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 회)
제 1 장
3
(2)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한켠으로 밀어놓으시며 헌헌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계획초안은 더 연구해봐야 할것같소. 나도 생각해보겠소. 그리고 동무는 당분간 나와 함께 다닙시다. 그러느라면 새로 맡은 직능이랄가,
하여간 새 사업을 빨리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거요.》
다음화제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의 중요생산공정현대화문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영호가 전자공업상출신이므로 이에 관해서는 큰 선에서 방향을
그어주는것으로 그치시였다.
담화가 거의 끝나갈무렵에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차다반을 든 부관이 들어섰다.
말씀을 멈추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영호에게 차를 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잔을 드시려다가 문득 영호에게 물어보시였다.
《무슨 차인지 한번 알아맞춰보오.》
주영호는 차잔굽을 맴돌며 피여오르는 김발을 불어날리고나서 냄새를 맡은 다음 한모금 맛을 보았다. 머리를 기웃거리다가 다시 한모금 맛을 본
그는 아무래도 알수가 없어 어정쩡한 대답을 올리였다.
《삼지구엽초차같기도 하고 뒤맛은 가시오갈피차같기도 하고… 딱히 모르겠습니다, 장군님.》
《모르겠다?… 하긴 그럴수 있소, 동문 차음료에 익숙되지 못했으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시며 주영호를 리해하여주시였다.
《이건 가시오갈피차요. 차음료에 무관심해도 동무는 오늘 이 차를 마셔야 하오, 정신육체적피로에 보약이니까.》
영호는 그이의 다심한 념려에 마음이 뜨거워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조금 드시고나서 유쾌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 가시오갈피차를 보니 뭔가 떠오르는것이 있구만. 내 사담 하나 할가. 이건 어버이수령님께서 내게 해주신
얘기인데…》
집무실에는 차바퀴가 굴러가는 력동적인 동음과 함께 그이의 활기넘치신 음성이 울려퍼졌다.
《어느해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이전 쏘련의 하바롭스크주당 제1비서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그와 동석식사를 하신적이
있었소. 그런데 수령님께서 가시오갈피술을 권하시자 그 사람은 자기는 인삼술만 마시겠다고 하더라는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쏘련사람들이 원래 고려약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있었는데 특히 체르노빌원자력발전소사고이후부터는 인삼에 관한것이라면 쪽을 못쓴다고 하더라오.
수령님께서 말씀해주셨소. 〈당신 말이 옳다. 쏘련사람들이 그걸 찾는것은 인삼으로 만든 약을 먹으면 방사능을 많이
방지하기때문이다. 그러나 가시오갈피로 만든 약을 장복해도 방사능을 많이 방지할수 있다.
체르노빌사고직후에 서도이췰란드(당시)의 작가 루이저 린저선생이 방사능치료예방약을 부탁한적이 있다. 그래 내 인삼과 함께 가시오갈피엑스도
보내주었는데 후에 인사하기를 자기는 그걸 먹고나서 방사능에 전혀 오염되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 당신에게 가시오갈피술을 권하는것이다.〉라고 말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소리가 방사능방지약으로서는 인삼이상 없는줄 알았는데 총비서동지의 말씀을 들으니
가시오갈피술을 권하는 까닭을 알겠다며 돌아갈 때 자기에게 가시오갈피엑스를 좀 주셨으면 하더라는거요. 가서 가시오갈피엑스로 꼬냐크를 만들어
장복하겠다고 말이요.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면서 〈가시오갈피엑스는 달라는대로 주겠다. 그대신 당신에게 부탁을 하나
하자. 우리 정무원(당시) 석탄공업부장이 당신네하고 원동지역에서 력청탄개발을 함께 하자는 계약을 맺었는데 진척이 되지 않고있다. 그러니 당신이
돌아가서 계약이 실천되도록 많이 힘써주어야겠다.〉라고 말씀하셨다오. 한데 뒤의 일은 잘되지 않았소.》
김정일동지께서 뒤말씀은 하지 않으시였지만 주영호는 결과를 알고있었다.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주당 제1비서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어 인차 실무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다. 우리측에서는 당시
정무원 석탄공업부장 신태록이 이 사업을 맡아하였다. 그때 맺은 계약에 의하면 로력과 기술수단을 우리가 대고 개발운영하는 조건에서 력청탄의
90%를 우리가 가지게 되여있었다. 하지만 이 계약은 그후 쏘련이 무너지자 아주 흐지부지되고말았다.
