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하편
의병장 조헌
제 5 장
청주성 해방
1
(3)
조헌의병장은 옥천에서 싣고온 창과 칼을 새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을 서둘러 조련시키도록 하였다.
왜적을 치는데 하루가 늦어지면 그 하루에 수많은 우리 백성들이 죽어나고 또 하루 늦어지면 또 그만큼 나라와 백성들이 도륙을 당하기때문이다. 어찌 무술을 익히는데 하루 한시각인들 늦잡으랴. 의병들은 누구나 윽윽 이발을 악물고 낮과 밤을 조련으로 보냈다.
때마침 적의 동태를 렴탐하려고 내보내였던 해동이네들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충주의 왜놈들이 보은의 차령을 넘어 옥천지경을 침입하려고 래일아침 떠난다고 하였다.
이놈들을 쳐부셔야 하였다. 그러자면 적들보다 먼저 보은의 차령을 차지하여야 한다.
조헌의병장은 전 부대에 긴급히 출동준비를 시키였다.
공주에서 동쪽으로 300리를 가면 보은차령이고 충주에서 남쪽으로 300리를 가면 보은차령이다. 신통하게도 의병들이 가는 거리와 왜놈들이 가는 거리가 같았다. 의병들이 먼저 가느냐, 왜놈들이 먼저 가느냐 하는것은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것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런데 왜적은 의병들이 보은차령을 먼저 차지하려는 내막은 모른다.
그것이 의병대에 유리하고 왜놈들에게는 불리한것이다.
의병들은 소리없이 출동준비를 하나하나 갖추기 시작하였다.
어둠이 깃들면 온 부대가 떠나기로 하였다. 마침 달도 밝은 때이고 무더위가 심한 낮보다 서늘한 밤이여서 걷기가 좋은 때였다.
의병들의 불타오르는 마음처럼 공주성의 하늘가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끼였다.
바로 이때 선전관 안세희가 뜻밖에 조헌을 찾아왔다.
《중봉! 내가 왔네. 날세, 나야.》
안세희는 조헌의 방으로 달려들어와 그를 덥석 그러안았다.
《이게 누군가? 청수 자네가 아닌가, 응? 살아있었군, 살아있었어. 이 사람아-》
조헌이도 안세희를 와락 그러안고 불시에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 란시에 어디서 무얼하다가 무슨 일로 예까지 왔나?》
조헌은 너무도 반가와 덤벼치며 물었다.
《지금껏 어가를 호종하였네. 내가 의주행재소를 떠나 적들이 없는 길을 찾아오느라고 열흘이나 걸렸네.》
《자네가 이 사람의 귀양지를 찾아 혹한을 무릅쓰고 마천령을 넘더니 오늘은 또 나를 찾아 사지판을 무릅쓰고 왔네그려.》
《원참, 별소릴 다. 사실은 상감께서 〈충청도관찰사 윤선각이 왜놈과 싸우지 않고 공주에 피신해있다니 빨리 가서 왜적을 치도록 하라.〉 하셔서 내가 여기로 왔네.
헌데 윤선각은 없고 자네가 의병을 뭇고 공주를 지키고있을줄은 몰랐네. 자네가 창의사가 되여 의병을 불러일으키는 격문을 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였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내 임금께 상주하겠네.
임자가 지난날 상소문에 보여주던 충의지심을 이 란시에 변함없이 행동실천으로 보여주고있으니 이 사람은 감복됨이 그지없네. 장하네, 장해! 여름에도 푸르고 겨울에도 푸르른 송죽의 절개를 떨치고있는 자네가 장하단 말일세.》
안세희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조헌의 두손을 쓸어 잡았다.
《그래, 의병은 언제 무었나?》
조헌은 옥천에서 의병을 뭇던 이야기와 임금님께 그 소식을 담은 상주문을 사람을 띄워 올려보낸 사실, 그런데 윤선각이 의병들을 다 빼앗아간 일, 그때문에 여기 공주에 와서 의병을 재차 뭇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연을 간단간단히 이야기하였다.
《음, 알겠네.》
안세희는 격분을 못참듯이 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내 방금 공주판관을 만나고왔는데 윤선각이 내포땅에 들어가있다고 하였네. 그게 정말인가? 왜놈들이 이 땅을 도륙내고 나라의 종묘사직을 다 불태우고 궁궐은 빈터만 남겼는데 윤선각이 어찌 하늘땅에 사무친 이 원한을 피로써 씻으려 하지 않느냐 말일세.》
《옳네. 자네가 윤선각을 만나게 될터이니 난 더 말하지 않겠네. 헌데 우리가 의병을 무은 소식을 상감께서 받지 못하신것같구만. 상감께서 보시고 교지를 내리신다면 우리 의병대가 윤선각의 방해를 받지 않구 마음껏 왜놈들을 칠수 있을게 아닌가.》
《내가 여기로 떠나올 때까지는 자네의 상주문이 도착하지 않았었네. 그러나 너무 걱정말게. 내 행재소로 돌아가 임자네들이 의병을 무은 소식과 윤선각의 방해책동도 임금께 품하겠네. 내 참 한가지 잊었군. 령의정 리산해가 파면되였네. 지난 5월초 임금이 피난도중 개성에 잠시 머물러있을 때 어가의 북행길을 재촉한 리산해의 죄를 규탄한 사헌부, 사간원의 제의로 상감께서 그를 파면시키였네.》
《응?! 그참 잘되였네. 좀 더 일찌기 그랬다면 더 좋았을걸 그랬네. 역신들은 나라의 몸에 난 종처와 같네. 신각부
《임금이 뒤늦게 신각의 승전첩보를 받아보고 그를 죽이지 말라는 어지를 내렸다네. 내가 선전관으로서 그 어지를 안고 급히 뒤따라갔지만 한발 늦었네. 난 분통이 터져나와 먼저 온 선전관의 멱살을 잡아흔들었네.》
그들은 한동안 신각의 죽음을 애통히 여기면서 한탄하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안세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전라도 고경명의병장도 아깝게 희생되였네. 그는 전라도관찰사 리광, 방어사 곽영이 왜란초기에 왜적이 쳐오자 겁을 먹고 도망한 죄를 규탄하였었는데 리광, 곽영은 고경명을 원쑤처럼 여기고있다가 고경명과 함께 금산의 적을 칠 때 먼저 저만 살겠다고 달아났네. 그들은 고경명이 홀로 싸우는것을 보고도 그를 돕지 않았네. 그러나 고경명은 자기의 의병들과 함께 수많은 왜적을 목베이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네. 참말 애석한 일일세.》
《아아, 고경명이 그렇게 희생되다니… 절통하구나. 충의기개가 그리도 강하던 사람이… 죽어야 할 놈들은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은 죽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조헌은 눈물을 뿌리며 몸부림쳤다.
밖에서 의병들이 뛰여다니는 발자국소리와 인원을 점검하는 호명소리,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