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2 회)
제 5 장
12
한줄기의 불빛이 보슬비 내리는 산기슭 농촌길을 비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다가 주춤 서시였다.
김일은 웬일인가 하여 수령님을 우러렀다.
《전지불을 끄시오.》
수령님의 말씀에 김일은 물론 뒤따르던 최현이며 오진우들이 어안이 벙벙해졌다.
수령님께서는 김일의 손에서 전지를 당기시여 앞을 비치시였다. 그제서야 김일은 길복판에 서있는 노루를 알아보았다.
두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어미노루였다. 노루는 전지불에 굳어진채 까딱않고 서있었다.
수령님께서 전지불을 끄시고 걸음을 옮기시자 어미노루는 인기척에 놀라 산기슭으로 올리뛰였다. 새끼노루들도 어미를 따라 재빨리 꼬리를 사렸다. 수령님께서는 다시 전지불을 켜시였다.
《내 이곳 산세를 밟아보았는데 꿩도 있구 노루도 몇마리 보았소. 말못하는 짐승도 제 보금자리는 알고 찾아드는데 여기가 꿩, 사슴, 노루와
같은 짐승들을 사양하기엔 신통한 곳인것같소.
그래서 이곳 관리위원장한테 종자로 할 꿩과 사슴, 노루들을 보내줄테니 한번 해보라고 했소. 관리위원장이
입이 벌쭉해서 축산작업반에서 새끼들을 사양하여 본때있게 일판을 벌리겠다고 하더구만.》
김일은 내각에서 수령님의 교시대로 해당한 대책을 시급히 취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처럼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일하면 인민들을 잘살게 할수 있는 예비는 얼마든지 있다시며
김일이며 투사들을 둘러보시였다.
《헌데 누구보다 일감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 밤중에 갑자기 출두했소?》
《혜산에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준공식에 참가한 후 수령님께 꼭 말씀올리고싶은 일이 있어서…》
《나한테야 전화를 하면 되지 않소.》
농촌현지지도차로 서해지구로 오신 수령님께서는 뜻밖에 나타난 김일이며 투사들을 보시고 숙소에서 나오시여 산책길에
나서시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전지를 드시여 보슬비 내리는 하늘가를 비치시였다. 어둠을 가르는 불빛줄기로 실오리같은 보슬비가 소슬한
밤바람에 흩날리며 내리였다.
《약비가 내리누만. 터밭에 심은 남새들이 좋아하겠소. 올해의 정이월엔 눈이 많이 내려 저수지들에 물을 가득 채웠댔는데…》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작전을 구상하고계시던 1945년 2월에도 눈이 많이 내렸댔습니다.》
김일의 감회깊은 추억에 수령님께서는 길옆의 버드나무가에 서시였다.
《생각나오, 생각나. 그날 밤 김책동무가 눈내리는 사령부앞을 거닐며 조국해방성전을 앞둔 해인데 하늘의 눈송이가 고스란히 총탄으로 내려쌓였으면 좋겠다고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소.》
수령님께서는 보슬비 내리는 하늘가 그 어딘가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떠나간 전우들의 모습이 그이의
심장을 끓이며 뇌리에 떠올랐다. 김책, 류경수, 강건, 안길…
김일은 수령님께서 사랑하는 전우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쓰신다고 생각하며 조심히 말씀올렸다.
《수령님, 그만 숙소로 돌아가십시다. 밤도 깊었구 비도 내리는데…》
수령님께서는 김일이며 투사들이 자신의 안녕때문에 늘 마음쓴다는것을 알고계시였다. 그런데
이밤엔 보슬비 내리는 밤길을 그들과 끝없이 걷고싶으신 심정이시였다.
《김일동무, 내각청사에 함께 있으면서도 언제 한번 마음편히 옛말할 시간도 내지 못했는데 오늘 밤은 운동삼아 좀더 걸읍시다. 우리 산에서 싸울 때
조국이 해방되면 허리띠를 풀어놓고 푹 자보자고 했는데 그 자그마한 소원도 풀어보지 못했지.》
수령님의 말씀에 김일의 코마루가 시큰 달아올랐다. 수령님께서는 강건, 안길, 김책, 류경수 등
사랑하는 전우들을 잃을 때마다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해방된 조국에 와서도 언제 한번 푹 재워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느냐고 뜨거운 오열을
터뜨리군 하시였다.
김일은 눈굽을 슴벅이며 수령님에게서 전지를 받아쥐였다.
《수령님, 이제부터는 좀 쉬십시오.》
수령님께서는 가벼이 손을 내저으시였다.
《아니, 우리 대에는 그 소원을 이루기가 힘들것같소. 동무도 알지만 할일이 얼마나 많소. 우리 인민들이 백미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 그날을 앞당기자면 우리가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여야 할게 아니요.》
최현이 불쑥 끼워들었다.
《수령님, 인민생활이 유족해지면 정말 마음편히 쉬시겠습니까?》
수령님께서는 뒤짐을 지시며 가벼이 고개를 저으시였다.
《하긴 아직 조국통일도 못했지, 게다가 세계를 둘러보면 제국주의, 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있으니까.》
수령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김일을 돌아보시였다.