《그 일은 저두 들어 좀 알고있습니다.》
주영호는 차잔을 놓으며 그이께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 얼마나 콕스문제로 마음을 쓰시였으면 차를 드시는 그 여가시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였겠소. 사실
수령님께서는 당시 국제정세로 보아 그러한 계약들이 실행되지 못하리라는것을 예견하고계시였소.》
《장군님, 정말 장군님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력청탄이나 원유가 가시오갈피처럼 우리 땅에서
맘먹은대로 얻어낼수 있는 자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단위들이 요구하는대로 푹푹 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요즘처럼 아프게 드는
때가 없는것같습니다.》
주영호는 계속하여 원료, 연료때문에 집에까지 찾아와 하소하던 황철지배인 김중건이를 례들어 말씀을 드리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오죽 속이 탔으면 집에까지 다 찾아왔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황철지배인의 심정을 리해하여주시였다. 그러나 무엇인가 서운한 감정에
계시였다. 황철지배인이 력청탄이나 중유가 아니라 주체철때문에 부총리네 집에까지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주영호가 나간 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손을 잡으려다가 그만두시였다. 주영호의 말이 심상히 스칠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드시였던것이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 얼마전에 2. 8비날론련합기업소를 돌아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업소가 산소분리기때문에 신고한다는것을 아시고 《어떻게 한다?! 락원엔 금방 갔다왔는데 그들에게 또 과업을 줄수는 없는것이고 어데 예비가 없을가? 생각해둔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어디
말해보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한 일군이 나서서 《방도는 있습니다, 장군님. 황해제철련합기업소에서 산소열법용광로를 돌리느라고 우리한테 있던
산소분리기를 가져다썼는데 그걸 도로 반환하여 우리가 쓰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요새 알아보니 황철은 산소분리기를 무슨 원인인지 별로 쓰는것같지 않습니다.》라고 제기올리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뜸 그 제기를 자르시면서 《여기도 중요하지만 주체철 역시 중대사요.
황철것은 넘겨다보지 말라구. 내 평양 가서 2. 8산소분리기문제를 대책 세워주겠소.》라고 하시였다.
(2. 8비날론련합기업소의 대형산소분리기를 황철에 이관한것은 1999년도쯤일것이다. 2. 8동무들이 그걸 내놓으면서 서운해하던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은 산소분리기를 내놓게 된것은 공장이 제구실 못해서 받는 응당한 대접이라고 하면서 눈물이 글썽해하였다. 그러면서도 자기네 산소분리기가
주체철시험에라도 이바지하게 되였으니 다행이라고 말하였었지.
그런데 황철에선 이런 귀중한 산소분리기를 어떻게 해놓았길래 2. 8동무들이 반환해달라고 하는것일가. 혹시 대보수에 들어가 세워놓은걸 가지고
그러지는 않는지, 혹은 사용하다가 수리가 제기되여 세워놓을수도 있지 않는가.
아니, 그럴수가 없다. 2. 8동무들이 나에게 근거없는 제기를 했겠는가. 그렇다면 황철이 정말로 산소열법을 포기?)
김정일동지께서는 금시 드셨던 불길한 물음을 미련없이 털어버리시였다.
(아니, 아닐것이다. 황철은 5평방욕조식용광로에서 조선의 쇠물을 부어내여 산소열법개척에서 선구자기업소의 영예를 떨치였다. 뿐만아니라 중유를
대신하는 고온공기연소기술을 맨먼저 도입하여 성공시킴으로써 이 분야에서도 1인자기업소가 되였다.)
그이께서는 뇌리속에 드시는 의문을 애써 이런 선상에서 풀고싶으시였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여전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물러서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등부등 다가들며 지꿎게도 답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정말 시험로성공이후로 황철에서 이렇다할 소식이 올라온것이 없는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다나니 자연히 황해제철련합기업소 지배인임명문건이
올라왔을 때의 일을 회상하게 되시였다.
그이께서 기사장사업을 하던 김중건이를 지배인으로 임명하는데 선뜻 동의하신것은 대기업체를 책임져야 할 일군으로서의
자질을 갖춘데도 있지만 그가 전 지배인 김병팔이와 함께 설계를 시작할 초기부터 산소열법에 관여하였고 오늘은 이 기술에서 로장으로 불리우고있다는
점이 마음에 드시였기때문이였다. 이런 사람이 황철의 채를 잡으면 주체화를 억척같이 밀고나갈수 있겠다고 보시였다.
(헌데 일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일이 잘된다면야 왜 황철지배인이 구태여 부총리네 집에까지 찾아다니겠는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분석하는것은 아닌지. 하지만 나타난 사실은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고있지 않는가.)
자문자답은 꼬리를 물었으나 끝내 속시원한 해답을 찾지 못하시였다.
…밤도와 달리던 야전렬차는 평양역이 가까와오자 속도를 점차 늦추었다.
수행일군들과 함께 멎어선 야전렬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수도의 거리며 역구내를 둘러보시다가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
《일정을 바꿉시다.》
그이께서는 놀라와하는 일군에게 담담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 아무래도 황철에 가봐야겠소. 아침식사는 가면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