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8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3
(2)
왜놈들은 전멸되였다.
다만 적장 하나만을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미리 계획하였던것이였다. 조헌의병장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해동이를 자기옆으로 불렀었다.
《나는 싸움북이 울리는 첫 순간에 왜놈우두머리로 짐작되는 놈의 말을 쏘아 꺼꾸러뜨릴터이니 척후장은 풀판가까이 내려가 숨어있다가 그놈이 말에서 떨어져내리거든 놓치지 말고 반드시 사로잡아야겠다. 그놈의 토설을 받아내서 청주성왜놈들의 형편을 알아내야지.》
해동이는 씩 웃었다.
《알겠소이다.》
그는 산기슭을 불어내리는 바람처럼 산비탈을 내려가 숲속으로 자취없이 사라졌다.
조헌은 각 위장들에게 전령을 내리여 싸움이 시작되는 첫 순간에 왜장이 말잔등에서 떨어지거든 그놈을 사로잡아야 하겠으니 쏘지 말라고 하였었다.
일은 바로 그렇게 되였다. 왜졸들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왜장은 허둥지둥 숲을 헤쳐 도망하다가 호랑이처럼 덮쳐드는 해동이에게 붙잡혔다. 해동이는 그놈을 눈깜빡할 사이에 오라를 지워 의병장 조헌에게 끌어갔다.
조헌의병장은 의병들이 전장을 샅샅이 수색하고 정리한 다음 전체 부대앞에서 오라를 지운 왜장놈을 내다세웠다.
《의병형제 여러분, 우리는 이번 싸움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이 골짜기에 기여들었던 300여놈을 순식간에 무찔러버리고 왜놈우두머리 한놈만 사로잡았습니다. 바로 이놈입니다.》
그는 한손을 들어 왜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투구를 벗기운 왜장의 머리에 조이삭깜부기같은 상투꼭지가 흐트러져있었다. 놈은 겁이 잔뜩 낀 두눈을 희번득이면서 여기저기를 바라보다가 자기를 향하여 쏟아져나오는 의병들의 불줄기같은 눈길에 맞부딪쳐 고개를 떨구고 아래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여러분이 이놈을 보고 적이 어떤 놈들인가를 알게 하자고 이놈을 내다세웠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적과 싸워이길수 있기때문입니다.
내 이놈에게 너희들이 어찌하여 어두운 새벽에 여기에 왔다가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여기를 떠나 성안으로 들어가는 놀음을 날마다 하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놈이 하는 대답이 제놈들이 청주성을 점령할 때는 7 000여놈이였는데 평양성까지 쳐들어갔다가 맥을 추지 못하고있는 왜놈들에게 두차례나 보충병을 보내주어서 지금은 3 000명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희네 병력이 날마다 불어나는것처럼 보이려고 남이 보지 않는 야밤에 도적고양이처럼 성밖을 나왔다가 조선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성안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합니다.》
《와하하하, 미꾸라지 먹고 룡트림한다더니 허세를 부려보자는고나!》
《글쎄말이여, 시라소니 범흉내를 내서 어찌 보자는게여, 하하하.》
의병들이 이렇게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조헌의병장은 그들과 함께 껄껄 웃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청주성왜놈들의 약세를 알았고 우리를 속여보려는 왜적의 얕은 꾀를 알았습니다. 이것을 안 다음에야 우리가 어찌 왜놈들을 이기지 못하겠습니까.》
《옳소이다. 우리가 이따위 놈들을 이길수 있소이다.》
《우리는 왜놈새끼들을 쥐새끼잡듯이 할수 있소이다.》
의병들은 신심에 넘쳐 너도나도 솟구치는 의기를 안고 드설레였다.
《여러 의병들, 이놈을 여기에다 세운것은 또한 여러분들이 이놈에게 눈이 하나 더 있는가, 귀가 하나 더 있는가, 팔다리가 하나씩 더 있는가를 보라는것입니다. 만약 왜놈들이 우리보다 그것이 하나씩 더 있고 대가리도 둘이 있다면 우리가 좀 겁을 먹을수도 있겠지만 보다싶이 이놈에겐 우리와 별다른게 없습니다. 그러니깐 왜놈들이라고 별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놈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놈들을 족쳐버릴수 없겠습니까.》
의병들이 또다시 와그르르 웃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병장의 말마디들이 귀에 쏙쏙 박혀들어와 즐거움과 함께 무한한 용기가 솟구치는것을 느껴안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놈들을 얕잡아보지는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왜놈들처럼 흉악한 살인귀는 없습니다. 이 악귀들을 단매에 때려눕힐수 있는 무술을 닦아야 하고 지략을 소유해야 합니다.》
《알겠소이다.》
의병들이 세차게 터치는 대답이 청룡산골짜기를 들었다놓았다.
잠시후에 조헌의병장은 왜놈들의 조총 100여자루와 많은 병쟁기들을 거두어가지고 전체 의병들을 청룡산의 깊은 산중으로 인솔해갔다. 청주성을 치려면 청주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던것이다.
조헌의병장은 의병들이 더없이 장하고 미더웠다. 더구나 죽산(정암수)이가 고마와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는 나이로 젊은이들과 꼭같이 힘들고 어려운 싸움에 목숨을 내대고 나서서 의병장을 돕고있는것이다.
그는 조헌의병장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가면서 즐겁게 웃었다.
