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4 회)
종 장
그러시다가 《조국진군》편 조각군상속의 유격대지휘관의 모습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 모습이 김일, 최현으로, 오진우, 림춘추로 변하며
(김일동지, 최현동지, 생각납니까? 내가 이 탑을 세울 때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만 세우면 오늘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우리는 무서울것이 없다고 말했지요.
그래서 이 탑을 세운 이듬해 《푸에블로》호사건이 터지고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왔을 때 나는 여기로 왔댔습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곁에 없다. 세월은 이렇게 멀리도 흘렀다. 하지만
대기념비의 군상들을 보며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는 《고난을 뚫고》 조각군상에서 소년대원의 손을 잡아 이끄는 녀대원의 조각상앞에서 또 걸음을 멈추시였다.
수행원들도 걸음을 멈추고
한초, 또 한초…
그 시각
군상속에
잊을수 없는 그 나날의 창작가들…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으시던
《이 탑을 세울 때 리석이가 일을 잘했소.》
한걸음 더 옮기시니 참관자들이 누구나 살아움직이는것같다고 찬탄을 터친다는 저 어린이는 머슴살이하던 김량남의 어린시절 모습인가, 그토록 정을 부어주었건만 그 정을 다 받지 못하고 야속하게도 일찌기 떠나간 량남이…
어째서 여기에 오니 잊을수 없는 사람들이 이렇듯 한꺼번에 떠오르는것인가. 우리 혁명전통의 귀중한 원전자료들을 발굴정리하는데서 누구도 대신하지 못할 공적을 세운 항일투사 림춘추, 눈같이 하얀 양복을 함께 지어입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던 오진우, 허담, 김태호… 그 사진들이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의 전우관에 전시되여있다지.
김태호의 가슴에 영웅메달을 달아주시던 일도 금시런듯 다시 떠올랐다.
신인하, 당사상사업의 주요부문을 책임지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위업수행에 열정과 재능을 깡그리 바치던 그가 일본의 원예학자가
육종하여 보내온 김정일화를 안고
조선혁명의 혈통을 순결하게 고수하고 당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축성하던 그 나날의 열혈의 동지들. …
《저 기단우에 올라갈수 있지? 좀더 가까이 가서 봅시다.》
도당책임일군과 강사가 서둘러 나서며 만류했다.
《안됩니다
《그래두 올라가보자구. 이 탑은 우리 나라 혁명전통대기념비의 제1호야, 평양에 있는 만수대대기념비가 2호구. …》
대기념비 제1호인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1960년대의 령마루에 높이 솟아올랐기에 년대와 년대를 이어 항일의 전구들이 혁명전통교양의 거점들로 꾸려졌고 세기를 이어 오늘도 우리 인민을 백두산으로 부르고있다.
《이 대기념비를 세울 때 반당수정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소. 준엄하고 간고한 낮과 밤이였지.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해야 하는 치렬한 계급투쟁이기에 심혈을 불태우며 이 탑을 대기념비로 일떠세웠소.》
《동무들은 잘 알겠구만.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면 오전이 좋소, 오후가 좋소?…》
전혀 뜻밖의 물으심이였다.
《여기 해비침각도로 보아 오전시간에 찍을 때가 사진이 제일 잘됩니다.》
《그럴거요. 그래서 내가 오전 10시부터 11시사이에 오자고 했던거요. 내
백두산혈통만을 꿋꿋이 이어
이윽고
《나는 우리 나라 혁명전통대기념비의 제1호인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인민상을 수여하자는것을 제의합니다.》
순간 끓어오르는 감격과 기념비의 거대한 붉은기가 세차게 퍼덕이는것같은 환희가 파도쳤다.
2010년 7월 8일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인민상을 수여한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942호가 발표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