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6
(1)
지난 4월말에 청주성을 손쉽게 강점한 왜적들은 백성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았다. 머리허연 할아버지, 할머니이건 엄마품에 젖을 먹는 갓난아이들까지도 창으로 찌르고 칼로 목을 치고 불태워버리였다.
적장 고바야까와는 매우 교활하고 악착하고 로련한 놈이였다. 이놈은 충청도병마절도사가 있던 고루거각에 새 주인이 되여 틀고앉았다. 놈은 미처 도망하지 못한 관기들을 붙잡아다가 위협도 하고 금품을 주기도 하면서 날마다 연회를 차리고 춤과 노래를 시키였다. 그중에 제눈에 드는 기생을 데려다가 수욕을 채웠다.
왜졸들이 략탈해온 소와 돼지, 닭과 오리 등 집짐승들은 끝이 없고 군량창고엔 관군이 도망치면서 버리고간 식량이 수만석이나 쌓여있었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흥청이였다.
그러나 6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조선왕을 생금한다고 하면서 평양까지 짓쳐들어갔던 고니시와 구로다왜장들은 그자리에 주저앉지 않으면 안되였다. 맥이 빠졌던것이다. 부족되는 병력과 군량을 보충해야 하였다.
그 영향이 천리나 먼 청주까지 미쳐왔다. 고바야까와는 수천의 병력과 수천섬의 식량을 평양으로 보냈다. 그에게는 3 000의 군졸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줄어드는 병력이 보충되는것처럼 보이려고 꾀하였던것이 말짱 드러나 쥐도 새도 모르게 300여명이 몽땅 몰살당하였다.
고바야까와는 우리안에 갇히운 짐승처럼 성이 독같이 나서 수하장수들에게 책임을 들씌웠다.
《그대들은 무맥하고 바보처럼 어리석어서 수백의 우리 군사들이 죽었다. 어떤 놈들이 우리 군사들을 야금야금 없애치우는지 알아내라. 그리고 그들을 토벌할 대책을 보고하라.》
《하잇-》
수하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하고 흩어졌다. 이틀만에 렴탐군왜졸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조헌의병대와 령규승병대가 청주성주변의 깊은 산속에 배회하고있다는것이였다.
《조헌의 의병대?! 조헌의 의병대라면 보은차령에서 충주의 아군을 300명이나 몰살시킨 놈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조헌의 의병대가 청룡산에서 우리 군사 300을 또 격살시킨것이 분명하다.》
고바야까와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입고있는 갑옷에 달린 물고기비늘같은 쇠판대기들이 잘랑잘랑 흔들리였다. 받는 황소의 뿔과 같이 치솟은 투구아래 털황충이같은 두눈섭이 꿈틀거리고 또 그 아래 불구슬같은 두눈알이 파르르 떨었다.
《그렇소이다. 그 의병들은 조헌의 말이라면 죽는한이 있더라도 따른다 하오이다.》
수하장수 하나가 자기만이 큰 비밀을 알고있는듯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고바야까와는 이미 그것을 알고있었다. 조선의 관군들은 다는 그렇지 않지만 자기들의 장수를 잘 따르지 않을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장수들을 위해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헌의 의병들은 조헌을 위해 생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관군장수들은 민심을 잃은 반면에 조헌은 민심을 얻었기때문이란다.
고바야까와는 조선을 침략하기 직전에 벌써 조헌의 상소문내용을 한성왜관을 통하여 알게 되였다. 자기 나라 사신일행을 목베이고 나라의 존엄을 굳건히 하며 왜적의 침입을 막아낼 방비를 튼튼히 다지자고 했다는 조헌이 오늘은 의병을 뭇고 일어난것이다.
지난해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8도에 침략괴수들을 임명할 때 충청도를 분담맡게 된 가테이는 충청도선비 조헌이 가장 큰 적수임을 알고 자기의 심복부하에게 조헌을 모살하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실패하였었다. 그때에 그를 없애치웠다면 조헌의 의병대가 무서운 상대로 눈앞에 나타나지 못하였을것이였다.
이런 생각을 곱씹던 고바야까와는 수하장수들에게 살기찬 눈길을 보냈다.
《조헌의 의병대를 없애치워야 하겠다. 그러나 성을 비워놓고 그들을 따라다니다가 그들의 매복에 걸려 화를 당할수 있으니 그런 방법으로는 안된다. 반드시 자객을 파하여 조헌을 감쪽같이 죽여버려야 한다. 지난해에는 자객이 오히려 붙잡혀 실패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어코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헌의 의병대는 물먹은 흙담처럼 무너져내릴것이다. 알았는가?》
《하잇-》
수하장수들은 투구를 쓴 머리를 번쩍 들어올리며 대답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