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6 회)

제 5 장

7

 

보슬비가 내리는 밤이였다. 굽이진 산기슭으로 걸음을 옮기시다가 주춤 서신 수령님께서는 오른쪽외투주머니에서 담배와 성냥을 꺼내시였다. 어둠속에서 가물거리는 성냥불에 담배를 붙이신 수령님께서는 희벗한 연기에 무거운 숨을 실으시며 다시 걸음을 옮기시였다.

수령님과 반걸음사이로 떨어져서 뒤따르시는 김정일동지께서도 몰켰던 숨을 조심히 내그으시였다. 벌써 침묵속에 석대째 붙이고계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께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시는것같다고 말씀올리고싶으셨지만 참고 지켜만 보시였다. 오죽 속이 타시면 이러실가.

김정일동지께서 북방의 새해농사정형을 료해하시려 멀고 험한 길을 걸으시는 수령님을 찾아 이 밤길에 오신것은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의 험로역경을 헤쳐온 항일투사 림춘추가 과오를 범하여 수령님께 너무도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렸기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거운 걸음만 옮기시는 수령님의 침묵에 가슴이 쓰려오시였다. 항일의 그날에나 준엄한 조국해방전쟁과 전후복구건설의 재더미를 헤치시는 고난속에서도 수령님의 마음속 짐이 된것은 중중첩첩 앞을 막는 시련이 아니라 혁명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운명문제였다.

이밤에도 수령님께서는 파란만장의 시련을 함께 헤쳐온 전우이며 동지인 림춘추를 두고 괴로움속에 심신을 불태우고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얼마전에 림춘추가 쓴 장편소설 《청년전위》 제3부를 보신 후 대단히 실망하시였다. 소설이 교양적의의보다도 흥미본위적으로 엮어졌기때문이였다. 더우기 심중히 고려해야 할 문제들까지도 흥미본위적으로 형상하였다.

《난 동무가 청년전위 1, 2부를 썼을 때 우리 청년들에게 혁명적세계관을 키워주는 교과서라고 하면서 빨찌산작가라고 하였소. 그런데 3부는 왜 외지밭으로 갔는가? 자만병인가?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청년전위라고 했소?

제목처럼 마땅히 우리 청년들을 항일의 청년전위들처럼 키우는 교과서를 내놓아야 하지 않는가. 난 문필을 전업으로 하는 작가가 소설을 이렇게 썼대도 이다지 탓하지 않겠소. 항일의 총대를 잡았던 투사의 붓에서 이런 글이 나왔기때문에 이토록 실망하는거요.》

거기에다 최근 수령님께서는 당대표자회결정관철과 관련하여 통일전선부문 사업을 료해하시다가 이 부문 사업이 지난 몇해동안 우리 당의 로선과 어긋나게 진행되여온 엄중한 결함들을 발견하시였다. 이것은 이 부문 사업이 중요하기때문에 잘 방조하라고 특별히 과업을 주신 림춘추에게 중요한 책임이 있었다.

《동문 빨찌산때 당서기사업도 하지 않았소? 헌데 오늘에 와선 정치적청맹과니가 되였는가? 왜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맹종맹동했소?

동무가 과연 항일의 피바다, 불바다를 헤쳐온 림춘추가 옳소?

내 전번에는 소설을 보고 자만병인가고 비판했는데 그게 근본이 아니였소.

난 동무를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래일도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함께 갈 동지로, 내곁에 없어서는 안될 전우로 믿어왔소. 우리와 40년세월 사상도 신념도 의지도 하나였고 혈육의 정을 초월한 동지였기때문이였소. 그런데 변했거던.

어디 동무가 대답해보오. 오늘에 와서 과연 김일성 림춘추가 뜻과 지향이 같은 동지인가?》

림춘추의 지나온 어제와 오늘, 래일의 인생을 해부하듯하시는 수령님의 서리찬 말씀. 얼마나 가슴사무쳤으면 오랜 동지였고 전우였던 림춘추와 인생갈림길에 서신 심정을 터치셨으랴.

수령님께서 또 성냥을 켜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춤하고 서시며 자신도 모르게 무거운 한숨을 터치시였다. 그 소리에서 김정일동지의 심정을 가늠하셨는지 수령님께서는 성냥불을 담배에 가져가지 않으시고 이윽히 들여다보시다가 흔들어 끄시였다.

《림춘추가 리해되지 않아, 리해할수가 없소. 빨찌산배낭을 벗었다고 마음까지 변했는가. 40년동안 혁명을 같이한 사람이 그렇게도 눈이 멀수가 있는가 말이요.

아직은 우리 혁명이 항일전이나 전쟁때보다도 더 어렵고 간고한 시련을 헤쳐야 하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곁으로 다가서시며 괴롭게 말씀드리시였다.

《제 잘못이 큽니다. 제가 림춘추동지를 곁에서 잘 돕지 못했습니다.

