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4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6
(3)
삼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달님이 등에 손을 가져다 피를 막았다.
《달님아- 달님아-》
삼녀는 달님을 흔들며 찾았다. 애는 벌써 숨이 졌다.
삼녀는 어린애를 내려놓고 베감투쟁이를 무섭게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짓이예요?》
삼녀의 두눈에 쏟아져나오는 눈물과 함께 불줄기가 번개쳤다.
베감투쟁이는 달님을 찔러죽인 비수를 들고 능글능글 웃었다.
《여기엔 아무도 없다. 이제는 아깝게도 고운아가씨가 죽을 차례다. 의병장이 언제 오는가, 어느 길로 오는가를 말해주면 너는 살아날수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돼. 꽃같은 네 몸을 우리에게 차례차례 바쳐야 돼. 고노에상, 그렇지 않은가?》
무명수건쟁이가 음욕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삼녀의 몸을 더듬어내리면서 슬금슬금 등뒤로 다가들었다. 그놈의 손에도 비수가 번쩍거리였다.
《어서 말해라. 살고싶으면 바른대로 말해라.》
이 두놈은 조헌의병장을 없애치우라는 고바야까와의 지시를 받고 파견된 놈들이였다. 늘 쯔시마에서 건너와 밀수품을 가지고 조선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사귄탓에 조선사람과 같이 말을 잘하고 우리 나라 풍습까지도 속속들이 알고있었다.
이놈들은 조선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여기면서 인정에 막힌다는것을 아는지라 이것을 리용하여 엄마를 잃고 우는 불쌍한 어린애를 안고가면 자기들을 믿어주리라고 타산하였던것이다.
그래서 젊은 엄마를 죽이고 그 어린애를 안고왔는데 뜻밖에 그것이 탄로난것이다.
《빨리 말해. 말하지 않으면 저 계집애처럼 한칼에 죽는다는것을 알아야 해.》
베감투쟁이는 어린애의 피가 벌겋게 묻은 비수를 삼녀의 가슴앞에 내댔다. 그러나 삼녀는 그 칼을 본체도 하지 않고 달님을 고이 안아서 찔레꽃그늘아래 반듯이 눕혔다. 그리고 꽃가지를 꺾어서 어린애의 몸에 덮어주며 눈물을 흘리였다.
베감투쟁이는 삼녀의 어깨를 잡아쥐고 자기앞으로 돌려세웠다.
삼녀는 그 순간에 팔굽으로 놈의 명치끝 급소를 세차게 들이치면서 번개처럼 몸을 휘돌아 뒤에 있는 무명수건쟁이 사타구니급소를 발차기로 맹타격하였다.
베감투쟁이가 칼을 떨어뜨리며 뒤로 벌렁 자빠지고 무명수건쟁이가 또 칼을 떨어뜨리면서 앞으로 꺼꾸러졌다. 삼녀는 재차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올라 벌떡 일어나는 베감투쟁이 등허리를 절구공이처럼 내리찧었다. 놈의 허리척추가 꺾어지는듯 뚝 소리가 나더니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무명수건쟁이는 어느 사이 떨어졌던 칼을 집어들고 일어나 사납게 맞섰다. 두 적수의 눈길이 허공중에 부딪쳐 번개불이 이는것같은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놈이 《얏!》소리를 지르며 칼을 면바로 삼녀를 향해 던졌다. 삼녀는 날아오는 칼을 날래게 피하는것과 함께 눈깜빡할 짬도 주지 않고 몸을 한바퀴, 두바퀴 휘돌아대면서 놈을 향해 쏜살같이 돌입해들어가는데 그의 치마바람이 휙휙 소리치듯하고 독수리의 날개와 같이 펄럭이였다.
그러나 무명수건쟁이도 여간 놈이 아니였다. 놈이 얼마나 날래게 몸을 피하면서 삼녀를 맹타격했던지 그는 물에 허궁 날아떨어졌다. 물은 자그마한 담소여서 무릎에 찰 정도로 얕았다. 그것이 오히려 삼녀의 몸을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놈은 삼녀를 덮치면서 물속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삼녀가 번개처럼 물을 차고 솟구쳐일어난 후였다. 물속에서 치렬한 격투가 벌어졌다. 서로 치고 막고, 막고 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삼녀는 내가 네놈을 꺼꾸러뜨리지 못하면 우리 의병장님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치자 제 한몸에 전체 의병대의 힘이 모여든것처럼 놈을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물보라가 뽀얗게 일어나 해빛에 아롱졌다.
무명수건쟁이는 녀자가 마치 물귀신으로 변신한것같아 황급히 도망치려고 하였지만 때가 늦었다. 놈은 삼녀의 뒤발차기에 면상이 으깨져 물속에 코를 박고 일어나지 못하였다.
허리가 부러진 베감투쟁이는 엎어진채 꼼짝 움직이지 못하였다.
놈은 그래도 독기는 여전히 살아서 삼녀에게 미친개처럼 이발을 드러냈다.
《내가 졌다. 녀자라고 숙봤더니 내가 졌단 말이다. 어서 나를 죽여라.》
《이놈아, 너는 죽어도 옳게 죽지 못한다. 네놈은 어린애와 엄마를 무참히 죽였다. 어찌 네놈을 그저 죽일수 있느냐.
갈기갈기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겠다. 네놈은 네놈이 죽고싶은대로 죽을수도 없다.》
삼녀는 치솟는 분격을 누르지 못하였다.
시내아래쪽에서 말발굽소리가 뚜걱뚜걱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의병장
왜놈자객놈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삼녀가 빨래를 하였구만. 하하… 그동안 잘 있었나?》
조헌의병장이 반갑게 웃으며 말에서 내리였다. 덕보와 해동이도 벙글거리며 삼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울기는 왜?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 이게 웬 사람들이냐?》
조헌의병장이 죽은놈과 아직 살아있는 놈을 바라보고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삼녀는 여기서 방금 벌어졌던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하고 《제가 잘못했사와요. 제가 저놈들을 제꺽 눈치채지 못해서 저… 불쌍한 달…님…이 죽었사…와요.》 하고는 또 눈물을 흘리였다.
《그만해라. 어쨌든 네가 장하다. 그 어린것이 어디에 있느냐?》
삼녀는 찔레꽃가지들을 덮고 누워있는 달님을 보여드렸다.
조헌은 자는듯한 달님을 굽어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찔레꽃 한가지를 꺾어 어린애의 가슴에 놓아주었다.
덕보도 해동이도 찔레꽃가지를 꺾어 어린애를 덮어주며 눈물을 흘리였다.
조헌은 살아있는 놈앞에 다가갔다.
삼녀가 놈에게 말하였다.
《이놈아, 네놈이 기다리던 의병장님이 오셨다. 의병장님앞에서야 네놈이 말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너희들이 무슨 흉모를 꾸며가지고 여기로 왔느냐? 어서 말해라.》
베감투쟁이는 조헌의병장이 묻는대로 이실직고하였다.
나는 청주성 왜장 고바야까와의 명령을 받고 조헌의병장을 살해하려고 왔다. 청주성에는 병력이 얼마다, 화약창고와 군량창고는 어디어디에 있다, 성문파수교대시간은 아무때 아무때다 하고 있는 사실대로 다 쏟아놓았다. 그것은 얼마전에 청룡산골짜기에서 왜군 300을 족쳐버릴 때 사로잡았던 왜장의 토설과 꼭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