《그러고보니 내가 김일동무랑 빨찌산시절의 동지들한테 진 빚을 영영 물지 못할것같구만.》
《수령님, 전 빨찌산때의 소원을 풀었습니다. 그래서 요샌 만시름을 잊고 푹 잘 때가 많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어- 그래?》 하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김일동무한테서 처음으로 거짓말을 들어본다?》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요새는 저만이 아닌 최현동무랑 오진우동무도 다 그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그게 사실이요?》
오진우가 한발 나서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수령님, 혜산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세계가 보란듯이 일떠선 후 나도 네활개를 쭉 펴고 잡니다.》
수령님께서는 주춤하시며 돌아서시였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선 다음에?》
《그렇습니다. 수령님!》
수령님께서는 오진우의 의미심장한 말에서 그들이 평양을 떠나 밤길에 오른 사연을 음미하시고 투사들이 찾아온 용건이
가늠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시며 김일이며 투사들을 둘러보시였다.
《오래간만에 이렇게들 모였는데 빨찌산때처럼 군정간부회의를 하자는건 아니겠지? 엉? 8련대 정치위원.》
수령님께서 롱담속에 미소를 지으셔도 김일은 여전히 심중한 표정이였다.
《수령님, 만약 혜산에 〈인민영웅탑〉이라는 간판을 달고 오가잡탕의 탑이 섰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장차 어떻게
될번 했습니까?
제 기념탑준공식에 참가해서 마음속엔 언제나 보천보전투에 참가했던 기관총수라는 자각을 안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기관총수, 빨찌산 기관총수…》
수령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뇌이시며 역시 산에서 싸운 투사들은 연탁의 연설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하시였다.
《그 준공식을 하는 날 최현동무도 말했습니다. 김정일동지가 아니였더라면
어찌될번 했느냐고 말입니다. 오진우동무도 이제는 우리 혁명의 혈통을 잇는 문제는 만시름 놓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흥분에 젖은 김일의 열띤 음성을 들으시며 깊은 사색에 잠기시였다. 이들이 혁명위업완성에서 생명으로
나서는 문제를 론하자고 이 밤길을 달려왔음을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그이께서는 직감하고계시였다.
(혁명의 혈통이라, 우리 혁명의 혈통을 누가 이으며 어떻게 잇는가 하는 문제란 말이지. 중대한 문제야, 중대한 문제중에 가장 중대한 문제이지.
고맙소, 동지들! 나 역시 우리들이 피를 바치고 생명을 바친 조선혁명의 혈통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가 견결히 고수하고 훌륭히
이어나가리라고 믿고있소.)
수령님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우선우선하신 음성으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우리 오래간만에 서로 만났는데 이렇게 바깥에서 심각한 회의를 하겠소? 회의라는건 할 때가 따로 있는 법이요. 오늘은 옛 전우들끼리 국수나
한그릇씩 나누며 옛말이나 하자구.》
그 시각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러날째 김태호와 함께 밤을 밝히고있는 림춘추를
찾아오시였다.
《수령님께서 구상하시는 항일혁명투쟁사를 편찬하는데서 림춘추동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번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의 건립으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항일의 혁명전통만을 옹호고수하려는 우리 당과 인민의 신념과 의지를 온
세상에 시위하였습니다.
앞으로 후손만대에 물려줄 귀중한 력사문헌인 항일혁명투쟁사를 편찬하려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불길속에서 마련하신 고귀한 업적들을 빠짐없이 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혁명전통으로 무장시키는 투쟁에서 얻은 실천적경험과 력사적교훈들을 분석총화하면서
앞으로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기본원칙과 우리 당 혁명전통의 기본내용을 이렇게 정립하였습니다.
그 원칙은 주체의 혁명전통을 순결하게 옹호고수하고 전면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원칙이며 우리가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혁명전통의 기본내용은 주체의 사상체계와 백두의 혁명정신, 고귀한 혁명업적과
풍부한 투쟁경험, 혁명적사업방법과 인민적사업작풍입니다.》
림춘추와 김태호, 로세대와 새세대 혁명력사가들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의 혁명전통계승사업은 이와 같이 명백한 원칙과 방법론을 가지고 진행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시고 흥분에 싸여있는 림춘추를 정깊게 마주보시였다.
《수령님께서 구상하시는 항일혁명투쟁사편찬과 함께 성스러운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우리 당의 빛나는 혁명전통이 창조되던
나날을 직접 체험한 항일투사동지들의 회상실기도 종합편찬되여야 합니다. 그동안 과장동무와 이 문제를 많이 토론하셨겠는데 방안이 섰습니까?》
림춘추가 김태호를 잠시 돌아보고나서 말씀드렸다.
《최근 당력사연구소가 수령님의 초기혁명활동시기 자료들을 많이 발굴하고있습니다. 항일혁명투쟁사와 함께 종합회상실기도
그때부터 시작하자는것입니다.》
이어 김태호가 나섰다.
《림춘추동지는 종합회상실기의 제목을 〈붉은 해발아래 항일혁명 15년〉으로
하자는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밝게 웃으시였다.
《좋습니다.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해방의 큰뜻을 품으시고 만경대를 떠나신 때로부터 항일전의 불바다,
피바다를 헤쳐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신 혁명력사는 20년입니다.
때문에 종합회상실기의 제목은 〈붉은 해발아래 항일혁명 20년〉으로 하는것이 옳을것같습니다.》
그이의 천재적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이 응축된 말씀에 림춘추도 김태호도 격정에 넘쳐 호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와 김태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방대한 사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10년, 20년 품을 들여서라도 이 사업을 기어이 완성하여야 합니다. 항일의 혁명전통은 주체혁명위업의
만년초석이며 혁명위업의 명맥을 이어주는 피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