소설문제만 해도 출판에 넘기기 전에 원고를 한번 보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산길아래로 펼쳐진 강쪽을 보시며 걸음을 멈추시였다. 뒤짐을 지시고 한동안 깊은 심연에 잠겨계시던 수령님께서는 혼자말씀처럼 조용히 뇌이시였다.

《오진우랑 최현이랑 림춘추가 범한 과오는 용서할수 없지만 그가 내곁에서 떨어지면 죽는다고 하면서 걱정하던데

잠시 동안을 두시며 하늘가 그 어딘가를 바라보시는 수령님께 김정일동지께서는 낮으나 강인한 어조로 말씀올리시였다.

수령님, 림춘추동지는 수령님곁을 떠나서는 못삽니다. 제가 잘 도와드려 항일의 그 모습으로 언제나 수령님곁에 서있게 하겠습니다.》

침묵, 침묵

한초, 한초에 천만근의 무게가 내리누르는듯한 정적이 잇달았다. 이윽고 수령님께서 고개를 저으시였다.

《아니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심장이 조여드는것만 같아 숨소리마저 멈추시였다.

《내 생각하구 또 생각했는데 이제부터는 림춘추를 김일성 곁이 아니라 김정일 곁에 두어야 하겠소. 곁에 두구 잘 도와주오.

이건 당총비서가 조직부 지도원에게 주는 과업이 아니라 림춘추와 40년간 혁명의 길을 함께 걸어온 전우의 부탁이요.》

수령님!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이 뭉클 젖어들며 눈물이 핑 고여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으시였다.

《알겠습니다. 수령님!》

어쩌면 이 대답이 그이의 마음속에서만 울렸는지도 모른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 서리는 뜨거운 눈물을 이윽히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더 말씀이 없이 보슬비에 젖은 풀숲으로 걸음을 크게 내짚으시였다.

 

수도의 거리는 고요속에 안식의 깊은 잠에 들었다.

승용차는 보통강역앞 도로를 지나 미끄러지듯 달렸다. 운전대를 잡으신 김정일동지의 곁에 림춘추가 눈을 감고 석상처럼 굳어진채 앉아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신병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관골이 두드러지고 훌쭉해진 볼에 검버섯이 듬성듬성한 림춘추를 앞거울로 일별하시며 그가 지금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자책으로 태질하고있는가를 가늠하고계시였다. 너무도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시는 김정일동지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듯하시였다.

오랜 정적속에 달리던 승용차가 조용히 멎어섰다.

림춘추는 여전히 눈을 감은채 숨소리마저 죽은듯 요지부동이다.

《난 림춘추동지를 생각할 때마다 늘 저 만경대혁명학원을 눈앞에 그려보군 합니다.》

그이의 깊은 감회에 젖은 음성에 림춘추가 예리한 그 무엇에 찔린듯 흠칠하며 눈을 뜨고 시창밖을 살피였다.

어둠을 가르는 두줄기 전조등빛속에 구내의 가로등이 비껴들고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들이 우거진 언덕우에 서있는 만경대혁명학원의 웅자가 서서히 시야로 다가든다.

어디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모르고 승용차에 앉아 고민에 싸여있던 림춘추는 만경대혁명학원의 청사를 보자 심장이 방망이질을 하듯 세차게 박동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의 거친 숨소리에 그가 강렬한 충동에 흥분되고있음을 느끼시였다.

《림춘추동지의 마음속에 깊은 추억으로 자리잡고있는 곳이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라고 생각되여 여기로 왔습니다. 또 나도 이밤엔 어째서인지 이곳에 오고싶었습니다.》

쏴- 림춘추는 천길나락의 폭포에 휘말려 떨어지는듯한 충격에 온몸이 화석으로 과다드는듯싶었다.

림춘추의 허옇게 버캐가 끼고 말라터진 입술이며 관자노리가 경련을 일으키듯 가늘게 떨렸다.

《해방후 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림춘추동지가 항일전에서 희생된 투사들의 자녀들을 얼마나 많이 찾아왔습니까. 연형묵, 박송봉, 심창완, 리철봉, 리동춘… 그들이 이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로 자라서 오늘은 나라의 큰짐을 맡아안고있습니다.》

림춘추는 컴컴한 방안에서 한숨만 짓고있던 자기를 이밤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데려오신 김정일동지의 웅심에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제동변을 푸시고 운전대를 돌리시며 감회에 젖어 나직이 뇌이시였다.

《나는 림춘추동지의 장편소설 청년전위 1부와 2부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저 독자의 심정이 아니였습니다. 백두의 혈통을 옹호고수하고 대를 이어갈 혁명의 계승자들에게 항일의 혈전만리에 피를 뿌린 투사들이 심장으로 웨치는 신념과 의지의 호소로 받아안았습니다. 인간의 육체적생명은 한두끼를 건늬여도 유지될수 있지만 정신적생명은 넋의 자양분을 한끼만 건늬여도 부패되여 순결을 잃고맙니다.

