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 회)

제 5 장

13

 

사연많은 한해 1967년이 저물어가고있었다.

당중앙위원회청사 정문을 나선 승용차는 침묵속에 미끄러지듯 조용히 달리고있었다. 밤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들도 이밤의 정적을 깨칠가 살풋이 시창가에 날려들었다가는 조심스레 사라졌다. 두줄기 전조등빛이 서리서리 엉켜드는 눈송이들을 밀며 앞으로 달렸다. 지붕에 흰옷으로 단장한 보통문을 지나 승용차는 동쪽교외로 향하였다. 자정이 가까와오는 늦은밤이여서 집집의 창문들은 잠에 들었고 공공건물의 장식등들도 고요속에 졸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향륜을 돌리시며 옆에 앉은 김량남을 얼핏 돌아보시였다.

예술영화촬영소에서 당중앙위원회로 오신 그이께서는 퇴근시간이 되여오자 김량남에게 전화로 오늘 밤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방에서 기다리라고 이르시였다. 어디로 무슨 일때문에 간다는것을 말씀하지 않으시였기때문에 김량남의 마음이 저으기 긴장되여있으리라고 그이께서는 가늠하시였다. 그의 초조한 심정을 풀어주고싶으셨지만 선뜻 아무 말도 할수 없으시였다. 그이의 마음은 량남이보다 더 쉬임없이 갈마드는 추억의 물결을 헤치고계시였기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해마다 12월의 이날이면 늘 자정이 가까와오는 이 밤길을 혼자 달리군 하시였다. 이런 밤길을 가지 못하실 때도 적지 않았다.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보좌하시여 지방에 계실 때에는 마음속으로 이 길을 달리군 하시였다. 동행자가 한번도 없었던 이 밤길을 오늘은 김량남과 함께 가고계시였다.

승용차는 흰눈이 어느새 한뽐정도 덮인 무연한 논벌을 지나 앞으로 달렸다. 시창앞으로 희미한 가로등빛속에 산발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성산이였다.

대성산기슭에서 그이께서는 승용차를 멈추시였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문을 여시고 가방을 꺼내드시였다. 김량남이 그 가방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그이께서는 가벼이 만류하시고 눈덮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시였다.

김량남은 그이의 팔을 조심히 잡았다. 산등성이로 오르면서 량남은 몇번이고 지치여 넘어질듯 비칠거리였다. 그때마다 그이께서는 김량남의 팔을 꽉 당기시여 자신의 곁으로 세우시였다. 결국 량남이가 그이를 부축하는것이 아니라 그이께서 김량남을 부축하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점점 가빠지는 김량남의 숨소리를 들으시고 잠시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렇게 잠간씩 동안을 두시다가 김량남의 숨소리가 고르로와지면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어느덧 그이께서는 김량남을 데리고 대성산의 등성이에 오르시였다. 그이께서 쥐신 전지불빛에 소나무들이 흰눈송이를 떠이고 서있는 고즈넉한 등성이가 나타났다. 그 등성이에는 자그마한 분묘가 있었다. 비석도 없고 비돌만 있는 분묘였다.

분묘앞에 이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낮고 갈리신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여기에 우리 어머님이 계시오.》

《?!》

김량남의 심장은 이름할길 없는 충격에 금시 터질듯 활랑거리였다. 이어 온몸이 화실에 뛰여든듯 확확 달아올랐다.

(김정숙어머님께서?!)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돌에 쌓인 눈을 두손으로 정히 쓸어내리시였다. 김량남이 서둘러 그이와 함께 비돌의 눈을 쓸어내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방에서 소주 한병과 준비해가지고 오신 잔을 꺼내시였다. 그러시고는 잔을 비돌우에 놓으시였다.

《래일이 우리 어머님의 생신날이요. 그래서 오늘 밤에 혼자 조용히 찾아오려다가 문득 동무 생각이 나더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김량남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흰눈이 소리없이 내리여쌓이는 김정숙동지의 분묘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나는 그래도 어머님이 그리울 때마다 이렇게 찾아볼 묘소라도 있지만 동무야 울고싶어도 울 곳이 없는 사람이 아니요. 내가 살면서 보니 사람에게는 마음놓고 울 곳이 있어야 하겠더구만.

우리 어머님도 아동단원 금순이의 동생과 함께 왔다는걸 아시면 기뻐하실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잔에 술을 부으신 후 김량남과 함께 어머님께 삼가 인사를 올리시였다. 그러시고는 가방에서 깔개를 꺼내시여 분묘에서 조금 떨어진 소나무밑에 펴놓으시였다.

《량남동무, 오늘 밤은 우리 함께 어머님의 생신아침을 여기서 맞읍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잔에 술을 부으시여 김량남에게 주시고 자신도 드시였다. 워낙 약한 체질이여서 술을 즐기지 않는 김량남이였지만 이 12월의 잊을수 없는 밤엔 사양없이 잔을 받았다. 그가 든 술잔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내렸다. 량남은 술도 눈물도 마시며 무섭게 어깨를 떨었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서도 뜨거운것이 흘러내리시였다. 지금껏 울고싶어도 울 곳이 없었던 혁명가의 아들, 혈혈단신 고아의 설음속에 외기러기마냥 정을 그리며 살아온 량남이.

