그런데 이런 석진이 금속공업부장이라?!

《무슨 담보가 있어?》

《외할아버지가 금속공업부장을 하시댔잖아. 손자가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응- 그래?》

김중건은 맥주고뿌를 내려놓으며 흥심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후에 그들은 인차 갈라져 일하게 되였다. 기술발전과에서 정보기술분석실이 따로 독립되여나가면서 석진이 거기서 일하게 되였다. 다음해에 신석진이 실장으로 임명되더니 여러해가 지나 기업소대외사업부 부부장을 거쳐 정무원(당시)으로 올라가는것이였다.

어느해인가 평양에 출장갔다가 석진을 찾아보니 유럽의 어느한 나라에 경제참사로 나가있다는것이였다. 그러다가 여러해전에 만나게 되였는데 사람의 운명이란 알수 없다는것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듯싶었다. 그야말로 신석진은 중건이 알고있는 이전의 석진과 판판 다른 사람이 되여 나타났다.

본시 허약한데다 속증이 있어 그늘아래 싱아대처럼 가냘픈 몸이 언제 그랬냐싶게 푸지게 나있었고 한줌만 했던 얼굴은 달덩이처럼 크고 훤하게 변하였다. 격하거나 흥분하면 듣기 싫게 앵앵거리던 음성도 점잖아지였으며 어느 기회에 탁구판에 마주서보았더니 이 사람이 정말 체육이라면 뒤전으로 도망가던 신석진이 맞는가 할 정도로 능란하게 치는것이였다.

합영합작관계로 그들은 자주 만나 사업을 토론하게 되였다. 그러는 과정에 김중건은 신석진이에게서 기업소의 운명문제에 관하여 적지 않은 조언을 받았으며 석진이 실천적으로 황철과 외국기업과의 합영을 성사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다.

김중건이 부기사장을 하면서 유럽나라들과 남아프리카, 이웃나라들에 가는 대표단에 망라되게 된것도, 지배인을 하면서는 동아시아강철총회사들과의 합영상담을 실현시켜준것도 근저에는 신석진의 일정한 도움과 방조가 깔려있었다.

그러나 합영상담이 파기되고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되여버리면서 김중건의 마음속에는 점차 석진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신석진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고싶지 않을 정도였다.

《좋소, 그건 동무맘대루 하겠으면 하시오. 아마 가격제정위원회에서두 황철주장을 헐헐히 받아들이지 않을거요. 건 그렇고, 두번째 문제요.》

신석진은 서류를 승용차뒤좌석에 훌 내던지고 돌아섰다.

《산소분리기는 언제 이관하게 되오?》

《?!》

《내 말 듣지 못했소? 언제 그걸 보내는가 말이요?》

《합영투자위원회가 산소분리기까지 보는가?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구 그건 왜 묻소?》

《진짜 모르쇠를 할내긴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황철에 오셔서 산소분리기를 두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그래 내 모르는줄 아오? 황철의 산소분리기를 2. 8비날론련합기업소에 도로 이관하는 경우 락원기계련합기업소에 필요한 외화지출계획을 재조정해야 한단 말이요. 2. 8이 쓸 산소분리기에 소요되는 수입자재를 사올 자금계획 말이요.》

그제야 김중건은 합영투자위원회가 황해제철련합기업소뿐 아니라 락원기계련합기업소의 외화지출에도 관련되여있는 기관이라는것을 상기하였다. 중건은 아까보다 퍽 기가 죽어 괴롭게 대답하였다.

《이관에 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소.》

신석진은 중건을 한번 내쏘아보더니 《잘 있소.》 하고나서 차에 올랐다.

심기가 불편한 석진의 심리인듯 시내쪽으로 차머리를 돌린 승용차는 신경질적으로 내달아갔다.

산소분리기의 이관, 각오는 하고있었지만 막상 현실적인 일로 눈앞에 닥쳐오니 가슴이 아파나고 그럴수록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수 없게된 김중건이였다.

물론 전망계획이였으나 김중건은 산소 그자체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각별했다. 강철공업의 주체화를 실현하자면 황철에서는 결정적으로 산소를 효과적으로 리용해야 한다는것을 이미전에 절감하였던것이다. 전 지배인 김병팔이와 고락을 나누며 산소열법용광로시험에서 성공하여 산소의 덕을 단단히 본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김중건은 기업소형편이 나아지면 앞으로 용광로를 가동시키고 초고전력전기로도 산소전로로 바꾸며 나아가서는 황철의 생산체계를 전부 산소에 의거하는 체계로 이행할 전망적인 목표를 세우고있었다. 그런데 일은 어떻게 되고있는가.

중건은 우두커니 서서 신석진의 차가 내달려간 시내쪽도로를 보다가 발을 떼였다.

방에 올라와 앉자바람으로 숱한 일감이 기다린듯 중건을 맞이한다. 결재, 질문, 합의, 토론 등 서너개가 넘는 전화기가 쉴새없이 다투어대며 그를 불러댔다. 그중에는 몇날몇시까지 내각에 도착하라는 지시도 있었다.

김중건은 안해에게 저녁식사는 사무실에서 하겠다는 전화를 하고나서 락원기계련합기업소 지배인을 찾으려다 그만두었다. 내각에서 용무를 보고 그길로 내려와 사직서를 제출하면 모든 일이 끝이 나겠는데 산소분리기에 신경을 쓴다는것은 푼수가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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