바로 그래서 수령님께서 청년전위 1, 2부를 보시고 림춘추동지에게 빨찌산작가라는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다고 생각합니다.》

림춘추는 무릎우에 팔굽을 얹고 두손에 얼굴을 묻었다. 후들거리는 팔굽이 김정일동지의 시야에 안겨왔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모질게 채찍질하는가 하는것이 번듯한 이마에 패인 밭고랑같은 주름발이며 길쑴한 눈에 어린 고뇌가 다 말해주고있었다.

승용차는 대동강을 옆에 끼고 서서히 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안의 록음기스위치를 누르시였다.

정적이 깃든 승용차안에 《사향가》의 선률이 은은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깊은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그 선률이 추억의 갈피를 번지며 물결쳐왔다.

《해방된 이듬해 가을이였던것같습니다. 림춘추동지랑 투사들이 밤에 집에 왔을 때 우리 어머님이 쑥떡에 갓김치를 상에 올려놓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국해방작전을 앞둔 어느날 밤 우등불곁에서 이제 조국이 해방되면 만경대쑥으로 쑥떡을 하여 대접하겠다고 하던 생각이 나서 만경대쑥으로 떡을 빚었다고동지들과 한 약속을 오늘에야 지킨다고 하시자 강건동지였던지 안길동지였던지 또 다른 약속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며 노래를 불러달라고 박수를 치면서 떠들썩했지요.》

몰켰던 더운 숨을 터치며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는 림춘추의 눈귀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뜨거운것이 괴여올랐다.

어머님께서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다가 조용히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글쎄 두절도 채 못부르시고 우실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이 꽉 메여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눈길을 차창밖으로 돌리시였다.

림춘추는 오른손바닥으로 입을 싸쥐며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동안을 두셨던 김정일동지께서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제가 어머님곁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자 어머님께서는 저고리고름으로 눈굽을 찍으시며 말씀하셨지요. 조국해방성전에 흘린 동지들의 피를 잊지 말자고,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에게 그 붉은 피 한방울, 한방울이 얼마나 값비싼 희생이였는가를 대를 이어 알려주자고 하시던 그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헉-》

목이 메여 어깨를 떠는 림춘추의 주름진 눈귀로 진한 눈물이 피물처럼 슴배여나왔다.

《사향가》를 두고 하시는 그이의 추억은 백두의 피줄기를 잇는 계승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키는 생명이라는 철의 진리를 천명하고있었다.

어떻게 사죄한단 말인가? 혁명앞에, 동지들앞에

승용차는 모란봉아래 북새동주택지구에 이르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의 단층주택앞에서 차를 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반쯤 몸을 일으키시고 승용차의 뒤좌석에서 포장한 함을 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림춘추동지가 빨찌산때 얻은 심장병이 요새는 더 심해졌을거라고 걱정하시며 이 약을 보내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약함을 보는 림춘추의 눈에 번뜩이는 눈물이 샘처럼 고여오르기 시작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무아몽중의 나락에서 모지름쓰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함속에서 고려약을 꺼내시여 림춘추의 손에 쥐여주시고 샘물병과 고뿌를 꺼내시였다.

《이것은 고려약이니 식사하기 전에 하루 세번 꼭 드셔야 합니다. 그러면 불면증도 가셔지고 밤엔 푹 쉴수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샘물병뚜껑을 여시고 고뿌에 물을 부으시였다.

《어서 약을 드십시오.》

림춘추는 솟구치는 뜨거움에 갈린 목소리로 떠듬거리였다.

《밤도 깊었는데 어서 가보십시오. 약은 집에 들어가 먹겠

《아니, 약을 잡숫는걸 보고야 가겠습니다. 수령님께서 꼭 보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약을 쥔 림춘추의 손이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흑-》

흐느낌소리에 이어 림춘추가 고개를 떨군채 약을 씹기 시작하였다.

그에게는 수령님께서 보내주신것이 심장병에 특효인 약이기에 앞서 사그라져가는 인생에 활력을 부어주시는 불사의 생명수로 감수되였다.

《어서 물을 마시십시오.》

림춘추는 고뿌의 물을 마시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였다. 뼈아픈 회오가 짜내는 눈물방울이 얼굴을 싸쥔 마디굵은 손가락짬으로 구울러나오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림춘추의 들먹이는 어깨를 꽉 잡으시였다.

《제가 곁에서 림춘추동지를 잘 돕지 못했습니다. 제 잘못이 큽니다.》

림춘추는 꺽꺽 목이 메여 흐느끼며 김정일동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내 이제부터는 늙은 제자가 되여 따르겠습니다. 눈을 감는 마지막까지 말입니다.》

《림춘추동지, 제자라니요? 아닙니다. 전 항일혁명투사 림춘추동지의 젊은 동지가 되여 림춘추동지와 한생을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

림춘추의 등을 꽉 안으신 그이의 안광에도 물기가 번뜩이고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눈부신 보석빛을 발산하며 차창가에 비껴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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