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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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는 용광로를 살리기 위한 방도를 계속 탐구해보기로 하고 일단락 마무리지었다.
회의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김중건은 내처 입을 꾹 다물고 여가시간이 있으면 북문지구를 거쳐 남문지구를 돌아보군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산소열법용광로며 산소분리기직장부근에 한참이나 머물러있다 돌아가군 하였다.
황혼이 짙은 이 저녁에도 그는 석양빛때문에 더 시커멓게 보이는 산소분리기현장건물부근의 나지막한 둔덕에 앉아 한숨을 내뿜으면서 산소열법용광로며 중량레루, 5. 14직장들을 얼이 나간 사람처럼 둘러보고있었다. 어제저녁에 밤깊도록 사무실책상을 마주하고 사직서를 쓰고나니 눈에 띄는 기업소의 모든것들이 례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황철의 운수직장 운전사의 아들로 태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송림공업대학과정을 거쳐 기술발전과에 발을 들여놓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제철소와 운명을 같이하며 살아왔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돌이켜보면 한창시절에는 기쁜 일도 많았고 일할 멋도 있었으며 밤을 새워 일해도 피곤을 몰랐다.
그 나날에 김중건은 자기의 성실한 땀과 노력, 마를줄 모르는 탐구와 열정의 열매가 제철소의 생산실천에 성과적으로 도입될 때마다 자만이 아니라 보다 큰 목표를 내걸고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였다. 이런 속에서 중건은 평범한 기술원으로부터 하나, 둘 큰 사업을 맡아안았고 오늘은 지배인으로 일하게 되였다.
제철소와 운명을 같이하며 생활해온 나날속에 제일 잊혀지지 않는것은 기술발전부기사장사업을 하면서
보다는 온갖 중상과 시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시련을 이겨내며 마침내 5평방욕조식산소열법용광로를 세우고 첫 쇠물을 뽑아냈을 때, 그때 김중건이 느꼈던 감격과 희열, 승리자의 쾌감은 지금도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를 심정이다.
(그날 병팔아바이가 선철이 쏟아져나오는걸 보구서두 믿어지지 않아 쇠물길을 따라 계속 오르내렸댔지.)
김중건은 히죽이 웃으며 아까부터 뽑아들었던 담배에 라이터불을 갖다댔다. 즐거운 추억에 잠기니 쓰기만 하던 담배맛이 류달리 달았다. 어찌나 깊숙이 들이빨았는지 한번에 3분의 1가량의 담배대가 타든다. 증건은 담배연기를 세게 내뿜으며 또 한번 히죽이 웃었다.
(그담엔 채 식지 않은 괴를 들구 《이게 진짜 우리 철이야? 응? 어디 말 좀 해보라구. 진짜 이게 저놈의 밥집에서 나온 우리 선철이 맞냐 말이야? 아, 입이 얼어붙었어? 왜 말 안하구 반편들처럼 질질 눈물만 짜며 서들있어, 응?》하며 고래고래 소리치다가 장갑이 타는 바람에 손바닥을 다 데였지.
또 그담엔 도와 중앙에서 숱한 사람들이 내려와 축하해주었고 시험로성공소식이 대서특필로 《로동신문》에 게재되였고.)
김중건은 당의 배려로 산소열법용광로시험생산에 기여하였던 과학자, 기술자, 일군들과 로동자들전원이 평양에 올라가
(그랬던 우리가, 그랬던 우리 황철이 왜 그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김중건은 홀연 뒤따르는 자문에 원래의 감정으로 되돌아갔다.
(그랬다. 우리는 시험로의 성과를 공업화성공에로 전진시켜야 했다. 그런데 소기의 성과에 도취되여 2. 8비날론련합기업소에서 가져온 산소분리기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상가동시킬 잡도리를 늦추고 현행생산에만 몰두했었지. 아니, 현행생산이라는것도 사실은 앞돌을 뽑아 뒤에 고이고 바쁘면 이번에는 뒤돌을 뽑아 앞에 맞추는 식으로 일해온것이 아니였던가. 그러다나니 산소분리기는 자주 가동을 멈추었고 그러는 속에 비바람, 눈바람속에 부식되고 그나마도 부분품을 더러 돌려써서 지금은 허울만 남게 되였다. 그것이 안타까와 설계실에 있던 옛친구 함승일이 찾아와 준절하게 말했었지. 발등의 불똥이 따겁다고 심장을 얼구어버리면 되는가, 산소분리기를 이붓자식 대하듯하다가 나중엔 뭘로 주체철을 뽑으려 하는가.
그런데 나는 뭐라고 했던가. 너도 내 자리에 앉아보라. 그 말에 한탄을 하며 끝끝내 그는 기업소를 떠나갔지. 그때에라도 내가 정신을 차렸더라면. 아니, 우리 일군들이 당의 의도대로 일하지 못한것이 어찌 산소열법용광로문제만이였는가.)
돌이켜볼수록 무거운 자책감과 죄스러움뿐이였다.
김중건은 들고있던 담배를 내버리며 괴로움이 가득 실린 한숨을 내쉬였다.
(물론 이런 문제는 대부분 내가 지배인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있은 일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 일군들에게 책임을 떠미는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이다. 나에게는 그래 책임이 없단 말인가. 나는 황철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나도 일군의 한사람이였는데 기업소가 이런 형편에 처할 때까지 뭘하고있었는가.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