《의병장님, 우리 후위대는 겨우 도망쳐나오는 왜놈 대여섯놈밖에 잡지 못하였소이다. 원참, 좀 남겨놓지 않구…》
《죽산후위장님, 너무 섭섭해마시오이다. 왜놈 한놈이 우리 백성을 수십이나 해칠텐데 대여섯을 잡았으니 우리 백성을 얼마나 많이 살려낸셈이오이까. 후위대가 큰 공을 세웠소이다. 하하하.》
《응 그래?!… 듣고보니 그 말도 옳군. 하하…》
《옳다마다요. 하하…》
의병들은 두사람이 나누는 유쾌한 웃음소리를 따라 와하하 웃었다. 참말이지 이 새벽에 때려잡은 왜적은 300여놈이지만 그놈들이 해칠수 있는 우리 백성 수천명을 살려낸것과 같은것이다. 이런 생각이 그들의 사기를 더 높여주고 들끓게 하였다.
정암수는 눈물이 그득한 두눈을 슴벅이면서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우리 의병대가 보은차령계선에서도 왜적 300을 쳤고 이번에 또 300을 쳤는데 멀리 룡만(의주)에 계시는 주상전하께서 아시면 충청도하늘가를 바라보시며 한점 시름이라도 가시리다. 의병장은 첩보장계를 띄우시오이다.》
《예, 그렇게 합시다. 청주성을 수복하고 아울러 장계를 올립시다.》
《청주성을 빼앗은 다음에? 음, 그게 더 좋겠군. 임금이 한꺼번에 기쁘시게!》
정암수는 조헌의병장이 더없이 탄복스러웠다. 아, 이 얼마나 량심이 곧고 맑은가. 서례원이나 리각과 같은자들은 왜놈들이 무서워 도망질에 급급하다가도 남들이 목베인 왜놈들의 대가리를 따다가 제가 세운 공으로 만들어 껑충껑충 벼슬을 올리려고 비렬한짓도 서슴지 않는데 조헌은 이렇듯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군공을 자랑하지 않는것은 원쑤와 싸워이기는것보다 훨씬 어려운것이다.
조헌은 립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제몸을 바치고있는것이다. 그가 립신양명을 바랐다면 대궐주추돌에 이마를 짓쪼아 죽으려 하지 않았을것이였다.
어느덧 해가 높이 떠올라 울창한 나무가지들사이로 부채살같은 빛을 뿌리였다. 의병들은 산중의 오솔길을 찾아 걸음발에 날개가 돋힌듯이 숲속을 누벼나갔다.
한낮이 가까와올 때에 조헌의병장은 이미 위장들과 의논해두었던대로 청룡산의 동쪽산줄기에 있는 거북동에 이르러 대오를 멈춰세웠다. 여기에 의병들의 림시거처지를 정하였던것이다.
웃기도 잘하고 롱질을 잘하는 의병 하나가 싱글벙글대며 한마디 하였다.
《여기가 참말 거북동이 옳긴 옳군그래. 여보게들, 저기 산잔등을 좀 보라구. 수거부기가 암거부기를 따라잡으려구 뒤쫓아가고있는걸. 하하하.》
그러자 의병들이 암놈, 수놈이라는 거부기바위를 바라보며 즐겁게 한마디씩 하였다.
《하, 저것 보지. 참말 보태지 않구 그럼직해보이는구만.》
《글쎄 저 수거부기가 암거부기를 따라잡으려구 몇백년을 저렇게 뒤따르고있대여. 암놈과 기어이 혼례를 치르려구. 하하-》
능청스러운 다른 의병 하나가 이렇게 제 생각을 보태니 웃음판이 한바탕 들끓었다.
《허, 이 사람 보게. 오지자웅이라구 까마귀 암놈수놈을 갈라보기 힘든것처럼 거부기암수를 갈라보기 힘든판에 어떻게 거북신부와 거북신랑감을 구별한단 말인가.》
의병들은 그 말도 옳다고 너나없이 즐겁게 웃었다. 그들은 이 아침에 청룡산 서쪽산줄기 골짜기에서 왜놈 300놈을 본때있게 족쳐버린데다가 한사람도 상하지 않고 거북동까지 무사히 와서 휴식도 하고 다음 싸움준비를 든든히 하게 된것이 기뻐서 이렇게들 거북바위를 놓고도 마냥 즐거워하는것이다.
조헌의병장은 의병들이 교대별로 밥을 지어먹게 하고 계곡의 맑은물에 목욕도 하게 하고 조총을 다루는 법을 익히게 하였다.
보은차령싸움에서 로획한 조총 150여자루, 이번에 로획한 조총 100여자루해서 도합 250여자루를 손에 쥐게 된것이 의병대의 큰 힘이 된것이다.
그는 승병장 령규스님을 찾아가리라고 결심하였다. 승병대와 힘을 합쳐 청주성을 해방할 의논을 하고싶었던것이다.
조헌의병장은 승병대를 찾아가기 전에 정암수후위장을 따로 만났다.
《후위장님, 화살이 떨어져가고있소이다. 화살이 없이야 왜적을 어찌 치리까. 그래서 제가 후위장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데 들어주시겠소이까?》
《의병장은 명령할뿐이고 위장은 명령을 수행할뿐이오이다. 어서 령을 내리시오이다. 내 목숨을 걸고 행하리다.》
《원, 별말씀이오이다. 죽산선생에게야 어찌 령을 내리오리까. 부탁을 할수밖에… 화살이 긴급해서 그러오이다. 선생이 옥천에 급히 돌아가서 옥계와 계곡동에 있는 야장간을 맡아주시오이다. 다른 병쟁기는 다 그만두고 마름쇠와 화살만을 만들어내도록 총찰해주시오이다.
옥계와 계곡동야장간에 각기 장공인 서넛씩 남아 일을 하고있는데 여기서 또 네댓명을 더 데리고가도록 하오이다. 후위장님을 호위삼아 기마병 셋을 더 보내여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화살과 마름쇠를 싣고오도록 하겠소이다.》
정암수는 장공인 넷을 데리고 기마병의 호위를 받으며 그날로 옥천을 향해 떠났다. 그는 이 작별이 마지막작별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