량남은 종시 김정일동지의 품에 안기며 오열을 터뜨렸다.

《어머니-》

김정일동지께서는 김량남을 꽉 품어안으시였다. 그러시면서 김량남이 세상에 태여나 그토록 가슴속에 품고만 있던 어머니를 부르며 마음껏 울음을 터치기는 처음일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얼마나 부르고싶었던 이름이였겠는가, 얼마나 터치고싶었던 눈물이였겠는가.

그이의 뜨거운 눈물이 김량남의 얼굴에 점점이 떨어졌다. 그이께서는 손수건으로 김량남의 얼굴을 닦아주시였다. 하지만 그이의 눈귀로 정의 샘은 끝없이 고여올랐다.

량남은 고개를 수굿한채 어깨를 떨며 목메여 떠듬거리였다.

《전 출근길에 올라 당중앙위원회정문으로 들어설 때마다 누나를 생각하군 합니다. 세상에 태여나 아홉해밖에 살지 못한 누나는 어버이수령님의 마음속에 간직된 아동단원인데 전 아홉해가 아니라 몇곱절 더 살아오지만 너무도 한 일이 없다는 죄책감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량남의 어깨를 꽉 잡으시며 몰켰던 숨을 내그으시였다.

《왜 누나가 아홉해만 살았다고 생각하오. 아니, 아동단원 금순이는 죽지 않았소. 이 나라의 수백수천의 소년들이 금순이를 대신하고있지 않소. 오늘은 금순이의 친혈육인 량남동무가 12월의 이밤 나와 함께 있구

난 지금 막 보는것만 같소, 백두산에서 시작된 천만산악이 줄기줄기 삼천리를 뻗쳐내리듯이 백두산에서 붉은기를 휘날리며 흐르는 천만대오가 말이요. 그끝은 어디인지 보이지 않소. 천년만년 그 대오의 흐름은 순간도 멈춤을 모를거요. 그 대오속에 금순이도, 금순이의 동생 량남동무도 서있소.》

김량남이 고개를 번쩍 들고 그이를 우러렀다. 그의 두볼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 전 누나를 찾았다는 행복보다 누나가 걸은 백두의 행군길로 손잡아 이끌어주는 위대한 어머니품에 안겼다는 기쁨에 세상에 태여나 오늘 밤 처음으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그 어머닌 지금껏 저를 품어 키워준 조선로동당입니다. 전 누나의 생애까지 합쳐서 한생토록 백두의 행군길을 꿋꿋이 걸어가겠습니다.

김정일동지를 따라서 말입니다.》

《나도 그러리라고 믿소. 내가 오늘 량남동무와 함께 여기로 온것은 아동단원 금순이의 동생이 누나의 뒤를 이어 백두의 행군길을 꿋꿋이 이어가고있다는것을 어머님에게 아뢰기 위해서요.

량남동무, 우리 백두의 피줄기로 끓는 하나의 심장, 하나의 신념을 지닌 동지가 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량남의 잔에 술을 부어주시고 자신께서도 잔을 드시였다.

김정일동지!

김량남이 흐느끼며 맹세의 잔을 꽉 틀어쥐였다. 12월의 밤눈이 량남이가 든 잔에 한송이, 한송이 내려앉았다.

취기에 몰린 량남은 그이의 품에 스르르 안겨들었다. 그이의 정찬 눈길이 자기를 어루만지고있었다. 얼마나 빛나는 눈빛인가, 얼마나 정깊은 눈길인가. 그이의 영상을 우러르며 그는 또다시 어린시절부터 찾고찾던 별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아, 세상천지를 다 훑고훑어 끝끝내 나를 찾아주신 별, 나를 손잡아 이끌어주실 별, 내 운명의 향도성!

김정일동지께서는 외투를 벗으시여 김량남의 등에 덮어주시고 그를 품에 안아 단잠을 지켜주시였다. 김량남은 꿈을 꾸는지 혼자소리로 어머니를 부르고있었다.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으로 그이께서는 눈사람이 되시였지만 마음은 더없이 무량하시였다. 흰눈속에 묻힌 대성산에 감빛노을이 서리며 동이 트기 시작했다.

12월 24일의 려명이 평양시가를 물들이고있었다. 그이의 품에 안긴 김량남은 아직도 굳잠에서 깨여나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량남을 업으시고 대성산을 내리기 시작하시였다. 김량남을 등에 업어서인지 김정일동지께서도 온몸이 훈훈해오는것을 느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생토록 항일아동단원 김금순의 동생 김량남을 자신께서 업고가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시였다.

김량남은 가볍게 코까지 골고있었다. 엄마, 아빠라는 인생의 첫말을 입에 담아보지 못한 고아, 눈치로 세상을 깨닫고 눈치로 여문 김량남이 자신의 등에 업혀 세상모르게 발편잠을 자고있다는 생각에 그이께서도 따뜻한 미소로 어우러진 눈물을 흘리고계시였다.

(량남이, 내 너를 끝까지 이렇게 업고가겠다. 밥도 내 손으로 먹여주고 아프면 약도 내 손으로 먹여주면서 생의 끝까지 너를 업고가겠다.

귀중한 우리 혁명의 혈통을 내 생의 끝까지 이렇게 책임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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